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구 Jul 31. 2021

일본 망하는 것이 한국에게 좋을까?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오해 (2)


 우리의 일본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 일본이 쇠망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들이 있다. 고려 말기 출몰하는 왜구들을 최영 장군이(혹은 최무선의 대포로) 물리친 이야기라든가(왜구들의 잦은 침탈은 고려 멸망의 주요 원인으로까지 꼽힌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성웅 이순신 장군을 탄생시킨 일본과의 7년 전쟁(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자행된 경제 수탈과 민족 말살 행위에 대한 저항은 역사 교과서에서 강조되고 있고,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나 종군 위안부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는 아직 미해결인 채 남아 있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미국에게 패망하고 한국에 해방이 찾아 왔으니 일본이 망하는 것이 우리에게 뭔가 이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로 일본이 쇠락하는 것이 한국에 좋을지는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일본의 식민 통치가 우리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하지만, 당시 조선 왕조가 근대 국가로 발전할 능력이 있었는지 의문이고, 외세에 대항해 독립을 지킬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조선 왕조와 싸웠다기보다 조선을 둘러싼 외세들과의 투쟁(청일전쟁, 러일전쟁)과 미국과의 밀약(일본의 조선 지배권과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을 상호 인정한 카스라-태프트 밀약)으로 식민지배를 달성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조선병탄(한일합방)에 대해 일본의 침략주의만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다른 모든 관계들을 무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경제 수탈과 민족 말살 그리고 인권침해는 우리 민족사에 큰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멍에처럼 씌워 있지만, 해방 이후 75년이 넘도록 극복하지 못한 우리 책임 또한 크다. 

 하지만 이제 한국도 세계 경제 주요 국가 대열에 들게 되었고, 일본과도 어떤 분야에서는 대등하게 경쟁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과거를 잊자는 의미가 아니라 기억하면서도 실리를 위하여 객관적인 눈으로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볼 필요가 있다.

 경제면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에 대한 투자와 근대적 제도 구축을 침략과 수탈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피해만을 강조하고, 우리 경제의 근대화 과정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 6.25 동란이 전후 일본 경제 부흥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군수 물자의 원활한 공급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 경제 성장 과정에서 기술, 설비, 부품 등은 일본에 의존하고 최종 상품은 미국 시장에 팔아, 수출이 증가하면 대일 무역적자가 커지는 문제가 구조화되었고 완제품 시장인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과는 무역마찰을 겪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산업화를 급속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싸게 기술과 생산재를 도입하기 위해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 산업은 일본에 의존하면서도 어떤 분야는 경쟁하고 추월해 가면서 조선, 전자, 반도체, 자동차 등 한때 일본이 세계 최고의 위치에 있던 산업에서 한국 역시 세계 유수의 생산국이 되었고,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한국의 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서비스업 분야에서도 일본이 미국의 편의점 브랜드를 사들여 세계 최대의 편의점 체인을 만드는 동안 한국 역시 편의점 문화의 주도국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나 스포츠 분야에서도 일본이 앞서간 분야에서 곧바로 한국이 경쟁력을 발휘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제도적 문화적 유사성과 지리적 근접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견제한다고 하지만 일본 기술이나 설비를 가장 비싼 값에 사줄 나라는 한국이기에 비록 따라 잡힐 우려가 있다 할지라도 한국을 파트너로 택했던 것이다. 특히 언어적 유사성으로 우리에게 일본은 가장 배우기 쉬운 나라였고, 때로는 직접 서구 문화들을 배우는 것보다 일본을 통해 배우는 것이 더 편리하기도 했다. 초기 영한사전은 英和(영일)사전을 베끼다시피 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그런 까닭으로 순우리말 설명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일본의 방대한 번역 자산과 서구 문물 도입을 위한 노력이 우리의 지식 문화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학문 용어들은 한일 양국이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특성도 있지만 일본이 서구 학문을 도입하면서 쓴 용어들을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의 앞선 노력이 우리의 근대화 비용을 줄여 준 것을 구태여 지우려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일본도 과거 삼국시대 문화가 고대 일본의 국가 형성에 미친 영향을 부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의 일본 유학 당시 동경대학 대학원 조선공학과에는 한국 학생이 더 많아, 우스갯말로 일본 문부성이 한국의 조선 공업을 육성한다고 할 정도였고, 대학원 경제학과에도 동경대학 출신 다음으로 서울대학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았다. 즉 일본을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었다. 다만 최근 한국인의 일본 유학 비중은 감소하고 있는데 과거보다 일본에서 배울 것이 적어 그렇게 되었다면 다행이지만 불편한 관계로 인해 한일 간 협력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 그런 현상이 발생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북한을 중요 파트너로 삼는 거대 세력 중국의 부상에 따라 그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싫든 좋든 불가피한 선택이다. 일본이 망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 그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일본이 성공이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경우가 많고 서로 간에 이해 상충이 적도록 협력해 가야 한국이 세계를 주도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나 한일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 집단주의에 대한 오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