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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y 11. 2021

나는 이별로 사랑을 배웠다.

지난 사랑의 경험이 가르친 것

실패한 연애가 가르친 것 

   흔히 사람을 많이 만나 봐야 좋은 배우자를 고른다고 말한다. 


    사랑이란 감정 자체는 숙련도가 쌓이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요령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연애를 하나의 레이스로 봤을 때 적당한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 너무 달리면 빨리 지치는 게 당연하니까. 너무 뜨거울 때 조금 식히고, 너무 급할 때 여유를 가지는 것이 밀당의 순기능이 아닌가 하는 의미부여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난 연애로 배운 가장 확실한 교훈은 적어도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는 확실하게 알았다는 점이다.


미련은 사랑이 아니다.

    두 번째 남자 친구는-사실 남자 친구라고 말하긴 쑥스러울 정도로 짧게 만났지만- 자신의 전 여자 친구와 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았었다. 그와의 사건을 복기해 보자면, 처음 만남은 데이팅 어플로 만났었다. 나는 그때 한창 우울증 상담을 받는 중이었고, 어디에서도 정서적 안정감을 얻지 못한 불안정한 상태였다. 누군가와 교감을 나누는 게 절실했기 때문에 가벼운 만남에라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배가 너무 고프면 인스턴트 라면이라도 감사하고, 목이 너무 마르면 바닷물이라도 마시고 싶어 지는 법이다. 


    그 친구는 키가 컸고, 차분한 목소리를 가졌었다. 나는 첫 만남에 호감을 가졌는데, 그 애가 유독 다정하고 예쁘게 말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만남을 가졌지만, 정식으로 사귀기로 한지 열흘째부터 갑자기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집안일이라는 말에 아무것도 자세히 묻지는 못했지만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싸늘해졌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 내 생일에 전화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뭐 제대로 사귄 것도 아니고 정이 든 것도 아니어서 알겠다고만 하고 정리했다. 통화를 하는 동안 이 남자는 무려 "다음에 널 사랑하게 되면 그땐 망설임 없이 물소처럼 달려들게."라는 이딴 거지 같은 멘트를 날려서, 내 친구들 사이에서 '물소남'이라고 불린다. 난 그 멘트를 듣자마자 새벽 감성에 혼자 미쳐버렸냐고 정색을 했었다. 그리고 그때 친구들과 경주 여행을 하던 중이어서 다음날 신나게 놀면서 금세 물소남과 이별을 잊어버렸다.


    내 생일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때, 어느 날 밤 혼자 맥주를 한 캔 마시다 문득 '왜 갑자기 그 친구의 마음이 식었던 걸까' 궁금해졌다. 왜 뒤늦게 그딴 게 궁금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날 난 맥주 한 캔을 마셨고,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감정 기복과 충동성이 심했던 상태였다. 그러니 새벽 2시에 갑자기 헤어진 전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근데, 그때 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어?  


    그 친구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대답해 줬었다. 

나와 만나기 전 5년을 만난 여자 친구가 헤어지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전 여자 친구를 잊고 싶은 마음에 데이팅 어플에 가입했다가 날 만났고, 처음엔 자신도 나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다만 나와 만나고 얼마 후에 전 여자 친구가 한국에 잠깐 온다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집안일로 연락이 뜸해졌던 기간은 사실 전 여자 친구와 함께 있어서 나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나와 정리하고 전 여자 친구를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전 여자 친구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문자를 보내도 더 이상 답장이 없는 전 여자 친구에게 실망하고, 나와 헤어진 걸 후회하는 시점에서 내가 전화를 한 셍이었다. 그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때 나는 술에 좀 취해있었고, 갑자기 알 수 없는 승부욕이 끓어올랐다. 얼굴도 모르는 그의 전 여자 친구는 일본에 있지만, 난 겨우 10분 거리에 살고 있으니 '지금 내가 꼬시면 넘어오겠지?'라는 가당찮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서 새벽 3시, 그 친구와 난 집 앞 주차장에서 만났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이미 헤어진 남자에게 '내가 너에게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설득해 본 적 있는가? 그 당시 꽤 논리적으로 너의 전 여자 친구는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도 없이 떠났으며, 너와 난 이미 서로 호감이 있다는 걸 확인했고, 우리가 새로 시작하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예전 여자 친구도 나도 모두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 하나 선택할 수 없을 만큼 둘 다 마음속에 있다고. 

     

나는 선택을 못하는 그에게 사랑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전 여자 친구가 사랑이고 내가 호기심이던
전 여자 친구가 미련이고 내가 사랑이던.
사랑은 언제나 하나일 뿐이니 네가 선택해야 한다고.
    

    그는 오래 고민하다 전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 친구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엔 이미 동이 터오고 있었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슴푸레하게 푸른 새벽 공기에 깊이 숨을 내쉬었다. 피로했다. 그리고 난 금세 다른 사람을 만났다. 


    물론 나도 바로 마음을 정리한 건 아니었지만 무려 내가 사랑은 하나일 뿐이라고 선언했으니. 나 자신을 우습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난 사랑은 과거로 묻어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여가 지나고 그가 다시 연락이 왔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또다시 연락이 왔다.


    난 헤어진 남자 친구들이 왜 나에게 연락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렇게 연락이 왔던 건 '물소남' 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쉽게 잘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할 때 연락하거나 몸정이 들어 그렇다고는 하지만. 되려 그렇게 자존심을 버려가며 전 여자 친구에게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게 만들 정도의 성욕을 늘 가지고 있는 게 보편적인 남자의 삶이라면, 참 안쓰러울 따름이다.


    남자들에게 성욕이란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괴로운 삶이 아닐까. 괜한 동정심이 느껴진다.


    헤어진 전 남자 친구들의 의도가 어떤지는 내가 다 알 수 없으나, 그냥 내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그들의 마음이 미련이든 성욕이든 혹은 진짜 사랑을 뒤늦게 알아보고 후회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내가 대화를 하고 싶으면 답을 하고, 대화하고 싶지 않으면 연락을 끊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추리하며 골치 아프게 심리게임을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난 이렇게 헤어진 남자에게 연락이 오면 되도록이면 친절하게 대해 주려고 했다. 상대를 조롱하거나 나쁜 말을 퍼부을 수도 있으나 내 경험상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 상처는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되도록 후회할 짓을 안 하는 게 미련 없이 잊을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나의 전 남자 친구들에게도 만회하고 싶은 실수나 용서받고 싶은 행동이 있었겠지만 끝까지 모르는 척하는 게 나의 소소한 복수였다. 난 섣불리 그들을 용서하여 그들이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디 오래오래 나를 후회와 미련으로 남겨두길 바란다.


미련과 그리움

    이런 구질구질한 경험에도 배울만한 것은 있다. 도전이 성공하면 성취이고, 실패하면 경험이라 하지 않던가. 무려 헤어진 전 여자 친구와 나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나와 헤어진 후에는 나에게 미련을 못 버린 이 '물소남'과의 만남은 미련과 사랑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법을 알려 줬다. 

    

    나에게는 미련이 '내가 그때 어떤 행동을 했어야 한다' 혹은 '그때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와 같은 자기 성찰로부터 나온 후회와 같다. 어떤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끝낸 것 같은 찜찜한 기분 혹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한번 더 게임판을 돌려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그리움은 온전히 상대에 대한 기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의 온기, 냄새, 감촉과 같은 생생한 감각정보들. 그래서 당장이라도 눈 앞에 그날의 풍경과 그 사람을 그릴 수 있는 듯한 느낌. 그림그리움이 비슷한 어감을 가지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사진이 없던 시절 그 사람의 그리움으로 풍경과 얼굴을 그려내던 것이 그림이 된 건 아닐까. 상상해본다.


    끝으로 나와 헤어진 남자 친구들이 잘 살길 바란다. 그때는 실망스럽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들 덕분에 나도 많이 성숙해질 수 있었고, 이별의 아픔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더라도 툭툭 자리를 털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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