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만큼치사랑은 서글프다

부모를 사랑하려 애쓰는 자녀들

by 구름조각

예전에 도서관 유아실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유아실은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책을 구비해 놓고 있기 때문에 주로 엄마의 손을 잡은 어린아이들이 많이 온다. 그날은 똘똘하게 생긴 예쁜 여자아이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엄마의 손을 잡고 왔다. 난 그 모녀가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아이의 맑고 예쁜 목소리와 좀 특이한 엄마의 행동 때문이었다. 아이 엄마는 유아실에 들어오자마자 옥스퍼드 영어 동화 코너로 가서 영어 책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보지도 않고 표지가 노란색인 것만 골라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엄마의 뒤에서 서성이다 "내가 보고 싶은 거 골라도 돼?"라고 물었는데, 엄마는 대꾸도 없고 딸아이를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노란 커버의 영어책만 고르고 있었다.


싫은 소리 하나 없이 오래도록 엄마의 등을 보고 서 있던 여자아이를 기억한다. 그 아이는 대꾸 없는 엄마가 익숙한 것 같았다. 책을 다 고른 엄마가 한마디도 없이 책을 대출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나가는 동안까지 아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책을 골라도 되냐는 질문도, 엄마는 왜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냐는 투정도 하지 않았다. 유난히 착한 아이는 그런 엄마를 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엄마 또한 대꾸 없는 엄마였다. 감정 기복이 있고 때로 자기의 생각에 빠져 불러도 대답이 없는 적도 있다. 나의 엄마는 특별한 감수성을 지닌 분이었다. 드라마에 푹 빠져 소녀처럼 웃음 짓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자기 일처럼 눈물을 흘리는 분이다. 엄마는 대학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했고 실내장식, 요리, 바느질, 뜨개질, 패션 등에 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일을 하면서 나에게 '여자의 자존심'을 가르친 분이다.


여자가 자기가 신을 구두와 핸드백을 사는데 남자의 허락을 받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결혼을 해서도 절대 자기 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


런데 어린 나의 마음엔 못내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반겨주길, 어린 나에게 더 어린 동생을 맡기지 말아 주길 바랐다. 잘 해낼 거라는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게 기쁘면서도, 엄마가 자신의 일을 나에게 떠넘기는 것 같다는 불편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이런 양가감정은 성인이 된 지금도 그렇다. 엄마의 사랑은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하지만 때로 나를 나약하게 만들고 그 품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왠지 모르게 외로웠던 나의 유년기를 투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형적인 착한 아이였다. 또래보다 성숙하고 일찍 머리가 자라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부모의 기대를 받고 자란 아이. 내 시선을 잡아채는 아이들도 그렇다. 투정 부리지 않고 조금 일찍 자라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들. 그렇게 착하고 연약한 아이들은 부족한 부모를 알아서 사랑으로 보듬는다. 어른이 더 성숙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부족한 어른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그들의 이기심을 인내하고 있는지, 여러 번 기회를 주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려 애쓰는 만큼 자식도 부모를 사랑하려 애쓴다. 사람들은 부모 자식의 연이란 양쪽 모두에게 랜덤(random)이란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어떤 자녀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만큼 아이에게도 부모를 선택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어리둥절한 채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서툰 부모들이 주는 서툰 돌봄을 감내하며 하나의 인간으로 무럭무럭 자란다. 일관성 없고 감정에 서투르며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을 존경하는 부모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유교 국가에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마냥 미화하고 찬양하면서 자녀에게는 그런 부모를 마땅히 존경하고 사랑해야 할 의무감과 그 사랑에 대한 묘한 죄책감을 안겨준다. 자녀 된 우리에게는 부모를 거절하거나 부정할 권한이 없다. 그런 건 감히 나를 키우기 위해 애쓴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않는 막돼먹은 자식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러니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폭력은 쉽게 훈육으로 감춰지고, 그들 또한 미성숙한 인간이란 사실은 숭고한 부모의 사랑이란 이름 앞에 가려진다. 마땅히 자녀를 위해 돈을 벌어다 주니 가끔 욱하는 마음에 소리를 지를 수 있고, 자식을 교육하다 보면 내 마음 같지 않아 한번쯤 손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게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이다.


부모를 미워하지 않기로 한 것은 내가 그들의 피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내 안에 흐르는 그들의 유전자를 미워하고 부정하면 곧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 나를 사랑하며 그들도 사랑하기로 했다. 나의 미성숙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그들의 미성숙함을 받아들였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엄마의 말이다. 엄마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자라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최선을 다했더라도 너에게 충분하지 못했을 거라 말했다. 24살의 나를 생각하면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엄마를 이해한다. 그 시절의 나는 참 나 밖에 모르고, 세상 물정도 몰랐으니까. 그에 비한다면 열이 오른 나를 밤새 물수건으로 닦아 주던 엄마는, 매일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리던 엄마는, 뱃속의 내가 잘 못될까 봐 감기약도 먹지 않아 심한 기침에 기어이 목소리가 변해버린 엄마는 날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내 친구들을 얘기를 듣다 보면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그나마 내 부모님은 부족했으나 그걸 인정했고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그러나 가끔 부모 교육 콘텐츠나 유튜브 영상 댓글에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자녀들의 고해성사가 이어진다. 그들은 고백한다. '나는 내 부모를 증오한다고. 그들을 지우고 싶다고. 내가 바란 건 사랑받는 것뿐이라고.' 부모라는 인간들을 미워하는 것이 마땅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사연에도 끝내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부모라는 단어 앞에서는 상처 받은 어린이로 돌아간다. 부모를 욕하고 증오해도 끝내 죄책감과 슬픔을 눈물로 흘려댄다. 결국 받고 싶었던 건 다정한 사랑과 따뜻한 인정이다. 누가 치사랑은 내리사랑만 못하다 하였나. 부모를 사랑하려 애쓰며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그들의 치사랑은 너무 눈물겹다.


*치사랑: 손윗사람을 향한 사랑

*내리사랑: 손아래 사람을 향한 사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착한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