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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n 07. 2021

들꽃을 닮은 아내의 정원

진정으로 만족하는 삶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베란다에 허브를 여러 종류 심어서 키우고 있다. 작년 이 맘 때쯤 로즈메리 화분 하나를 사서 잘 키워 왔기에 다른 허브도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스위트 바질과 스피아 민트, 애플 민트, 레몬 타임, 잉글리시 라벤더를 잘 키워 샐러드로 먹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워 놓았다.


    그런데 끝내 샐러드로 끝장날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이라도 한 듯이 잎이 까맣게 죽어가고 줄기가 비실비실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뿌리파리와 응애라는 벌레가 생겼다. 응애는 애기들 울 때 응애 밖에 모르다가 거미같이 생긴 벌레가 내 소중한 허브를 죽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괘씸한 놈들을 죽이려고 친환경 살충제 한 통을 다 뿌리고도 부족해서 더 독한 살충제를 사서 뿌렸다. 이로써 허브잎을 수확하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은 다 물 건너갔다. 허브는 심어만 두면 잘 자란다고 말한 놈 누구냐. 나와라...


    가드닝의 꿈을 꾸게 된지는 오래됐지만 사는 동안 이 한 몸 누일 집 하나 구할 수나 있을까 싶어 못내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 그러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의 신이 내 마음을 읽고 <아내의 정원>이란 다큐멘터리를 추천한 것이다. 이 영상 속에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것들이 다 모여 있었다. 

    안홍선 할머니는 고향땅 함경도가 그리워 어린 시절 뛰놀던 집 뒤뜰을 생각하며 들꽃을 잔뜩 심은 정원을 가꾸셨다. 화려한 장미나 백합 같은 꽃들이 아니라 우리 땅 들판에 듬성듬성 핀 코스모스와 참나리, 달맞이꽃, 제비꽃 등을 심어두셨다. 드문드문 볼 때는 고운 색이라 생각했던 들꽃을 한 곳에 모아놓으니 그 색이 알록달록 풍성하여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처럼 느껴진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소박하고 수줍은 얼굴을 가진 들꽃들이 각자의 색으로 자리를 지키는 그 풍경이 조화롭고 새롭다.


아름다움이란 각각의 요소가 얼마나 화려하고 개성 있는지가 아니라 전체 구성요소의 조화로움에 있다.


눈, 코, 입 각각 떼놓고 보면 예쁜데 그걸 모아 놓은 얼굴은 예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밋밋한 이목구비로도 모아놓으며 조화로운 얼굴이라 미소만 더 하면 아주 사랑스러운 얼굴이 있는 것이다.


들꽃 정원이 꼭 그런 얼굴 같았다.

밋밋하고 평범한 얼굴이라 생각한 사람이 환하게 웃는 순간 그 사람과 사랑에 푹 빠져 버리고 마는 것.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눈도 코도 입술도 예쁘고 귀여워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얼굴말이다.


   수수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아내의 들꽃이 가득 자라는 정원 한편에는 남편을 위한 밭이 있다. 거기서 키운 옥수수와 토마토 등을 수확하여 식사로도 드시고 가끔 까치와 나누기도 하신다. 아내는 보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며 쓸모 있고 먹을 수 있는 걸 키우는 게 좋다고 하신다.


    정원을 자유롭게 노니는 닭들이 낳은 알을 삶아 먹고 직접 키운 옥수수를 쪄 먹는 삶. 병이 있어 공기 좋은 오산까지 내려오셨다는 안흥선 할머니께서 여전히 정원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자연이 키운 먹거리로 몸을 채우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늘 쓸모를 찾는 남편처럼 살았다. 뭐든지 쓸만하고 유용한 것들을 찾느라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쓸모가 있다는 걸 잊었다. 남편이 그저 꽃만 피지 먹지도 못한다고 타박하시는 들꽃 정원은 그 존재로 사람들을 매료시.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즐기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 인간답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요소들 중 하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 돈이 되는 것과 돈이 안 되는 것을 나누는 일은 아무래도 고귀한 인긴성보단 짐승의 욕망에 가깝다.


    노부부는 다시 태어나면 만나지 말자며 저승에서도 모른 척 하자는 농담을 하신다. 그런데 그 짓궂은 말에도 서로를 보는 눈빛은 다정하여 같은 흰 옷을 입고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 손을 잡고 직접 가꾼 정원으로 산책을 다니신다. 남편은 키가 커 아내가 바라는 높은 나무의 열매를 척척 따주고 아내가 가꾼 정원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대학에서 사진 강의를 들으셨다고 하셨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겠나.



    이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건 못내 부러운 마음이라기보다 잊고 있던 마음속 깊은 결핍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생을 함께 살아갈 동반자평생을 가꾼 자신의 정원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고유한 재능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는 잘 살았다고 담백하게 웃을 수 있는 삶.

완생 完生

그건 완전히 다 이루어 낸 삶을 산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러니 나도 속으로 다짐할 수 밖에...


나도 저리 살아야 할 텐데.

부지런히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내고

나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게 하고

여생을 다정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RDBjqPpc32w&t=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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