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가족

가정이 무너질 동안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by 구름조각

독일에서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행기 안에서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11시간의 비행과 4시간의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속을 다 게워냈다. 변기통 안에 비행기 안에서 먹은 기내식을 고스란히 토해 놓았다. 집은 내가 떠나오기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집이 아닌 가족들은 그 사이 많이 변해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어머니의 부채 때문이었다. 내가 독일로 오기 전 4년 동안 아버지는 혼자 중국에서 일하고 계셨다. 그동안 엄마는 삼촌이 하던 파스타 가게를 인수받아 이모와 같이 파스타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잘 안되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그동안 아빠가 보내준 생활비에 몰래 대출을 받아 메꿔보려 했었으나 여의치 않았고, 일단 가게를 어설프게나마 정리한 상태였다. 그때 마침 아빠가 귀국하면서 더 큰집으로 이사 가자고,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지 않냐고 물어봤다. 엄마가 대답을 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모아둔 돈은커녕 되려 빚이 있음을 고백했다.


일단 나의 아버지에게 대해 잠깐 언급하자면, 아버지가 15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3남매를 건사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왔다. 그런 아버지에게 가난이나 빚이라는 단어는 당신의 인생에서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에 갔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장학금을 받았고, 졸업해선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하면서 재테크라곤 적금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사 갈 때 어머니는 대출을 내어 더 큰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끝까지 빚은 안된다며 고집을 피워 24평에 들어갔다. 이후 엄마가 제안했던 36평 아파트의 가격이 더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아버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알뜰살뜰 아껴가며 사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인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 모르는 빚이 있다는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날 부모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동안 방 안에서 울고 있던 동생이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때 난 독일에 살던 때였는데 부모님이 곧 이혼할 거 같다며, 너무 무섭다고 우는 동생을 전화로 달래주었다. 특히나 아버지가 동생에게 "가정이 무너질 동안 넌 뭘 하고 있었냐!"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말에 숨겨진 뜻이, 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었는지 말해줘서 더 속상했었다. 그럼에도 난 이 일이 각 가정마다 있는 하나의 해프닝이며 감정이 가라앉고 천천히 대화를 해보면 금세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낙관적인 예상은 나의 뒤통수를 쳤다.



이 일은 생각보다 더 꼬여 있었다. 두 분은 서로 끝을 낼 듯 싸웠지만 쉽게 가정을 깰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모든 빚을 투명하게 밝힐 것을 거듭 요구했고 어머니도 모든 걸 솔직하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모든 걸 덮어두고 일단은 빚을 청산하는데 마음을 모으자 했지만 허술한 어머니가 깜빡 잊고 말하지 않은 소액대출이 하나 있었다.


고지서로 또 다른 대출이 있다는 걸 확인한 아버지는 어머니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속인 거라고 확신했고 어머니가 몰래 외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뢰가 한번 깨지고 나면 의심이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다. 당시 부모님은 일 때문에 따로 살고 있었고 그 때문에 싸우든 대화를 하든 오해를 푸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가정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독일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우울증에 힘들어서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그 어떤 말도. 내가 안정감을 찾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가족 공동체는 산산조각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쩌면 끝없이 추락하는 그 악몽에서 그물망이 되어줄 거라고 기대한 가족이란 인연의 끈이 다 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시종일관 어머니를 쳐다보지 않았고 유독 어머니에게 말할 때만 아주 차갑고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말로 다 하진 않았지만 눈빛과 표정으로 계속 어머니를 책망하고 있었던 거다. 어머니는 유독 작아진 몸으로 계속 눈치만 보고 있었고 어떻게든 실수를 바로잡아 보려고 고군분투 중이었다. 어머니 입장에서도 말할 수 없는 사정과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나는 이 모든 일이 어머니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 와중에 내 동생은 이런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힘들어하며 부모님 사이의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이 일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로 반대쪽으로 뛰어가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팔을 꼭 쥐고, 모두가 피해자인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찢어진 가족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의 상처는 덮어둔 채 안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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