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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May 24. 2020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정혜윤의 글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태하고 게으른 나에게 정혜윤의 책은 당근이자 채찍질이다. 좋은 약이자 독한 자극이다.


글을 쓰고 퇴고하고, 다시 쓰고 고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괴감, 이를테면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 같은 못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만든다. 너무 잘 쓴 글을 읽으며 느껴지는 압도되는 마음과 자괴감 같은 것도 잊고 그저 그 좋은 글에 오롯이 감탄하고 감동할 수 있게 한다.  


오늘도 정혜윤의 책 <뜻밖의 좋은 일>을 읽으며 감탄하고 감동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졌고, 그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누고 싶은 소중한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옮겨 적어본다.




좋은 책을 읽은 독자는 멍해진다. 말문이 막히고 머리가 하얗게 된다. 잠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비우고 채운다. 그렇게 자신을 비우면서, 새로운 것으로 채우면서 우리에게 좋은 일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눈으로 읽지만 두 번째는 삶으로 읽으면서 가까운 미래에 전에는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전혀 놀랄 것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나 다름없다. 장 자끄 쌍뻬는 우리는 고독하지만 그러나 친구가 있어서 균형을 잡고 멀리 갈 수 있다고 했다. 책도 그런 친구와 같다. 그 이유는 간단히 정리해봐도 이렇게 많이 떠오른다.  


좋은 책은 그 글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세상이 달라 보이게 한다.


좋은 책은 인간은 비탄, 슬픔, 고통에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료로 뭔가 - 비탄, 슬픔, 고통을 다른 일로 바꾸는 일, 이를테면 시 또는 한 편의 글 - 를 만들고 있는 중이란 것을 알려준다.


좋은 책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확대, 반복,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세상에 대해서 말하려고 애쓴다.


좋은 책은 어디선가 진실은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만든다.


좋은 책은 문제와 사태를 다루는 데 있어 내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사태를 보는 다른 눈, 제3의 눈을 가질 수 있게 나를 돕는다.


좋은 책은 다른 사람의 생각 속에서 장차 내 생각이 될 것을 찾아내고 다른 것을 느끼도록 자극하고 다른 일을 해보도록 격려한다.


좋은 책은 누군가 이미 용기를 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좋은 책과 만나는 어떤 특별한 순간, 서러운 마음도 자아도 사라지고 '이건 진짜다, 진짜 멋지다'라는 마음과 가벼운 한숨, 벅찬 가슴만 남는다.


(중략)


나도 궁금하다.

이 세상의 무엇이 알까? 내가 어떤 순간 행복했었음을. 무엇이 알까? 내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음을. 무엇이 알까? 내가 한때 세상에 존재했고, 힘을 내려고 했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오래되고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기 딱 좋은 주제에 골몰했었음을.


그리고 발견한다.

아! 그래, 나의 손때가 묻은 책들이 있지!


그 책들 중 일부분을 당신과 불완전하게나마 나누어 보려고 한다. 당신에게도 이 책들이 무기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머리가 인간의 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유는 희망, 사랑, 우정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렇게, 나, 당신과 함께 힘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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