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동호 작가님의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서평
카카오 음에서 호호 동호님을 처음 듣게 되었어요. (음은 오디오 플랫폼이니 뵙게 되었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네요.) '브런치 대상 작가들과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호호 동호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선명하게 남은 감각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이 분의 목소리가 참 즐겁게 들린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소리 배경에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참 좋다'는 거였어요. 자연스럽게 귀뚜라미가 우는 농촌의 배경에 있는 작은 집과 전등불 주변을 날아다니는 날파리 떼가 반짝이고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순박한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를 듣는 동안 저도 여름철 시골 마을에서 그 곳 사람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사람이 쓴 책이 읽고 싶어 졌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알고 싶어 졌다는 뜻이겠죠.
채식주의자인데 돼지를 키운다니,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동시에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소재 자체도 참신했지만 다른 무엇보다 글이 참 재밌습니다. 처음 돼지를 데려와 우리 안에 몰아넣기까지는 왁자지껄한 소동이 일어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어요. 캐릭터가 분명한 농촌의 동료들을 소개할 때는 무협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끄덕, '대상 받을 만해.'라고 아무것도 아닌 제가 인정할 정도입니다. 어찌 보면 생명을 키우는 것과 죽이는 것에 대한 진지하고 다루기 힘든 주제임에도 청소년 성장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몰입감으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재미있고 편안하게 읽은 글이라고 해도 고민의 깊이가 얕다는 뜻은 아닙니다. 빼곡한 참고서적과 영상 목록만 해도 작가님이 얼마나 '생명을 고귀하게 먹는 것'에 대해 고민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유쾌한 농촌의 일상과 돼지를 키우는 동안 겪은 좌충우돌 도전기 사이사이, 육식에 대한 사람의 욕망과 공장식 축산에 대한 비정함을 날카롭게 통찰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들에 제가 공감을 했어요.
한때 길고양이의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은 뒤, 잠시 육식을 멀리한 적이 있습니다. 출근길에 머리가 터져 길 위에 뇌가 흩뿌려진 고양이를 보았는데, 그 이미지가 주는 충격뿐 아니라 저의 생각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고양이의 몸통을 보기 전까지 분홍빛의 고기 조각들이 뇌라는 걸 인지하기 전까지, 저는 누군가 햄버거 고기를 떨어트린 줄로만 알았거든요. '아깝게 고기를 왜 버려놨지?'라고 생각한 순간에 고양이의 몸통을 보았습니다. 그날 집에서 반려 고양이의 작은 심장이 도곤 도곤 뛰는 것을 느끼며 머릿속에서 고양이의 시체와 슈퍼마켓에 진열된 고기 팩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먹는 고기가 동물의 시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충동적이고 강박적으로 고기를 끊었습니다.
100일간의 엄격한 채식 도전으로 많은 것을 느꼈지만 지금은 다시 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채식하던 당시에 머리가 너무 많이 빠졌거든요. 죄책감과 충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진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 고기를 먹는 생활을 하면서 머리도 풍성해지고 옆구리 살도 풍성해지고 있죠.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늘 채식에 대한 이상이 있습니다. 맛에 대한 욕망과 정신적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셈이죠. 아직은 욕망이 한 발 앞서지만 가끔씩 채식을 하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정신적 이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바삭하게 튀겨진 치킨을 뜯으면서 '만약 치킨을 먹기 위해 닭의 모가지부터 비틀어야 했다면 내가 치킨을 좋아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단히 어플로 주문하고 결제하는 치킨이 아니라요. 한 마리의 치킨에 닭을 키우고 목을 비틀어 뜨거운 물에 담가 깃털을 뽑고 내장을 제거한 다음 깨끗하게 씻어 토막을 낸 후에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야 하는 노동이 더해졌다면, 저는 치킨을 좋아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 마리의 치킨에도 수많은 단계가 있고 대부분의 노동을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있는 셈이죠.
먹고사는 것이 삶이라면 먹을 것을 구하고 요리하고 치우고 내가 사는 장소를 깔끔하게 돌보는 것 모두가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바뀌지 않는 모든 노동은 쓸모없고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받아요. 그래서 모두가 '요리를 할 바엔 시켜먹고 말지' 라거나 '이 시간에 돈을 벌어서 가사노동을 맡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노동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타인의 노동을 사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 삶의 많은 부분들이 타인의 손을 빌려 지탱되고 있어요. 이렇게 외주화한 삶은 하청업체에 고된 노동을 맡기는 대기업의 태도 같습니다. 귀찮고 더러운 일은 남의 손을 빌려서 하고 나의 편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만약 이 사회의 시스템이 붕괴되어 누군가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 중에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좋은 작품을 보면 긴 여운이 남습니다. 영화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좋은 작품이죠. 좋은 사람을 만나도 좋은 기분이 오래 유지되는 것 처럼요. 마찬가지로 좋은 책을 읽으면 긴 여운이 남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남기는 책은 내 삶을 바꿀 수 있죠. 물론 그 질문이 '이딴 것도 책이라고 내냐?'같은 역정이 아닐 때입니다. 책장을 덮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생명을 존중 할까?'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좋은 질문을 남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호 동호님의 책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는 저에게 좋은 질문을 던진 좋은 책입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었습니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뜻이죠.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