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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Sep 15. 2021

최백호의 목소리는 어떻게...

박주원이 쓰고 최백호가 부르는 <방랑자>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고 장르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나마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면, 좋은 음악을 들으면 잊지 않고 기억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한 곡을 수백 번 들으면서 외우듯이 노래를 듣는 나 자신이 너무 강박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이런 정성으로 공부를 했으면 명문대를 갔을 거라고 자조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진짜 음악 애호가들에 비해 내가 투자하는 노력과 시간은 가벼울 뿐이다. 그래서 정말로 음악을 사랑하고 자기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음악을 잘 듣는다. 마치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듯 그 사람의 음악 취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사랑하게 된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그의 취향을 나의 취향으로 가져오는 것. 내가 하나의 장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여러 장르와 시대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다.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최백호의 목소리가 만난 <방랑자>라는 곡.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 노래를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알려준 건지. 친하게 지내던 카페 사장님이었는지, 기타를 치던 첫사랑 오빠였는지. 사람은 잊어버렸고 그가 추천해준 노래만 기억에 남았다. 나는 이 노래를 참 좋아해서 이 한곡만 무한정 들으면서 집 근처를 2~3시간씩 걸어 다녔다. 제목처럼 마치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라도 된 것 마냥, 정작 집에서 그리 멀어지지도 못한 채 말이다.


    스패니쉬 기타 리스트인 박주원의 [슬픔의 피에스타]라는 앨범 수록곡이다. 한국의 집시 기타계의 거장이라고 불린다는 박주원. 그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기타로 저런 소리도 낼 수 있구나!'하고 감탄했고, 박주원이라는 기타리스트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자연히 <방랑자>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아 이런 걸 디깅(Digging: 채굴, 발굴)이라고 한다지? 귀로 듣고 관심 있는 분야의 음악을 찾아가는 것. 책으로 보고 배우는 것과는 다른, 철저히 경험에 의한 학습이다. 이렇게 해서 정말 내 취향에 딱 맞는 곡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금광에서 금을 찾은 것처럼 기쁘다. 깊은 산에서 나의 보석을 찾은 느낌이니 발굴이라는 의미의 디깅이란 단어가 참 적절한 것 같다.  


    <방랑자>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이 쓸쓸한 목소리가 얼마나 심장을 아프게 하던지. 최백호의 목소리는 어찌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나 생각했다. 그래서 최백호의 노래를 찾아서 들어봤지만 이상하게 그의 다른 노래에는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여전히 쓸쓸하고 많은 감정들이 뒤얽힌 풍부한 목소리로 노래했지만 어째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은 것이다. 박주원의 기타가 마치 보컬처럼 연주하고 그 소리와 뒤섞인 최백호의 목소리만이 나를 울게 한다. 마치 노래하는 것 같은 기타 소리와 통기타 소리 같은 목소리가 어우러진 노래. 그래서 나는 <방랑자> 안에 흐르는 최백호의 목소리가 좋다.


    시작이 같은 멜로디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여러 번 듣고 있으면 영원히 반복되는 방랑(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의 루프 속에 갇힌 것 같다. 목적지 없이 계속 바람이 일러주는 대로, 발이 닿는 대로 걸어가는 사람. 이 노래에 흠뻑 빠졌던 그 시절, 그때의 나도 아마 방랑자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갔던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데 멈춰 있을 수는 없는 마음이라 그저 발이 닿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계속 걸어갔던 것 같다.


    지금도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자유를 찾아서 가만히 멈춰있지 못하고 의미 없는 춤을 추듯이 살아가고 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니, 굳이 어디로 도달하거나 애써서 쟁취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발 없는 새처럼 살아가고 싶다. 머무르지 않고 계속 삶을 배워가는 여행자처럼. 그래서 눈 감는 순간 세상은 참 아름다웠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간의 삶은 참으로 허망하고 고되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몇 안 되는 행복하고 경이로운 순간들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든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말하고 싶다'는 것은 아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실 아직은 아이들에게 인생이 참 살아볼 만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부끄럽다. 내가 살아본 인생에서는 아직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삶의 희망을 가졌다. 그는 인생은 참 고되지만 그래도 그 자체로 즐거운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할 것은 내 앞에서 펼쳐지는 삶을 즐겁게 바라보고, 서 있는 삶의 무대에서 내가 맡은 배역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라고. 그래서 나도 나의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가기로 했다.


머무르는 것도 여행(인생)의 일부라면 머무른 자리에서 내 할 일(역할)을 찾아내는 것도 나의 책임이니.


어느 자리에 가도 나의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내 삶의 목적은 충분히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할 일을 완수하면 앉은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또 홀연히 길을 떠나겠지. 새롭게 만난 세상을 여행하면서 인생에 대한 지혜를 얻는다. 그리고 그 지혜를 모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지금 나의 역할인 듯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6mPIKrNQojo

<방랑자>-박주원(feat. 최백호)

처음처럼 영원히 쉴 곳 없는 어딘가 외로운 방랑자여

처음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디선가 날 볼듯한 그대여

사막에서 길을 찾는 갈길 없이 떠도는 형 형색 모래알처럼

나도 그 길 걸어가네 어린 왕자 되어

장미꽃처럼 넌 뜨겁지는 않아도 나에게도 그런 사람 있다

사막에서 길을 찾는 더 갈길 없이 떠도는 형 형색 모래알처럼

나도 그 길 걸어가 어린 왕자 되어

장미꽃처럼 넌 뜨겁지는 않아도 나에게도 그런 사람 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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