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마주치는 질문들 가운데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질문이 "왜 남자 친구 안 사귀어?"라는 질문이다. 기출 변형으로는 "왜 남자 친구 없어?"가 있겠다. 나에게 이 질문이 왜 난이도 높은 질문이냐면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게 무슨 뜻일까?'
'남자를 소개해준다는 말일까?'
'애초에 남자를 내가 원하면 마음대로 사귈 수 있는 건가?'
'남자 친구 없는 게 뭔가 결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일까?'
'남자 친구가 없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가?'
이런 질문들이 유성우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곧 아스트랄(astral)한 기분이 된다. 내 영혼은 흐르는 은하수 위를 유영하고 있는 중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며 히치하이킹하고 있을 나의 남자 친구를 찾아서.
연애를 쉬고 있는 이유
남자 친구를 안 사귀는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필요하지 않아서 그렇다. 어딘가 여행을 가서 연인들이 알콩달콩 노는 모습을 보면 조금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일찍이 경험한 연애에는 저런 알콩달콩한 순간만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 보니 연애가 시간을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감정노동이 아니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것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 물론 나도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다면 오른손에는 애교와 왼손에는 내숭이란 무기를 장착하고 사냥을 하러 간다. 다만 아직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 남녀관계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연애가 인간적인 이해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달콤한 말로 감정을 표현하기 급급해서 상대방을 한 명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사귀었던 남자들도 대충 미디어가 보여주는 여자의 이미지, 여자들이 좋아하는 보편적인 틀에 끼워 맞춰서 나를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니 첫 데이트에서 나를 이해할 것처럼 달콤한 말을 속삭이지만 곧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들통나는 것이다. 그것이 참 게으른 태도라고 느껴 남자들에게 실망한다. 그런 남자들은 여자를 만나는 것에나 관심 있지 나를 만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나'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고 나의 '성별'만 중요한 것 같다.
사랑의 의미
사랑한다는 말은 곧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알려고 한다. 그의 과거, 원하는 이상적인 삶, 가장 내밀한 트라우마에서 깊은 곳에 숨겨진 욕망까지. 그를 다 알고 분석하고 패턴을 찾아내어 마침내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다 알게 된 상대방을 놓아주기도 쉬웠다.
전 남자 친구가 얼마나 금전적 성공을 욕망하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여자를 성공의 트로피처럼 여긴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자 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이미 손을 댄 여자인 나는 그에게 어떤 성공의 동기부여를 해줄 수 없었으니까. 그는 사귀었던 여자 친구들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것이 자신의 전리품을 소장하는 심리라는 것을 알았고 나도 그의 전리품 컬렉션의 일부로 사진이 남았을 것이다.
또 다른 남자 친구는 늘 헤어진 여자 친구에 대한 미련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관계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만나는 동안에는 전 여자 친구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었고 혼자 멋대로 전 여자 친구와 나를 저울질했다. 정작 전 여자 친구는 그 남자에게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는 게 웃음 포인트였다. 예측한 대로 나와 헤어진 후에는 나에게 미련을 가지고 매달렸다. 그는 참 파악하기 쉬운 남자였다.
다른 남자 친구는 연인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을 떠나지 않는지 시험하려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의 불안정한 다툼과 이별로 '사람을 고칠 수 없다'는 것만 깨달았다. 그가 보는 영화는 거의 대체로 못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괴롭히는 지질한 신파극이었고, 주로 가학적인 포르노를 보았다. 그걸 매번 나에게 들키면서도 매번 숨기려 드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짜지 못한 것이 순진하다고 착각해서 그가 6개월 동안이나 나를 속여왔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 외에도 동정심을 유발하는 남자, 간 보고 떠보려는 남자, 자기 혼자 급발진했다가 한 번이라도 거절당하면 혼자 좌절해서 연락 두절되는 남자 등등. 내 연애사는 인간의 찌질함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와 다름없다.
만나봐야 그를 알 수 있다.
신기한 건 이런 남자애들이 겉보기에는 매우 평범하고 건실하게 보였다는 점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축구나 농구를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런 남자들. 혹은 남들이 선망하는 공무원이나 멀쩡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런 남자들이었다. 그래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장소에서 만나거나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하기 않았다. 문제는 늘 그의 내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치장하는 거짓은 금세 들통이 나고 그들의 패턴을 간파하면 하루라도 빨리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내 기준이 너무 높은 건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해주는 남자였다. 거기에 안전함과 청결함을 약간 더한 사람. (손톱 때나 코털 정도는 정리하고 와주길 바란다) 겨우 이 정도의 바람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인간에 대한 결벽증 같다고 비난받으면 나도 할 말이 없다. 조용히 연애에서 손 뗄 수밖에...
그래도 내 어필을 하자면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남자 친구에게 데이트 비용을 혼자 부담하게 하지 않았고 그가 힘들 때 늘 푸념을 들어주고 가장 먼저 위로해 주었다. 성적이 부족한 남자 친구와 공동으로 논문을 써서 취업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현대판 신사임당이라고 놀렸고, 나도 헌신하다 헌신짝 되었다며 자조한다. 어쩌면 그들이 원한 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금전적 부담을 덜어주는 여자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쁘고 날씬하고 귀여움을 잃지 않는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남자를 너무 몰랐던 걸로 인정해야겠지?
연애학 수강생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연애가 나에게 어떤 성취욕이나 보상을 전혀 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되려 연애를 게임처럼 생각해서 잘난 남자를 쟁취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좀 흥미가 생기려나. 그러기에 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재미없는 여자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관계에도 늘 갑을이 생기는 것처럼 잘난 남자를 만나면 상대적으로 내가 위축되고 그에게 맞춰줘야 할 것 같아서 거절하고 싶다. 사회생활할 때나 갑을을 의식할 것이지 연애마저 갑을 관계가 되어 상대의 눈치를 보고 싶지는 않다.
그나마 근래에 연애 또한 인간관계에 대한 '학습'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의욕이 생기고 있다. 늘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경험치로 인간에 대한 데이터를 쌓는 활동이 연애라고 하면 흥미가 생긴다. 영 이상한 남자를 만나도 "이건 또 흥미로운 실험체구나!"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만날 수 있다. 하나하나 분석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파악해서 연구 자료로 사용하는 거지. 이제까지 연애학 수강할 때마다 매번 F학점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꼭 B학점 정도는 받아야 학사경고를 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