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영리한 머리와 그렇지 못한 인성
착한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흔히들 많이 하는 말이고 나도 한때는 그리 생각했다. 성공이란 비열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착한 사람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을 관찰하면 반드시 들어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성공의 본질은 무엇이고 착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인간 세상에서 힘이라고 불리는 것들. 외모에서 오는 매력, 유명세에서 오는 영향력, 돈에서 오는 재력, 자리에서 오는 권력, 하다 못해 몸의 체력 같은 것들은 우주의 중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중력이 큰 행성 주변에 많은 위성이 있듯, 사회에서도 강한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모인다. 물론 그들이 힘을 잃으면 주변을 맴돌던 사람들은 썰물 빠지듯 사라진다. 강한 자가 약해지면 사람을 잃고 배신당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인 셈이다. 내가 힘이 있을 때는 사람이 모이고, 힘과 함께 사람이 떠나간다.
성공이란 대체로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돈을 벌고, 유명세를 얻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은 실로 치열한 경쟁과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는 길이다. 대체로 사회에서 성공을 하기 위한 길은 게임에서 레벨 업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뼈 빠지게 삽질로 경험치를 쌓든, 운 좋게 공략집을 발견하든, 현질로 비싼 아이템을 사서라도 중간 보스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선 영리한 전략과 성공을 위한 욕망이 필수적이다.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욕망은 그 자체로 끝이 없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착하다는 자질은 성공과 관계없다. 성공에는 전략과 욕망이 필요할 뿐, 선과 악은 중요하지 않다.
성공한 사람이 착하다면 그 사람이 착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고,
전략이 뛰어났고 성공을 위한 동기가 분명했을 뿐이다.
반대로 나쁜 사람이 성공했다고 해도 그 사람이 나빠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무자비 하지만 효과 있는 전략을 선택했고, 양심보다 욕망이 강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착한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믿는 이유는 성공한 사람 중에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더 많아 보여서일 것이다. 실제로 영리한 두뇌와 강력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 착한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처음엔 착한 사람이더라도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은 후엔 부패하기 쉽다. 세상에 거칠 것이 없고 법 위에도 설 수 있는 권력이 생긴다면, 그 후로는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만 스스로 행동을 제어하고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은 너무도 달콤하고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쾌락이 너무 많다. 그래서 누군가의 본성은 그가 실패했을 때보다, 많은 걸 가졌을 때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착하다는 단어도 쉽게 의미가 흐려지는 단어다. 우리는 규칙을 잘 지키는 것과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을 혼동한다. 어린 시절 교육이나 권위자에 의해 정해진 규칙을 충실하게 지키도록 훈련받은 사람은 대체로 '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열심히 공부하고, 규칙을 잘 지키고, 사회화가 잘 된 사람. 그런 사람들은 힘이 없을 때에만 착하다. 사회의 권위와 어린 시절 교육으로 만들어진 초자아의 힘이 자신이 가진 힘보다 클 때에만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힘의 저울이 자신으로 기울어지는 순간부터, 아무도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수 없고, 주변 사람들이 나의 재력에 굽실대며, 영향력에 무릎 꿇는 순간부터 그는 괴물이 되고 만다. 그가 가지고 있던 착한 모습은 오로지 사회화 교육의 결과일 뿐이다. 본성이 선한 사람이면서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고 스스로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만이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착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아둔하고 나약해서 효과적인 전략을 찾지 못한 것뿐이다. 성공하려는 욕망이 없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성공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 오히려 눈먼 사회이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방향과 각자의 속도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부패한 성공을 바라볼 때 무작정 비난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부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착해서가 아니라, 우리 손에 칼이 쥐어진 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릴 때 읽은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소설 때문에 우리는 막연히 착함의 대가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콩쥐는 착함의 대가로 왕과 결혼했고, 흥부는 착함의 대가로 부자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착하게 행동하면 부와 지위가 마땅히 따라와야 한다고 믿는다. 착한 사람이 건강하게 잘 살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그런 류의 소설 들은 사람들을 말 잘 듣게 길들이기 위한 판타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보편적인 교육시스템이 없는 조선시대에 글 모르는 평민들을 사회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였을 것이다. 말 안 들으면 호랑이나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는 으름장이 채찍이라면, 착한 사람이 신분상승도 하고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당근이었겠지. 진실은 아무 대가 없이 착하기로 한 사람만이 진짜로 착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