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산소 자리

이별도 빚처럼 쌓여만 간다.

by 구름조각

여느 때와 같은 주말 오후에 엄마는 주방과 거실을 오고 가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귀가 잘 안 들리는 외할머니와 대화를 하느라 전화기에 큰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유난히 외할머니와 대화할 때는 엄마의 사투리가 심해졌기 때문에 나도 가끔 알아듣기 힘들 때가 있었다.


"어데 가자는 긴데? 오늘? 오늘은 안된다. 내 약속 있다. 그냥 다음에 가자. 엄마."


커피를 마시던 나는 문득 외할머니께서 어디로 가자는 건지 궁금해졌다.


"왜? 할머니 병원 가야 돼?"

"아니... 할아버지, 묘 자리 봐놨다고 같이 가자고 하시네."

"묘 자리?"

"응.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묻을 곳 알아본다고..."


가끔 어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깜짝 놀라고 만다. 특히 이런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때 그렇다. 동창들 중 누가 죽었다더라는 말이나, 친척들 중 누가 죽었다는 말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한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죽은 이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죽었다거나 가까운 친척이 죽었을 거라 가정해본다. 나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할 것 같은데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서 말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친구 같던 엄마가 나보다 훨씬 큰 '어른'처럼 느껴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 죽음을 모른다. 살아있는 사람 대부분이 죽음을 잘 모를 테니, 정확히 말하면 가까운 사람이 죽어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죽음이란,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의 장례식이나 어릴 때 키우던 병아리가 죽은 것뿐이다.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는 핑크색과 밝은 초록색으로 염색되어 있었다. 핑크색 염색이 된 병아리는 점점 털이 빠지며 쇠약해지다가 걸레를 빨려고 받아 놓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얕은 대야였는데도 작고 병든 병아리에게는 빠져 죽을 만큼 차갑고 깊은 물이었을 것이다. 한 달이나 키우던 병아리가 죽어도 나는 울지 않았다. 얼마 후 초록색 염색을 한 병아리 마저 죽어버리자 남동생은 빳빳하게 굳은 병아리 시체를 끌어안고 4시간을 내리 울었다.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아서 옆집 아주머니께서 달래주러 올 때까지 혼절할 듯 울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고 울지 않았던 나는 그때 키웠던 병아리들을 전혀 잊지 못했고 동생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릴 때의 나는 눈물로 충분히 슬픔을 흘려보내야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몰랐다.


아직 내가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 죽은 적이 없다. 그 말은 어느 누구와도 '영원한 이별'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앞으로 내가 견뎌야 할 이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의미이다. 나의 작은 고양이부터 시작해, 이제는 쇠약해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많은 삼촌, 이모들과 나의 부모님과 남동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고 점점 내가 혼자 남겨질 것을 생각하면 막막해지기만 한다. 이제껏 마땅하게 누려온 사랑에 대해 잔뜩 쌓여있는 빚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지독한 고리대금업자처럼 내가 사랑하고 아껴온 것들을 조금씩 빼앗아 갈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어느새 많이 쇠약해지셔서 자주 앓으시고 입맛도 없다고 하신다.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아버지와의 이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외할아버지의 재산 정리와 장례 절차와 묻힐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엄마의 상황에 나를 놓고 만약 내가 아버지의 묏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가정해보니 순식간에 눈물이 터져 나온다.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의연하게 부모의 죽음을 직면하는 걸까? 아직 감정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내가 문제인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대화에서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이미 많은 이별을 경험했기에 그 무게가 조금 덜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할머니에게는 평생을 살았던 애증의 남편이자 엄마의 아버지는 곧 생명이 다해 조용히 떠나갈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떠나보내는 것보다 저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조용히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것을 보는 무력감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나.


아버지의 오른쪽 다리에 난 상처는 몇 달째 낫지 않고 있다. 아버지의 머리에는 어느새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아졌고 넓었던 어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버지의 작아진 몸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내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깊은 잠 속에 빠져드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몸은 차가워지고 금새 한 줌의 재가 될것을 상상해봤다. 눈물이 터져서 황급히 방으로 숨어들었다. 이럴 때마다 내가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부모의 죽음에도 의연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엄마는 슬픔을 참고 있는 것에 불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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