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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Jun 08. 2021

20년 이상 진행중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교훈

1994년 세계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개발로 시작된 이 사건은 20년 이상 아직도 진행형이다. 당시 이 제품의 등장을 알리는 어느 경제신문 보도를 보면 "유공(현 SK케미칼)은 국내 처음으로 콜레라균 포도상구균과 가습기 내부 물때균 등을 완전 살균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중략) 유공 측은 선진국도 가습기 살균제가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점을 감안, 내년 중 북미시장 개척에 나설 계획이다."라고 했고, 여러 일간지도 마치 획기적인 신상품이 개발된 것처럼 보도했다. 어쨌든 호흡을 통해 인체에 흡입될 수도 있는 제품이 왜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유통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최초의 사망 환자는 2002년에 발생했지만, 당시는 그 원인도 몰랐고 가습기 살균제가 환자들의 사망 원인으로 의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사용 후 10년 넘게 지난 2006년, 언제부터인가 해마다 봄철이면 원인 모를 폐질환 환자들이 왔고, 이를 의심한 어느 소아청소년과 의사(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에 의해 원인 규명이 시작되었다. 정부의 각종 위해정보 시스템은 그동안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고, 의사의 개인적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의 피해는 더욱 확산되고 오래 진행되었을 것이다. 소비자 안전의 감시가 관 주도보다 소비자들과 관련자들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점이 부각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난 2011년 8월 말이 되어서야 질병관리본부는 문제를 제기한 의사들의 협력을 얻어 환자들의 사망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확인했고 같은 해 11월 보건복지부의 수거명령에 따라 일단 피해 확산은 막게 되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 관련자들에 대해 표시광고법 위반을 이유로 2012년 8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는데, 표시광고법 제10조 제1항은 부당 표시.광고 행위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고 제2항은 고의나 과실이 없음을 들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위반의 손해배상책임은 시정명령 확정과 무관하게 주장할 수 있다(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은 옥시레킷벤키저의 행정소송 제기로 2015년 2월 대법원에서 확정). 또한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자나 상표 등을 사용해 제조자로 오인하게 한 자까지 피해 배상의 책임이 있지만 그 권리는 3년 내에 행사해야 하며,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도 소멸시효가 10년이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가 환자 사망의 원인임이 확인되고 5년이 지나서도 피해배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뒤늦게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나서야 손해배상 책임자들인 롯데마트, 옥시레킷벤키저 등 일부 업체의 사과가 있었을 뿐이다.

2019년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 특별법이 제정되어 피해규제를 위한 법적 보완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소급입법으로 위헌소지가 있을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입증이 어려운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에서의 합리적 책임분담 기준조차도 마련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가장 피해구제를 잘 해주는 업체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이미 도산한 중소업체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피해구제를 받기 위해 거짓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20년 넘게 진행 중인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서 정부의 위해정보 시스템에 어떤 결함이 있어 원인 규명에만 10년 가까이 걸린 것인지 그리고 책임이 확인된 후 5년이 지나도록 손해배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소비자 피해정보 시스템을 만들고, 가습기 살균제뿐만이 아니라 그 피해가 상당시간이 경과한뒤 나타나거나 규명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피해에서 소비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법제도를 보완하는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필자가 파이낸셜뉴스신문에 2016년 기고한 글(https://www.fnnews.com/news/201605051700551808)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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