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너의 일, 우리의 일
<히말라야>라는 영화가 있다. 황정민이 주연으로 실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이다. 이 영화는 히말라야 등반 중 사망한 동료의 유해를 찾으러 가는 내용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소싯적 산악회 회장으로 알프스 아이거 북벽을 등정하고 온 이력이 있었다. 관심 있을 법한 영화라 같이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시 사망한 사람은 아버지의 후배였고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 함께 술도 마시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니 아버지에게 <히말라야>는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잊고 있던 고통을 상기시키는 트리거(trigger)가 되고만 것이다. 평소 늘 무덤덤하게 감정표현이 많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었다.
범죄에 대한 이야기도 제3자에게는 조금 자극적인 뉴스에 그칠지도 모른다. 평범한 우리는 매일 저녁 밥상 앞에서 잔인한 테러와 끔찍한 범죄에 대한 뉴스를 본다. 아동학대와 성폭행과 친족살인의 뉴스를 보면서 태연하게 '국이 싱겁지 않냐'라고 물어보는 풍경이 반복된다. 무뎌진 감정으로 보는 뉴스는 그저 정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그 일이 나의 친구, 나의 동생, 나의 딸의 문제가 되는 순간 뉴스는 끔찍한 고통을 상기하는 고문이 된다. 특히 나의 딸이 성폭행 후 살해를 당했다거나, 나의 여동생이 새벽에 전 남자 친구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는 일은 살면서 당할 수 있는 억울한 일쯤으로 치부할 수 없다. 슬픔과 분노, 괴로움, 죄책감 등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본 사건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괴로움을 주는 일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만에 하나라도 독자 중 하나가 피해자의 친구나 가족일 수 있고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한번 쓴 글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사건의 당사자도 아니고 그저 비극적 드라마에서 '지나가는 사람 3'이나 '창밖을 보고 있는 여자 1'에 불과한 내가 과거의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 자격미달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에 대하여 감히 말할 자격이 없다.
고민 끝에 사건에 대한 정확한 서술보다 그 사건을 가까이서 본 나의 감정과 고뇌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니 이 글은 어린 시절부터 뛰놀며 늘 안전하고 익숙하다고 느꼈던 나의 동네가 한순간 살인사건과 폭행 현장으로 변한 것을 지켜본 마을 주민의 심경고백이다. 또 사건의 피해자 모두 여성이었기에 같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에 대한 심경고백이다. 그리고 잔혹한 범죄를 보면서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심경고백이다.
그날 페이스북에 피해자의 친구들이 올린 실종 소식을 먼저 읽었다. 피해자는 나와 동갑이었고 피해자가 공부했던 대학교는 나의 집 근처였기 때문에 쉽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피해자를 혼자 택시에 태워서 보낸 후로 연락이 끊어졌다고 했다. 같이 실종소식을 읽었던 당시 내 남자 친구는 택시 기사가 범인일 거라며 이야기했었다. 3일쯤 지난 후에 실제 범인이 잡혔고 몇 시간 후 범인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그런데 범인의 얼굴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쯤 우편으로 배송된 성범죄자 알림이 통지서에서 본 얼굴이었다. 우편을 받았을 때 집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도 놀립지만, 그가 살고 있는 집이 초등학교 후문 바로 앞에 있는 원룸이라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13세 미만 아동 성추행전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 성범죄자가 초등학교 근처에 사는 게 말이 되냐며 분개했고 얼굴을 기억해 두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1년쯤 지난 후 그는 내 또래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얼굴이 공개되었다.
범인이 살고 있던 원룸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졌다. 사건 현장인 동시에 내가 자주 가던 카페와 가까운 곳이었다. 익숙한 거리라서 밤에도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을 다니곤 했었다.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동네가 한순간에 살인사건 현장으로 변했다. 1년 전 성범죄자로 얼굴이 알려진 후 살던 곳에서 쫓겨난 모양인지, 가해자의 새로운 집은 같은 동네 대학교 앞이었다. 그리고 그 대학을 다니던 여학생이 살해되었다. 경찰 조사 후 그는 범죄를 시인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형이 확정되는 동안 원룸 건물주인은 사건현장이었던 건물을 통째로 허물고 새로 지은 모양이었다. 폴리스라인이 쳐졌던 건물이 무너지고 새로 지어진 자리에 함박스테이크 가게가 생겼다. 함박스테이크 가게가 없어진 후에는 모던한 인테리어의 카페가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사람이 죽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풍경이었다.
그 사건이 유난히 마음이 쓰인 이유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쏘다니던 동네에서 나와 동갑인 여자가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공포만큼 사건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없다. 나는 한동안 11시 이후에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평소 조용한 동네를 거닐면서 즐기던 밤 산책을 빼앗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사는 동네'도 '내 집'처럼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 어머니부터 한 동네의 터줏대감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잘 안다고 생각한 나의 집 근처에 성범죄나 살인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의 안일한 생각에 불과했기에 그냥 내가 좀 더 조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시간이 꽤 흐른 후 다시 사건을 찾아본 계기는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올라온 트위터 캡처본 때문이었다. 당시 사건의 가해자가 재벌 2세고 피해자가 술에 취해 가해자를 따라갔다는 식으로 허위사실을 쓴 글이었다. 명백한 조롱의 뉘앙스가 느껴졌고 나는 마치 피해자의 유족이라도 된 것처럼 분노했다. 당시 사건의 기사과 정황을 정리한 글을 링크로 걸어두고 댓글로 허위사실 유포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놨다. 피해자를 탓하는 댓글마다 대댓글을 달면서 저 트윗은 잘못된 사실이며 가해자는 피해자를 계속 지켜보고 뒤를 쫓아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누구도 잘못된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심경으로 잠시 망연해졌다가 신고버튼을 눌렀다. 신고 사유로 '허위사실 유포'와 '누군가에 대한 언어적 폭력'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런 조롱이 섞인 허위사실이 피해자의 친구들과 유족들에게 명백한 언어적 폭력이 될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허위사실 유포를 선택하고 만 것은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는 이유보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이유가 운영자를 설득하기 쉬울 것 같아서였다.
허탈한 시간이 지나고 얼마 후 새벽 5시와 6시 사이, 어슴푸레 동이 트는 시각에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사는 골목 모퉁이에서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일이 있었다. 여자의 비명소리에 잠귀가 밝은 이웃 몇 명이 창밖을 내다보자 남자는 뛰어서 도망쳤다. 비명소리에 잠을 깬 우리 가족도 창밖을 내다봤다. 살던 빌라 4층에서 내려다본 것에 불과했지만 피투성이가 된 여자의 얼굴이 선명했다. 피의 색은 어찌나 강렬한지 눈물과 콧물과 피로 얼룩진 얼굴은 한 번만 보고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어머니가 놀라며 다친 여자를 걱정하는 사이 남동생은 슬리퍼를 신고 나가 남자가 사라진 쪽을 확인하러 갔다. 다른 주민이 신고한 덕분에 곧 경찰과 엠뷸런스가 왔고 주저앉은 여성 주변에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목격한 것을 경찰에 알리려고 겉옷을 챙겨 입고 나갔고 나는 그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아무 관심 없이 TV를 보고 있던 아버지를 흘끔 쳐다봤다. 젊은 여성이 비명을 지르고 피투성이가 되었다는데 한 번을 내다보지 않는 그 냉담한 무관심에 소름이 돋았다. 매일 뉴스를 보면서 정치 얘기에는 분개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일에는 적극적이면서 내 이웃의 일에는 저렇게 무심할 수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만약 나의 비명 소리가 창밖에서 들렸더라도 내 아버지는 한 번을 내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호기심 많은 동생은 나중에 동네 파출소에 전화를 해서 그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물어봤다. 처음 폭행 직후에 피해 여성은 가해남성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치료를 하고 진정이 된 후에 남성이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라고 진술했고 사건은 '데이트 폭력 사건'이 되었다. 경찰은 폭행사건으로 형사처벌이 진행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뉴스로만 보던 데이트 폭력의 기사보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이 준 이미지가 더 강력했다. 사는 집 바로 앞에서 그런 끔찍한 폭행 현장을 목격하니 남성의 완력이 여성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절절하게 체감하게 되었다. 그 후로 사귀는 남자 친구에게 집을 알려주는 일이 꺼려졌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공포감이었다.
후에 같이 일하던 직장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런 위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상상해봤다. 어느 날 밤에 혹은 낮에, 아는 남자 혹은 모르는 남자가 나를 완력으로 제압하려 하거나 위협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화를 했다. 한 동료는 평소에 복싱을 배워놓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위험할 때 주먹질로 나를 지키는 것보다 달리기 연습을 해서 도망가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아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그래서 새벽마다 달리기 연습을 했지만 막상 달려보니 너무 못 달려서 연습이 의미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리 단거리로 빨리 달려봤자 남성의 체력과 운동능력이 월등해서 도망치는 게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와 나의 웃음은 방어할 방법이 없는 공포와 불안을 농담으로 무마하려는 방어기제였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서로를 배려하는 일이다.
나도 알고 있다.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와 다른 타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남성들이 그렇게 여성을 해코지하려는 '악의'가 없다는 것을 믿는다. 내 삶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저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을 뿐, 나에게 육체적 폭력을 가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소수의 남성 몇 명이 준 상처가 치명적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 상처가 너무 깊어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그 후로 같은 '남성'이라는 분류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두려워했다.
'세상에 모든 남성들이 그렇지 않다'라고 믿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불특정 다수의 남성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키워 내 정신이 붕괴하는 것에 대한 방어기제인 셈이다. 그러나 '믿음'의 문제란 신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처럼, 실체가 없는 개념이 실존할 것이라고 자신을 속이는 것과 같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신의 존재에게 기도를 하고 누구도 증명한 적 없는 사랑의 이름을 말하듯이 나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눈앞에 낯선 남성으로서의 타자를 볼 때 공포와 혐오를 덧씌우지도 않고 애써 긍정하거나 믿으려 하지도 않는. 그저 눈앞의 존재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애정의 대상도 증오의 대상도 아닌 그냥 나의 세계에 나타난 낯선 존재로...
사진출처 Queen_hee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queen_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