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농담, 저는 재미없네요.

거친 사회생활을 해쳐나갈 실용 병법

by 구름조각

난 착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되도록 착하게 살고 싶다. 일평생 사회의 질서를 잘 지키며 살아왔고 양심껏 살았다. 아무리 돈이며 권력이 좋아도 남한테 함부로 상처를 주거나 폐를 끼치는 것도 싫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더러운 수를 쓰는데 머리 굴리고 싶지도 않다. 근데 그렇게 선하게 살겠다고 호구가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를 이용하려는 속이 시꺼먼 사람들과의 전투에서 최대한 아군의 피해는 줄이고 적에게 치명타를 날릴 슬기로운 병법서가 필요하다.


우선 삶이라는 전쟁터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가 매일 같이 벌어진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직장에서 돈을 벌고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국지전(찔러보기)이나 게릴라전(치고 빠지기) 같은 양상의 소규모 전투가 자주 일어난다. 물론 가끔 서로의 손에 피를 묻히는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문명사회에서의 전면전은 서로 정치력을 겨루는 일이거나 폭로 같은 여론전 양상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어설픈 평화주의자가 나서서 모두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말하는 경우, 작은 전투를 전쟁으로 번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되려 소규모로 힘을 겨루며 서로 견제하는 상황이 표면적인 평화를 지속할 수 있다.


개개인의 전투력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인간 군상이 참으로 다양하여 모두가 칼 하나 든다고 전쟁터의 장군이 될 수는 없다. 누구는 칼을 쥐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지려 버리거나, 적을 찌르라고 준 칼을 자기 자신이나 아군에게 휘두르는 일도 적지 않다. 애초에 싸움도 갈등도 모르는 평화주의자가 있는 한편 스쳐가는 벌레 한 마리에도 대포를 쏘아대는 무식한 자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본인의 전투력의 정도를 어느 정도 파악해 놓는 것이 좋다. 내가 남에게든 자기에게든 얼마만큼의 의지와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인지 파악해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지만 살면서 마주칠 적들은 다양하니 일단 나 자신의 레벨을 알아 두자.


전투력 측정의 지표


1. 체력과 신체 에너지

화를 내는 그 자체로 심장이 벌렁대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어쨌든 분노라는 감정 자체는 굉장한 에너지 소모를 가져오기 때문에 타고난 체력이 약한 사람은 직접적인 분노 표출이 되려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 평소 육체노동을 즐기고 운동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제법 비축해 놓은 에너지가 많아서 필요할 때 화를 터뜨리는 인간 폭탄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본인이 분노 조절이 잘 안되고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나는 사람이라면 스포츠로 건전한 공격성 표출을 해보자. 반대로 선천적으로 배터리 용량이 적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든든한 아군을 확보하는 전략이나 심리적 기술, 혹은 타이밍을 잘 맞춰 치고 빠지는 기술을 터득하자.


2. 두뇌 회전 속도

날카로운 혓바닥은 모든 신체적 폭력이 불법인 문명사회에서 가장 날카로운 무기다. 오죽하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겠나. 공격받은 즉시 상대의 논리를 비틀어 웃음거리로 만들거나(조롱) 상대가 꼼짝 못 할 논리로 압살(비판) 해버리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공격받은 즉시 빠른 두뇌회전으로 할 말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모욕을 받아도 그 자리에서 말 못 하고 그날 집에 가서 이불을 걷어 차는 사람에게는 적합한 전략이 아니다. 안 되는 일은 빨리 포기하고 다른 방어법을 찾자.


3. 공격성의 방향

공격성의 방향은 주로 무의식 영역에서 고정되어 있어서 바꾸기 쉽지 않다. 공격의 방향이 외부로 향하는가 내부로 향하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쉽게 말해서 남 탓내 탓의 차이이다. 남 탓에 해당되는 외부적 요인에는 사회, 공동체의 규칙, 타인, 시스템, 환경적 조건 등이 포함된다. 내부로 향하는 공격성의 방향을 파악할 때 나의 내부를 어디까지 규정하는지도 중요하다. 가끔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푸는 사람도 있는데, 가족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면 내부로 공격성이 향하는 타입이고, 가족도 타인(외부)으로 생각한다면 자기보다 약하다고 계산되는 외부 존재에게 화를 쏟아내는 사람이다.


4. 공격성 표출의 수단 (본인과 상대에게 해당되는 것이 뭔지 생각해보자)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공격 : 화가 나면 그게 곧장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 앞 뒤 없이 지르다가 주변인들의 지지를 잃고 좋지 않은 평판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공격 : 여자들 사이에서 말하는 '여우짓'에 해당한다. 간접적이고 비언어적인 뉘앙스와 제스처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죄책감을 전가하여 조종하려는 경우도 있다.

여론전 : 평판을 깎아내리는 험담이나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무리에서 이탈시키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과장해서 말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처럼 퍼지게 만드는 상황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본인의 생각과 사실(FACT)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험담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정보력으로 사람들의 지지를 모아 다수결에 의한 정치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복수 전략 짜기 :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 감정을 해소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혼자 글을 쓰거나 속으로 욕을 하면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들키면 큰일이니 남들이 알 수 없도록 잘 숨겨야 한다. 또 혼자 만의 생각이 점점 정교해져서 실제 사실과 멀어지거나 어느 날 갑자기 분노가 폭발해 충동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자해&자기 통제 : 모든 문제 원인을 자신에게 묻는 사람 중에 신체적으로 자해하거나 언어적으로 자기 비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해에는 칼로 상처를 내는 것뿐 아니라 폭음, 과식, 건강을 돌보지 않거나 과하게 자신을 몰아치는 경우도 포함된다. 본인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열중하는 사람 중에 심리적 자해가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그들은 자기의 결핍과 단점을 크게 보면서 자기 학대에 가까운 자기 개선 의지를 불태우다 기어이 건강을 해치고 만다.

언어적인 공격 : 언어적 공격에 자신 있는 사람은 매번 크고 작은 토론판에서 쓸모없는 논쟁에 끼어든다. 이들에게 토론이란 자기의 무기를 갈고닦는 대련장 같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말싸움에서 자기가 이긴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네 말이 맞다."라고 말할 때는 상대가 진짜 옳다고 생각하기보다, 더 이상 공격적인 아가리 파이터와 말 섞기 싫어서 대충 대화를 끝내려는 경우가 더 많다.

수동적 공격성 : 앞에서는 동의했지만 뒤에서 꾸물대면서 협조하지 않거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웅얼거리면서 불만을 쏟아대는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수동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꾸준히 비협조적인 태도와 못 들은 척하는 귀머거리 전략으로 성격 급한 상대방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직접적이고 언어적인 공격성을 띄기 때문에 공격받은 즉시 말로 되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지나치게 전투적이라고 평판이 깎이거나, 잘잘못과 관계없이 가해자로 오해받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여론전이나 심리전에 취약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정치력을 기르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방법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내편으로 만들어두는 전략이다. 애교, 유머, 뒷담화 같은 것들은 잘만 갈고닦으면 훌륭한 처세 기술이 된다. 애교는 주로 나에게 불리한 상황을 교묘하게 넘어가기 위해, 유머는 말속에 뼈를 담아 웃으면서 화를 내기 위해, 뒷담화는 집단에서 누가 쓸모 있는 정보를 가지고 오는지 파악하고 누가 나의 잠재적인 적이 될지를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유교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분노라는 감정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분노는 예의가 없거나, 모임의 분위기를 흐리고, 요령 없이 권위에 도전하며,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분노라는 감정은 위협에서 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생기는 감정이다. 그러니 화가 난다는 것은 일단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거나, 위험에 처했다는 말이다. 그럴 때 한번 생긴 공격성을 억누르려 해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뒤늦게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질병으로 찾아온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분노가 일었을 때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해 문제의 핵심을 향해 정확하게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 방향은 나를 모욕한 사람을 향하거나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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