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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Dec 03. 2021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이상은이 부르는 <공무도하가>

    예로부터 강은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경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죽은 자들은 스틱스 강을 건너며 이승의 기억을 잊고 저승의 주민이 된다. 웹툰과 영화로 널리 알려진 「신과 함께」에도 삼도천의 존재가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황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황천길을 건넜다'라는 말로 인용된다. 


    고전시가의 공무도하가에서도 '님'이 '물'을 건넌다는 말은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수능을 위해 고전시가를 공부할 때 이 대목에서 울컥하고 말았다. 사랑하는 이가 죽고 슬피 우는 이의 노래에다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면서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 아등바등하는 일이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남의 절절한 슬픔이 3점짜리 시험문제에 불과하다니...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칼로 재단하고 멋대로 해석한다.     

출처 @misoda.story

    한 장의 그림을 보았을 뿐이다. 한 여자가 그네에 앉아 강 너머의 집을 보는 장면이었다. 아담하고 귀여운 그림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가 읽혔고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저 여자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는구나..." 먼저 저승길로 떠난 여자가 곧 자신을 만나러 올 '님'을 기다리며 꽃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님'은 이승에서 새 사랑을 만났을지도 모르고, 어디서 풍류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여자가 '저승'에 있을 거라고 느낀 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뒷모습 때문이다. 하늘거리는 옷자락과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진 저승에서도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그림출처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두고 온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 중 무엇이 더 고통스러울까?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깊은 원망이 섞여있을 것이고 두고 온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무거운 죄책감이 섞여있을 것 같다. 상대가 나를 잊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먼저 떠난 이의 마음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남겨진 이의 슬픔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무엇을 버렸다는 것을 쉽게 잊고 놓친 것만 아쉬워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죽음이라는 아득한 공허로 건너 간 이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영원한 이별, 영원한 그리움. 저승의 환상은 그리운 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고전시가 '공무도하가'에서 영감을 받아 가사를 쓴 이상은의 '공무도하가'의 가사와 신비로운 선율이 꼭 이러한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담다디'로 아이돌 급 인기를 누렸던 이상은이 인기를 버리고 자신만의 독특함을 노래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고 한다. 1995년 갑작스레 실험적인 노래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고유함을 찾아간 이상은의 결단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 그녀의 나이가 불과 25살에 불과했다. 이상은이 실제로 가까운 누군가를 떠나보냈는지는 몰라도 섬세한 영혼을 가진 아티스트 들은 직접 체험하지 못한 감정도 작품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 같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구절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의 정서는 고조선 시대에서부터 1995년 이상은의 가사로 그리고 2013년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이어진다.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는 시대를 관통해 전해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깊이 기억에 남은 두 장면은 강계열 할머니께서 먼저 떠난 자식을 위해 어린이 내복을 태우던 장면과 할아버지의 산소에 목놓아 울던 할머니의 뒷모습이다. 할머니는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를 떠나보내신 건지... 영화가 개봉한 후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남편)가 보고 싶어서 영화관을 서너 번 정도 찾아갔다고 하신다. 그 애틋함과 그리움에도 2019년 강계열 할머니께서는 고운 한복을 입고 노인정에서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지낸다고 하셨다. 여전히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실 때는 보고싶다고 우신다. 2021년에 96세가 되신 할머니는 강 건너에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 죽음이 두렵기보다 반가우실지도 모를 일이다. 



    아래의 영상은 이상은이 라이브로 부르는 <공무도하가>인데 젊고 음질은 좋지 못하지만 젊은 이상은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워서 가져왔다. 젊음은 저리 아름답고 반짝이며 타인의 인정보다 자신의 고유함을 선택한 그녀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공무도하가>- 이상은

아 님아 내 님아

물을 건너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 예 물을 건너시네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 님을 어이 할꼬 


공무도하 공경도 하 타하 이사 당 내공 하 


님아 님아

내 님아 나를 두고 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 예 물을 건너시네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 님을 어이 할꼬 


공무도하 공경도 하


타하 이사 당 내공 하 공무도하 공경도 하

타하 이사 당 내공 하 공무도하 공경도 하

타하 이사 당 내공 하 공무도하 공경도 하


님아 님아 내 님아 물을 건너

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

예 물을 건너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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