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지인에게 낚시로 잡은 한치를 얻어 오셨어요. 지난 주말에 잡자마자 냉동시켜 신선하다는 한치 8마리를 받았는데,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나 막막하더군요. 오징어는 친숙한 식재료인데 한치는 처음 요리하는 식재료인 데다가 막상 보니까 생각보다 작더라고요. 제가 갑오징어와 한치를 헷갈린 모양이에요. 이래저래 인터넷을 찾아보니 6월 초에서 8월까지 한치가 제철이라 하고 한치의 맛이 오징어보다 낫다는 말도 보이네요.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다.
흠... 이 정도라면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새로운 식재료에 도전할 의욕이 생깁니다. 당장 냉동된 한치를 찬물에 녹였어요. 이런 해산물들은 다른 것 보다 손질하기가 좀 꺼려져요. 특히 그 미끈미끈한 촉감이라던지, 손질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비린내라던지... 그래서 니트릴 장갑을 꼭 끼고 손질을 하는 게 좋겠어요.
가위로 한치의 몸통을 자르고 내장과 등뼈를 빼냅니다. 한치의 등뼈는 투명한 플라스틱 같아요. 내장을 가위로 잘라서 버리고 다리의 유난히 긴 촉수의 끝부분도 자릅니다. 여기에 빨판이 많고 이물질이 끼기 쉬워서 먹지 않는대요. 이 긴 촉수 두 개를 제외하면 한치의 다리는 짧은 편인데, 다리 길이가 한치(3cm)라고 한치라는 이름을 붙였대요. 다리 부분을 까뒤집으면 이빨 같은 게 있는 게 이것도 손가락으로 밀어서 제거하고 다리와 몸통은 따로 분리합니다. 몸통은 껍질을 벗겨서 찜으로 먹고 다리는 손질 후에 볶아서 먹을 거예요.
동생이 한치를 대파와 같이 찌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줬어요. 그럼 대파받고 레몬 하나 추가!대파는 엄지손가락 길이로, 레몬은 편을 썰어 찜기에 깔아주고 그 위에 뽀얗게 속살이 드러난 한치의 몸통을 올려줍니다. 물이 팔팔 끓을 때 재료를 찌기 시작해서 6분, 불을 끄고 10분쯤 뜸을 들였어요.
그 사이에 다리는 먹기 좋게 잘라서 천일염을 뿌려 바락바락 주물러 줍니다. 다른 분들은 '바락바락 주무른다'는 표현을 쓰시나요? 천일염 결정이 한치 다리의 이물질과 껍질을 긁어서 나오도록 손으로 강하게 주물르는데 그 느낌이 '바락바락'하게... 아, 설명하는 게 어렵네요. 이렇게 주물러 주면 희멀건 거품이 생기면서 한치의 다리가 깨끗해져요. 물에 여러 번 헹궈낸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합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넉넉히 녹인 다음 한치 다리를 넣고, 간장 1스푼, 설탕 조금 뿌려서 휘릭 휘릭 볶아줍니다. 고소한 냄새가 끝내주네요. 접시에 담고 한치 찜도 꺼내고 그 사이에 회간장, 고추냉이, 초장을 준비하니 푸짐한 한치 밥상이 준비되었네요.
우선 한치 찜의 맛은요... 와 한치가 왜 오징어보다 한 수 위라는지 알겠어요. 조금도 질기지 않고 담백하고 씹을수록 은은한 감칠맛이 올라옵니다. 대파와 레몬을 깔고 쪘더니 비린내도 전혀 없이 정말 향긋하고 맛있어요. 가위로 큼직하게 잘라서 회간장과 고추냉이를 찍어 한 입 먹으니 정말 맛이 좋네요. 초장도 맛있지만 한치의 담백함에는 간장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버터 간장 한치 볶음은 완전 술도둑입니다. 짭짤한 맛에 고소한 버터의 풍미가 곁들여지니 맥주 안주로도 소주 안주로도 손색이 없겠어요. 짭짤 고소 쫄깃한 한치 다리를 씹다가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니까 정말 행복하네요. 남은 국물에 밥 한 숟갈 넣고 슥슥 비벼서 김에 싸 먹으니 이것도 별미예요. 굳이 설명하자면 버터 간장밥의 어나더 레벨?
한 상 푸짐하게 펼쳐 넣고 먹는데 술도 술술 들어가고 밥도 술술 들어가는 느낌이라 자칫하면 과식하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자각했을 때는 이미 3명이 한치 8마리를 먹고 난 후였어요. 세상에...
요즘에는 제철이란 말이 무색하게 사시사철 마트에서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 있을 때지만 해산물만큼은 제철에 나는 걸 신선하게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그래서 겨울에는 조개를 찾아서 먹고, 봄이면 주꾸미를 찾게 되죠. 이제 6월부터는 한치가 제철이라니 간단하게 요리해서 드셔 보세요. 손질이 조금 번거롭지만 찜과 볶음의 요리법은 꽤나 간단하니까 마음만 먹으면 호다닥 근사한 한상 차림을 할 수 있답니다. 곁들이는 술은 시원한 맥주나 레몬 소주가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