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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Jun 19. 2021

대중 소비자 계층의 탄생과 1차 산업혁명

경제사의 발전과 소비자(1)

 인류 문명이 발생한 이후 오랜 기간 경제의 발전은 매우 더뎠다. 물론 신석기시대에 시작된 가축의 활용과 농경, 정주 사회의 형성, 주조 가능한 청동기, 철기 시대의 도래와 문자 사용에 따른 지식의 축적은 인류사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지만, 한 세대마다 생산력이 배증하는 급속한 경제발전이 진행된 것은 1700년대 중반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농경 생활의 시작과 문명의 발생을 약 10,000년쯤 전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이나 가축 대신 화석연료 사용을 본격화한 1차 산업혁명은 불과 300년 전의 일이니 생산력의 급성장과 함께 경제발전이 진행된 것은 전체 인류 문명사의 30분의 1에 불과한 시간이다.     

 제임스와트가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을 발명해 상용화한 것은 1760년대인데, 증기압을 이용하려는 생각이나 석탄의 존재는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도 알고 있었음에도 2000년 이상 지나서야 상용화되었을까?     

 1400년대 항해술의 발전과 서구 유럽인들에 의한 신대륙의 발견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통과 무역업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신대륙 발견으로 당시 화폐로 사용되던 은이 다량 유입되고 항해술의 발전에 따라 동방의 각종 산물과 교환이 활성화됨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구 상당 부분이 상업에 종사하는 도시가 탄생하면서 땔감으로 나무보다 석탄을 사용하게 되었고, 석탄을 채굴하는 동력으로 말이나 가축보다 석탄에 의한 증기기관을 사용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산업혁명의 중요한 요인으로 보는 기술적 발전의 출발점이다.     

 필자가 강조하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과학적 발명이나 발견 그 자체가 경제적 발전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발명이나 발견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나 소비자의 요구가 경제적 발전을 이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침반이나 항해술, 인쇄술, 화약 등 근대세계를 만든 중요한 기술들은 오히려 동방에서 먼저 발명되었지만 실제로 그러한 기술을 대규모로 보급하고 활용에 앞선 것은 서구였는데 그것은 기술을 활용할 시장의 형성에서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산업혁명을 단지 증기기관이나 생산성을 높인 각종 기계들 예컨대 제니의 방적기, 카트라이트의 방직기,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의 등장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은 산업혁명의 근저에 있는 더 커다란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대량 생산된 의류를 구매할 대중 소비자 계층의 탄생과 이를 이용해 부의 축적의 기회로 삼으려던 자본가의 정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중세처럼 대부분은 자급하거나 마을에서 물물교환으로 해결하고 소수 귀족층만 구매해 소비하고 마차를 이용했다면 구태여 면직물이나 모직물을 대량 공장에서 생산할 필요도 없었고(초기 공장 생산 직물들의 품질은 장인들이 만든 것보다 훨씬 조악한 것이었다), 마차보다 속도도 느리고 불편했던 증기기관차는 보급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도시의 형성과 구매력을 가진 대중 소비자 계층의 탄생과 이들의 수요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려는 자본가들(각주 1 참고)에 의해 증기기관이나 생산성을 높인 각종 기계의 발명, 그리고 대량 이동에 적합한 교통기관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해방, 남북 분단 이후의 한국 경제발전에 있어서도 50년대 미국의 대량 원조와 60년대 경제성장의 성과 가운데 중요한 몇가지는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가진 대중 소비자계층의 탄생과 도시로의 급속한 인구 유입, 그리고 이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려는 기업가들의 등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1) 제임스 와트는 1769년 ‘화력기관에서 증기와 연료 소모를 줄이는 새로운 방법’에 관한 특허를 취득했는데 연구 자금은 철공소 사장인 존 로벅에 의해 조달되었고 특허권의 2/3 지분은 로벅이 소유했다. 하지만 와트는 특허의 시장 가능성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와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던 로벅의 재정 상황도 악화되자 로벅은 특허권 지분을 와트의 증기기관에 관심을 갖고 있던 광산업자 볼턴에게 팔았다. 1774년 볼턴은 와트를 설득하여 볼턴앤드와트 회사를 설립했고 당시 많이 사용하던 뉴커먼 증기기관과 와트의 증기기관을 사용할 때의 채굴비용을 비교하여 그 차이의 1/3에 해당하는 수익을 받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정성창, 헬로디디 기고문 2020. 1.7, 참고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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