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차가운 땅과 거대한 산, 그 앞에 선 작은 인간
땅이라는 놈은 신기하다. 그 땅에서 많은 것들을 길러내는 자애로움을 가지면서도 묘하게 외부의 존재를 밀어내는 속 좁은 성격도 있다. 제 품의 자식을 더 가엾이 여기는 어머니처럼, 낯선 이방인에게는 쉽게 그 애정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1989년 5월, 스위스 베른의 공항에 도착한 원정대 5명은 낯선 이국땅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이 중에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은 원정대 대장뿐이었다. 그나마 가까운 일본땅을 밟은 것이 전부라, 스위스의 풍경이며 사람들은 영 낯선 것이다. 짐을 찾고 입국 심사를 하는 내내 긴장하였고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알프스 등정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왔다고 설명하면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도착한 시간은 대낮이었음에도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을 나선 시간은 저녁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숙소로 이동해야 해서 대원들은 서로 스위스에 온 소감을 나누기도 전에 무거운 짐을 지고 이동해야 했다. 다행히 첫날은 산악회 선배의 인맥으로 스위스 현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집에 하루 머물기로 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P는 공항에서 나와 스위스의 땅을 밟은 순간 느꼈다. 이 차가운 땅은 쉽사리 이방인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5월에도 따뜻하지 않은 날씨와 어둑어둑한 하늘이 원정대의 여정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베른에서 머문 한국 사람의 집에는 여전히 한국에 있는 것처럼 특유의 한국 냄새가 났다. 그러나 따뜻한 환대에 여독을 풀기도 전에 기차를 타고 제네바로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제네바에서 다시 프랑스 샤모니로 이동해 체르마트, 아이거 북벽, 그란델발트를 등정하고 프랑스 니스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원정대원들은 크고 노란 스위스 치즈 덩어리를 사서 조금씩 베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꼬릿 꼬릿 한 치즈 냄새가 물릴 즈음에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 기차역 한편에서 코펠에 쌀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유럽에서 흔히 맡아볼 수 없는 쌀밥 냄새에 쳐다보는 시선이 많아도 그리운 고향의 냄새에 창피한 줄도 몰랐다.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이니 날이 춥지 않은 날이면 광장 한편에서 침낭을 깔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젊은 혈기에 모두 건강하니 시도할 만한 무모한 짓이었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도 가끔씩은 스위스 술을 한잔 먹어 볼까 싶어서 마트에서 술 한 병을 들었다 놨다 하곤 했다. 원정 대장은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술이나 살 바에는 게스트하우스를 하루 잡자고 따져 댔고, 술 좋아하는 P는 여기까지 왔는데 스위스 술 한 병은 먹고 가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마주친 한국 교민이 젊고 패기 넘치는 한국 대학생들에게 위스키 한 병을 사주는 행운도 누렸다. 그렇게 마신 술은 독하고 쓰고 아찔한 맛이었다.
2009년 어느 겨울날, 실기 시험을 준비하던 때의 일이었다. 밤 11시에 학원을 마치고 나오니 평소와는 달리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나를 데리러 오셨다. 어머니는 자주 오셨지만 아버지까지 오는 건 처음이었다. 배가 고프다는 내 말에 늦게까지 여는 고깃집에 가서 차돌 된장찌개와 밥을 하나 놓고 늦은 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그날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소주를 한잔 마셔서 인지, 늦은 밤에 딸과 아내와 함께하는 일탈이 즐거웠던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그 고깃집 벽에는 고흐의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라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그 그림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1989년 알프스 원정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전에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풀어놓은 적이 없었다.
아빠가 스위스에 처음 갔을 때 돈이 없어서 분수대 있는 광장 구석에 침낭 펴고 잔 일도 많았다. 하루는 자다가 너무 추워서 잠깐 눈을 떴는데, 이른 새벽에 한 카페에서 불을 켜고 장사를 하고 있더라. 푸르게 밝아오는 새벽에도 그 노란 조명이 반짝이는 그 풍경이 참 따뜻해 보여서 기억에 남더라고.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저 그림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네. 딱 저런 느낌이었어. 추운 새벽에 황금빛 불빛이 반짝이는 이미지.
그날 나는 혼자 새벽까지 눈물을 흘렸다. 과거를 회상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젊은 날의 열정이 잠깐 스쳐갔기 때문이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의 아버지에게도 20살의 젊음이 있었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정확히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린 건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의 젊은 날을 엿본 그날 나의 감정은 뭐였을까.
'젊은 날의 아버지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까지 져야 했을 삶의 무게를 느꼈기 때문일까.'
'어쩌면 나의 존재가 아버지의 젊은 날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이었을까.'
그저 나의 아버지에게도 지금의 나처럼 무모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날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흘렀다. 어쩌면 아버지의 삶에서 나의 미래를 얽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없이 세월을 견뎌내다 문득 과거의 청춘을 회상하는 나의 모습을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에서 보았던 것 같다. 아버지의 현재가 나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직감.
태어나는 것은 죽어가고, 어린것은 늙어가고, 새것은 낡아가고. 우리는 과거에서 와서 현재를 살며 미래로 나아간다. 그 끝없는 순환의 고리에서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견뎌야 할 때도 있고, 원하지 않는 것을 묵묵히 삼켜야 할 때도 있다. 아버지의 젊은 날과 늙은 아버지의 얼굴과 나의 젊은 날이 복잡하게 뒤섞인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의 여정을 느꼈다. 그날 후로는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아빠 없이 외로운 소년, 어머니를 사랑하는 고등학생, 가난해도 꿈이 많던 대학생, 첫 딸아이를 안은 젊은 아빠, 그리고 사회의 의무를 묵묵히 지고 가는 성실한 사람으로.
그렇게 새롭게 만난 나의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