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쿨한 육아법

어딘가 쿨하고 산뜻하고 담백한 우리 엄마표 모성애

by 구름조각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엄마는 보통 엄마가 아닌 것 같다. 어렸을 때 엄마가 보던 육아 책 제목이 <혼자 크는 나무>였는데, 그 시대 유행했던 육아법이었는지 몰라도 나를 아주 독립적으로 키웠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내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 마셔도 위화감이 없으시다. 그런 우리 엄마의 남다른 육아법을 몇 가지 정리해 봤다.


▶모성애를 신성시하지 않는다.

하루는 우리 집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자식을 키워도 이렇게 예쁠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고양이가 더 예쁘다고, 자식을 키우면 마냥 사랑스럽고 행복하지만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가 예쁜 순간도 있지만 그만큼 힘들게 하고 미치게 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다 감내하더라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자식은 언젠가 어른이 되어 부모를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부모와 자식이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며 처음부터 완벽한 부모는 없듯이, 자식도 늘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건 아니다.


그런 말이 나에게 약간의 안도감을 주는 것은 나도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한 때라도 부모가 될 수 있고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요 근래 아동학대 사건이 빈번하자 부모의 자격에 대한 시험이라도 치러야 한다며 공분이 일지만, 그렇게 시험으로 부모의 자격을 판단할 수 없으며 누구도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부모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부모의 사랑이 완벽하고 이상적이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이 발전의 여지가 있는 자세이지 않을까? 부모의 사랑을 너무 이상화하고 신성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건 현실적이지 못한 것 같다.


▶내 자식이 중심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약간 엄마에게 서운한 점도 많다. 엄마가 나를 남의 자식처럼 키운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에피소드만 수십 가지이지만 그중에 기억나는 것은 이것이다.


그때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는데 당시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밤새 설사와 구토를 반복하다 25일 아침에 링거를 맞고 도저히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파서 오늘 일을 쉬겠다고 문자를 했다. 그런데 엄마는 25일엔 빵집에 손님도 많을 텐데 네가 출근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며, 링거 다 맞으면 그냥 출근하라고 하셨다. 밤새 앓던 나를 보고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너무 놀라울 뿐이어서 그날은 하루 종일 엄마에게 삐져 있었다.


엄마는 자기 자식이면 눈 감아 주거나 먼저 감싸줄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는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았다면 늘 내 자식이 우선이고 오냐오냐 키워서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길렀을 것 같다. 다행히 나의 엄마는 자식이라도 사정을 봐주거나 먼저 챙기는 일이 없이 나보다 내가 일하는 곳의 동료,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런 육아법이 약간은 자기중심적인 나를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 같다.


▶사소한 일은 그냥 넘어가!

내가 첫 남자 친구와 헤어져 커플티와 그에게서 받았던 선물을 처분하려고 방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내가 꺼내 놓은 화장품, 향수, 티셔츠를 보더니 의아하게 물었다.

남자 친구랑 헤어졌지 물건이랑 헤어진 것도 아닌데, 아깝게 왜 버리니?

그러고는 이별 후 으레 하는 의식처럼 물건을 정리하던 내가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도로 제자리에 놔두는 것이다. 그 덕에 남자 친구와의 커플티는 한동안 엄마의 잠옷으로 입었고, 받았던 향수는 디퓨저로 사용했고, 블러셔 한 개는 아직도 화장대에 남아 있다.


첫 남자 친구와 결혼한 우리 엄마는 이별의 아픔을 몰라서 그런지 늘 사소한 것은 크게 개의치 않는데, 그게 나의 이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남자 친구와의 이별에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위안을 받는다. 엄마의 그런 쿨한 태도를 보고 있으면 남자와의 이별 따위 하찮고 사소한 일처럼 느껴진다.


▶엄마에게도 사생활이 있다.

나와 동생은 집돌이 집순이라 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신다. 그렇다 보니 자식들은 집에 일찍 들어오는데 부모님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자식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상황이 잦은 것이다.


하루는 연말에 술자리가 잦은 엄마에게 '요즘 술자리가 너무 잦다 / 누구와 술 마시냐 / 초등학교 동창생이 누구냐 나도 아는 사람이냐 / 며칠 전에도 술 마셨는데 또 술을 마시냐 / 오늘은 몇 시까지 들어올 거냐'며 마치 내가 엄마라도 된 양 잔소리를 했다. 엄마는 내 잔소리에 지쳐서 "네가 뭔데 내 사생활에 간섭이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난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그런 말은 딸이 엄마한테나 하는 거지, 엄마가 딸한테 할 대사는 아니야!"라고 쏘아붙였다.


엄마는 자신이 엄마로서의 삶만 있지 않다고 말하고 모든 걸 자식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자식이라도 사생활이 있고 숨기고 싶은 게 있다는 걸 이해해준다. 내 일기장을 몰래 보거나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 성적이나 친구들에 대해서 언급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게 부모와 자식 사이에 놓인 '건강한 선'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도 하나의 인격체고 자녀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인정하면 서로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부모와 자식이라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핏줄로 이어져도 우리는 결국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이해하지 못해도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면 그만이다.


중학생일 때 엄마가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책을 사주신 적이 있다. 나는 치열하게 싸웠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만약 이런 시위에 나간다고 하면 엄마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위험하니 나서지 말라고 할까, 대의를 위해 나가 싸우라고 할까...


엄마는 의외로 싸우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네가 사회에 목소리를 낼 때는 너의 이익이 아니라 너보다 약한 사람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고 나서야 한다."


여전히 일본 불매 운동을 할 때는 나에게 일본 제품들을 하나하나 일러주고, 뉴스를 보면서 정부의 부패에 분개하시고, 늘 사회의 소식을 듣고 알려주시는 엄마를 보면 신기하다. 나는 나의 삶이 중요한데, 엄마는 우리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나마 엄마의 딸이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의 쿨하고 산뜻하고 담백한 육아법은 나 같은 사람에게 꿀밤을 때려 주면서 세상은 너 하나만 사는 곳이 아니라고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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