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단체나 아이돌 팬덤이나 정치 단체들이 다 비슷한 구조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겉보기에는 신성한 종교 단체와 10대들의 우상과 뉴스에 나오는 정당들이 달라 보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같은 속성으로 움직인다. 공동체의 핵심으로 존재하는 중심인물과 그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추종자들과의 관계.
물론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을 추종하는 종교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서 교회나 절이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권력 구조를 살펴봐라. 그곳에는 신이 아니라 담임 목사나 큰스님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눈에 안 보이는 신의 말씀보다 내 눈앞에 있는 권력 있는 사람을 따르게 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아이돌(idol)들은 어떠한가.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공허한 10대들의 코 묻은 돈으로 부와 명예를 얻는 아이돌들은 단순히 노래하고 춤추는 엔터테이너를 넘어 팬들의 취향, 사고방식 등 인생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팬(fan)은 아이돌(idol)에게 자아 의탁하면서 아이돌의 취향이 자신의 취향이 되고, 아이돌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이 되는 대리만족에 즐거워한다. 그러나 정신 차려보면 자신은 값비싼 조공을 바치는 얼굴 없는 팬들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 어떤 탈덕한 팬은 아이돌을 아프리카 BJ의 상위 호환이라고 하던데, 그 말에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팬덤 문화가 10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연령대로 번져 갈수록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핵심인물을 둘러싼 지지자들의 모임은 마치 거대한 행성 주위를 도는 위성들처럼 움직인다. 행성(한 명의 핵심인물)과 위성(다수의 지지자들)들은 서로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계속 확장한다.
우주에서는 중력이 큰 거대한 행성 주변으로는 많은 위성들이 모이고, 중력이 작으면 소수의 위성들만 모인다. 어쩌다 이 행성의 수명이 다해 블랙홀로 변하기라도 하면 주변을 돌고 있는 위성들까지 다 잡아먹히고 마는 것이다.
이런 우주적 원리는 인간 세계에서 힘의 균형과 유사하게 움직인다. 그 힘이란 돈에서 오는 재력, 지위에서 오는 권력, 인기에서 오는 영향력, 아름다운 외모에서 오는 매력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게 힘을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지자나 추종자들을 모아 세력을 키워 나가지만, 걸핏하면 부패해서 추종자들과 몰락하고 만다. 사이비 종교의 추종자들, 망한 아이돌 팬덤, 치명적인 부패로 얼룩진 정당들이 그렇게 끝장이 난다.
결국에는 우상과 추종자들 사이에서 힘의 불균형이 부패의 원인이다. 그 어떤 단체도 이런 기울어진 권력 구조가 생긴다면 반드시 고인물이 생기고 그 안에서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내가 경험한 정치 공동체와 봉사 단체 또한 이런 식으로 핵심인물과 추종자들의 권력 구조가 생겼고, 추종자들의 헌신이나 소망은 핵심인물이 더 많은 권력을 얻는 데 이용될 뿐이었다. 청년들의 희망이 되겠다는 한 정치단체의 무료 강연이 결국 새로운 정치 아이돌을 탄생시키기 위한 포석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20대 청년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 강연은 자신의 지지자를 얻기 위한 쇼맨십에 불과했다. 배움을 나누는 학생들이 모인 봉사단체에는 지역구 의원 아들 딸들이 하나씩 자리를 꿰고 앉아, 작게는 취업 면접에 사용할 스펙을 만들고 크게는 정치계에 발 들일 때 사용할 경력으로 이용한다.
권력 있는 아버지들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재력과 영향력을 얻어 오고, 주변 사람들은 알아서 그들의 눈치를 본다. 처음엔 좋은 취지, 사회를 좀 더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모든 단체들은 그렇게 고인물이 되어 장부에 구멍이 나고, 구성원들이 쉬쉬하는 비리를 한두 개쯤 가지게 된다.
이쯤 되면 나는 머릿속에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한 정치인에서 자기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이 결국에는 모두 헛된 일이 아닌가?
비록 내가 하지 못하는 환호와 찬사를 받는 아이돌을 보며 빈약한 나의 자아를 채우는 것처럼, 한 정치인의 권력 투쟁에 대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노력과 헌신이 이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속했던 모든 단체들에는 (내가 보기에) 과도한 헌신과 무조건적인 추종을 바치는 지지자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이런 지지자들의 열기를 바탕으로 정치인들이 영향력을 얻고 권력을 얻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규칙이지만, 그렇게 획득한 권력은 결국 정치인 한 명의 권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권력에 취해 잔치를 벌이는 동안 그 한 명의 정치인에게 기대를 걸고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의 소망은 다 물거품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이치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투표로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이 자신의 권력으로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 인기를 얻은 아이돌들이 자신의 인기에 취해 마약과 인성문제로 추락한다.
-많은 신도들의 십일조와 봉사로 재력을 얻은 사이비 종교인이 신도들을 착취하고 개인의 이익에 이용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망과 기대를 한 명에게 투사하며 그에게 자신의 힘을 내어주고(국민의 권력을 대리하는 정치인처럼), 그 한 명의 사람은 추종자들에게 얻은 권력이 자신의 권력인양 취해서, 결국 추종자들과 함께 끝장나는 시나리오. 이게 내가 직접 사회에 부딪혀 배운 세상의 이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