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극복해야 할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난 애니어그램 성격 유형으로 치면 1번 유형이다. 원칙주의자, 완벽주의자. 나는 가벼운 강박에 시달리는 깐깐한 완벽주의자다. 그래서 게으를 수 밖에 없다. 머릿속으로 실패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아서 무엇하나 쉽게 시작하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막상 시작을 하더라도 실수할 까봐 긴장도 많이 하고, 실수하면 자책을 하고, 잘 못 되지 않을까 수십번 확인한다.
혹시 본인이 천재인 것 같으면 열심히 하지 마라.
대학시절 수강한 서양미술사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천재가 너무 많이 노력하면 빨리 뒈진다. 그러니까 내가 좀 천재다 싶으면 대충 살고, 영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열심히 살아라." 라고 하셨다.
그런 말을 듣고 깊이 공감한 나는 '난 어설픈 천재 같으니 대충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살면서 시도한 것은 많지만 끝마무리가 항상 좀 엉성한 부분이 있었다. 이게 내 천성이고 팔자라면 계속 여기저기 일만 벌리다 인생이 끝나겠지만 그렇게 내 인생 끝장내고 싶지 않다.
나는 가끔 내가 눈먼 경주마나 뿔이 자라는 산양같다고 생각한다. 한번 목표가 보이면 눈 양옆을 가리고 그것만 보고 돌진하는 성향이 있어 시야가 좁아진다. 도착해 보면 '아, 여기가 아닌가?'하고 어리둥절할 때도 많다. 그나마 목표가 있으면 달리기라도 할 건데, 그런 목표도 사라지면 어딜 가야 할지 몰라서 여기 저기 삽질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들이받기 시작한다. 안에 끓어 오르는 에너지는 많은데 어디에다 써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이가 자랄 때 잇몸이 간지러워 여기저기 앙앙 물고 다니는 강아지 처럼 뿔자라는 부위가 근지러워 머리로 쾅쾅 들이받고 사는 것이다.
이 내적인 딜레마가 만드는 스트레스가 크다. 난 스스로 목표를 찾을 수 없고 한번 달리면 스스로 멈추는 법을 모른다. 신이 있다면 나를 적절한 트랙위에 올려놔 주면 좋겠다. "여기가 네가 달릴 곳이란다." 다정하게 말하고 등을 한번 두드려주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만 달려갈 수 있는데... 나 혼자서는 스스로 가야할 길을 모르니 남들이 가야한다고 말하는 방향들, 성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에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감이 있다.
왜 좋은 학교에 가야 하는지 모르면서 좋은 학교에 가려고 목을 매고,
왜 성공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성공한 사람들의 루틴을 따라하려고 하고,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무작정 돈부터 벌자고 생각한다.
라는 질문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나에게는 중요하다. 왜 내가 그런 사회의 경쟁에서 잔혹한 게임을 해야 하는지, 왜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바쳐야 하는지, 왜 내가 남들보다 우수한 사람이라고 증명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살아가다 문득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기회도 없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른다는 막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삶의 현타가 온다. '아...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왔던가.' 하고 탄식할 무렵이면 주변에 아무도 없고, 젋음도 없고, 건강도 없다.
내 나이 31살. 젊음을 어디에다 바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랑도 우습고, 명예를 위해서도, 돈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나를 희생하고 싶지 않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다. 내가 가진 재능의 씨앗을 다 꽃피우고 이번 생애 미련 없다고 만족하고 끝내고 싶다. 죽고 난 후에 신이 있든 없든, 다음 생애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내리는 처방 하나는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억누르고 외면해 봤자 사라지지 않는다. 일단 내가 걱정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성격이라는 거 인정한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좀 더 전략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걱정이 되는 일에 미리 대비책을 마련한다던지, 주변에 도움을 구한다던지. 이도 저도 안 되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명상이라도 하던지.
두려움을 인정한 후에 내리는 처방은
너무 앞만 보고 뛰다가 시야가 좁아져서 바로 앞에 돌부리도 보지 못해 넘어지기 일쑤였다. 사람이 실수로 보고 배우는 게 있어야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너무 열심히 하다 머리가 뜨거워져 냉정한 판단을 못하고, 너무 애를 쓰다 빨리 지치는 아둔한 짓은 하지 말자.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쉰 후에 내리는 처방은
남들보다 빨리 가고, 남들보다 멀리가는 것보다 내가 가야 할 목표에 끝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다른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 엉덩이가 들썩 들썩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했지 않나.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향과 속도가 있다. 나는 그저 나의 길로 가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게 내 길이 맞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고 험난해도 감당할 수준에 있다는 걸 안다. 너무 어렵고 가시밭길인 곳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이어서 그렇다.
이상이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 자신에게 내리는 셀프 처방이다.
요즘은 각박하다고 느끼는 것이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조곤조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전체가 '꼰대 알레르기'에 걸려서 현명한 사람의 조언도 묻히기 일쑤다. 정작 진성 꼰대들은 본인이 꼰대인지 몰라서 그 입을 닥치지 않더라...
그저 어리고 어리숙한 나는 내가 직접 보고 배운것을 셀프 처방한다. 남들이 날 안 돌보면 나라도 나를 돌봐야지 뭘 어쩌겠어...오늘도 어린 아이처럼 징징대는 나 자신을 잘 달래서 글 한편 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