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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란지교 Jul 09. 2018

호칭의 권력

저는 어르신의 언니가 아닙니다.


 "언니, 종이컵 좀 줘봐!"


나는 여동생은 1도 없지만, 하루에 저런 식의 '언니'라는 호칭을 자주 듣게 된다. '언니'의 대표적인 사전적 정의는  '여자들 사이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위인 여자를 높여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건만, 나는 일터에서 이모뻘이나 어머니뻘 때로는 할머니뻘 되시는 분들로부터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의외로 중년 이상의 남성들도 이 호칭을 즐겨 사용하신다. 그럴 때는 미간에 지렁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이 호칭 사용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는 호칭의 유저(User)와 타깃이 벌써 틀렸고, 그 호칭 다음에 늘 반말이 뒤따른다. 부른 목적 또한, 부탁을 빙자한 요구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요구의 내용들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적인 내용도 아니다. (* 참고로,  700여 명의 회원이 오고 가는, 문화센터에서 평생교육사로 근무를 하고 있다.)  


앞선 예시처럼 과도한 종이컵 대여(!)는 비교적 귀여운 부탁이다. 본인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달라, 사무실 냉장고에 본인이 장 봐온 '생선'을 넣어달라, 몇십 장의 문서 뭉치를 가지고 와서 개인적인 용도의 팩스를 보내달라 등의 지극히 사적인 내용의 부탁을 가지고 와서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다.


뭐, 해줄 수 있다! 상호 존중의 자세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어떤 고객은 과도한 해라체 및 하다체를 사용하며 기분을 상하게 한다. 본인은 어떤 내용과 태도를 나타내도, 상대방은 무조건 굽신거려줘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서비스 노동자를 대하시는 분들이 많다. 솔직히, 이런 태도는 권위적 사고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은 일정 연령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여하튼, 바쁜 와중에도 힘들게 요구를 들어드려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휙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본인의 언행은 생각하지 않고, 무례한 언행을  당한 자의 미세한 얼굴 근육의 떨림을 기막히게 읽고서, 오히려 불친절하니 어쩌니 하며  본인의 분노를 투사한다.




나이가 갑인 우리나라 언어문화

관계와 서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는 그대로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고도로 발달한 높임말과 호칭이 대표적이다. 용언의 어미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존대와 하대를 오가기도 한다. 호칭을 잘못 사용했다가는,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수평적인 문화권 출신의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이런 부분이 가장 어려움으로 여겨질 터. 네이티브 스피커인 우리들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어 하나 음절 하나로, 남의 기분을 들었다 났다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언어인 것은 사실이다.


MBC 드라마 <몽실언니>     양보와 희생의 아이콘,  언니(?)


게다가 가족적 호칭을 가정 밖에서도 확대해서 쓴다. '언니'뿐만 아니라, '이모', '오빠' , '어머님', '아버님' 등등...  물론, 그런 호칭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 찬란한 환란의 시대를 겪은 우리나라에서, 서로 어려울 때 돕고 내 가족처럼 돌봐주었던 그 아름다운 문화적 배경이 있었을 거라고 이해하고 싶다. 실제로, 맥락이나 관계에 따라서 정답고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족적인 분위기를 깔면서, 어쩌면 가족에게도 잘 안 하는 부탁을 생판 남에게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그중에 '언니'가 가장 서열이 낮은 것 같다. 그에 맞게 태도도 제일 하대하게 된다. 다분히 폭력적인 호칭이다.  


한편, 언니를 뛰어넘는, 최강의 호칭도 있다. 바로,  '자기'다. 나만의 소중한 애인을 부르는 이 달콤간질한 호칭을, 생판 남으로부터 듣게 되면...... 게다가 그 호칭의 송신자가 중년 이상의 남자라면!!!!  공포 그 자체다. 이런 몹쓸 호칭으로 놀란 내 마음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얼룩진 상태로 장시간 지속된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 치고, 타인에게 함부로 '언니', '자기'를 쓸 것 같지는 않다.




우리 모두 평등하게 이름을 부르면 좋을텐데....


그래서일까. 때로는 수평적인 문화를 베이스로 하는 영어권의 언어문화가 좋아 보일 때가 있다. 나이, 직위, 직업에 상관없이 그저 그 사람 그 자체인 이름을 부르니까. 부를 때도 편하지만, 불릴 때도 나조차 따지거나 불쾌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모를 때는 어떡하냐고?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도 있지 않는가? 꼭 호칭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언어적 노크'를 할 수 있다.



호칭의 또 다른 권력 : 직업적 호칭

우리나라 말의 또 다른 특징은, 직업이나 직함으로 부르는 문화 또한 발달했다는 것이다. 사장님, 부장님, 과장님,  실땅님(!), 선생님, 교수님......... 혹은 권사님(?!).  특정 조직에서의 직위나 직업을 가지고, 해당 장소가 아닌 곳에서도 부르고, 혹은 불리기를 원한다.


실제로, 문화센터 고객 중 어떤 분은 은퇴한 베이비 부머 세대인데,  본인의 전 직업과 이력, 경험 등을 피력하며, 높임을 받기를 원한다.  


 "나,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를 알아줘! 나를 특별하게 대해달라고!!"


이런 메시지를 마구 뿜어낸다.  어떤 직업 및 직위를 가지고 있든, 그것이 그가 더욱 나은 존재라는 뜻도 아니고, 그 직업 자체가 그 사람인 것도 아니다. 직업이란, 그저 인생의 여러 모습 중 일부일뿐이다. 그런 호칭으로 자기를 높이거나 상대를 높여주는 언어문화가 과연 옳은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대접을 받고 싶으신가요?

사람을 연령층으로 나누는 건 지극히 편협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사회에는 세대별 보편적 특징이 분명히 존재한다. 정치적 성향 이야기하려는 거 아니다.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 지극히 기본적인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일단, 5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의 특징은 기가 막히게 사람 스캔을 잘한다는 것이다. 일단 바코드 찍어서 나이가 적다 싶으면, 말부터 시원하게 놓는 분들이 많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는 건 전제로 일단 깔고)  언어에서부터 권력을 휘두르는 것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태도에서도 갑질을 한다. 반말에도 상황에 따라 온도 차이가 있지만, 진짜 기분 나쁘게 말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들은 대접받기를 늘 원한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내 직업이 이러하니 말이다.

높임을 받고, 특별 대우를 받고, 존경을 받고 싶다면.... 당신의 특별함을 알리려고 애쓰지 마라! 나이도 강조하지 말자! 당신 입에서 나오는 언어와 몸에서 나오는 태도가 당신을 말해주니까. 이제는 목소리가 커야 대접을 받는 게 아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자가 대접을 받는 사회가 오고 있고,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만 종이컵 좀 하나 얻을 수 없을까요?"

 "물론이죠! 텀블러도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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