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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Jun 06. 2021

소비자보호의 역설

 소비자문제는 일반적으로 생산체제가 발전하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생산자 소비자간 정보격차나 비합리적 선택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소비자문제가 있었다. 상거래 질서를 위해 집행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 따르면 기구(器具) 등을 제조함에 있어 견고하게 만들지 않거나 견직물, 포목 같은 천을 얇고 좁게 만들어 거래한 경우에는 판매한 자에게 볼기 50대에 처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상품의 가격을 조작하는 것, 강제적으로 매매를 체결하는 것, 속임수로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처벌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오늘날 소비자보호의 주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런 문제들이 정부가 상인을 단속하는 일의 차원을 넘어서 소비자의 권리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특별교서에서 소비자의 4대 권리가 언급됐고 우리나라의 경우 1960~70년대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삶의 기본적인 니즈들이 어느정도 해결되어 소위 "보릿고개"를 벗어 날 수 있게되면서 구매력을 가진 대중 소비자 집단이 탄생한 이후의 일이다.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신군부가 들어선 80년대 초 경제안정화 시책이 전개 되면서 우리 경제도 산업화시대에서 소비자시대로 전환이 시작됐다. 헌법에도 소비자운동 권리가 규정되고 당시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과 소비자보호법(현행 소비자기본법)의 제정이 이뤄졌으며 정부 내에도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비자보호원(현재 소비자원)이 설치됐다.
 이제 누구든 소비자권익 보호의 중요함에 대해 이견이 없고, 정부 각 부처들도 앞 다퉈 소비자 보호 부서를 신설하거나 늘리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들은 규제 개혁에서도 예외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초 의도와는 달리 소비자보호를 구실로 한 정부조직과 규제 권한은 늘어나는데 정작 소비자의 권익은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금융거래의 경우, 해킹이나 정보보호를 이유로 늘어난 규제들로 인해 각종 대금결제나 송금 등의 거래가 짜증날 정도가 됐고, 최근 통과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한건의 거래를 위해 20-30분의 시간을 소요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한 규제의 영향으로 각종 인터넷 사이트 이용도 정체를 알기 어려운 보안 프로그램의 설치와 복잡한 비밀번호를 요구하게 돼, 정보기기의 작동에 장애를 가져오고 어디엔가 비밀번호를 적어두지 않고는 기억하기 어려워져 오히려 개인정보 도용 위험이 증가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거래 비용은 처음엔 기업이 부담하겠지만 결국은 상품 가격(혹은 구입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소비자가 겪는 불편은 오롯이 소비자의 몫이다.
 그리고 과당 경쟁이나 무분별한 사업 참여로 인한 소비자 피해 방지를 명분으로 하는 규제들 예컨대 수시로 TV홈쇼핑, 면세점, 인터넷 전문은행 등의 허가를 통한 진입규제 등도 결과적으로는 경쟁을 제한해 가격이나 수수료가 인상되고 소비자 부담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방문, 다단계판매 등 직접판매유통에 대한 사기 판매의 위험이나 고소득을 미끼로 한 피해가 우려가 된다며 후원수당(회사가 판매원들에게 주는 보너스)규제나 상품판매가격한도 규제도 오히려 직접 판매를 통한 상품판매를 어렵게 해 유통채널간 경쟁을 제한하거나 탈법행위를 조장하고 미처 이러한 규제에 대비하지 못한 미숙한 사업자들을 제재하는데 그칠 뿐, 결과적으로 그로 인한 비용의 부담은 소비자들의 몫이 된다.

 차량 소유가 보편화 되면서 자동차와 관련된 소비자문제가 다발하자 몇년 전 국토부는 신차 결함으로 발생한 트러블에 대해서 환불이나 교환을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 했다. 차량 결함으로 인한 피해구제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수리기간 중의 불편까지 포함해 관련 피해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신차로 교환하는 것이 적합한지 혹은 무상 수리가 적합한지는 일방적으로 강제할 사항은 아니다. (만일 상당 시간이 지난 경우에도 일정회수 이상 동일 불만이 제기될 경우 전액 환불이나 교환을 의무화한다면 어떤 소비자는 판정이 어려운 문제를 계속 제기해 신차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소비자보호 수준을 높이라고 규제하는 것이 무조건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기업들은 정부 규제를 지키기 위한 비용만큼 소비자들에게 가격으로 전가하려 할 것이고 상당 부분은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비자 보호의 수준도 기업간의 경쟁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소비자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소비자 선택 대신 정부 규제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시도는 소비자의 권리를 해치거나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더구나 소비자보호를 구실로 한 규제를 통해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려는 관료적 이익 혹은 검찰 경찰의 이권이 개입될 경우 오히려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

 원론으로 돌아가 소비자보호의 핵심은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데서 출발하며, 소비자 선택에 중요한 정보의 은폐나 허위 과장 또는 사업자의 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피해가 신속하게 구제될 수 있는 시장환경을 만드는데 있다. 하지만 정부가 소비자를 대신해 시장에 개입하는 일은 자칫 소비자의 부담을 키울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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