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Dec 02. 2021

"가장 나쁜 남자는 말이야."

드라마 <알고 있지만> OST

너... 가장 나쁜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알아?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내가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는 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야.


    맥주를 한두 잔 하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친구의 '나쁜 남자론'을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상기된 표정으로 나쁜 남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친구의 모습이 제법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때 친구와 나는 둘 다 연애를 하지 않고 있어서 틈만 나면 만나서 술을 마시거나 맛있는 음식에 장황한 수다를 곁들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정이 사랑의 기반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 친구를 우정에서 한 발짝 더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의 이야기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내가 쓴 단편 소설집 <제3의 여자>에 '구질구질한 연애'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


☞<제3의 여자> 읽으러 가기


    지금 다시 읽어보면 습작에 가까운 수준이고 끝맺음이 엉성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아쉬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처음부터 고쳐 쓰고 결말도 다르게 맺고 싶다. 그 소설의 주인공인 연우의 모티프가 된 사람이 아까의 '나쁜 남자론'을 주장했던 친구였다. 늘 사랑에 모든 걸 내던지는 친구의 '나쁜 남자론'은 절절한 슬픔과 분노에 한 스푼의 해학과 유머를 섞어 제법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의 '나쁜 남자론'에 반박하여, 난 어차피 사람은 다 자기 자신만 책임질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각자도생론'을 펼쳤다. 그러자 사랑에 빠지면 너와 내가 분리될 수 없다는 친구의 반박이 돌아왔고, 나는 그런 사랑은 어딘가 병적이라고 받아쳤었다. 이러쿵저러쿵 사랑에 대해 의미 없는 말들을 늘어놓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랑이란 늘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게 문제다.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같지 않은 게 문제고, 서로 손을 잡고도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게 문제다. 각자 도생론을 펼쳤던 나에게도 나름의 사정과 근거가 있었다. 뜨겁고 강렬하여 데일 듯이 아팠던 첫 연애를 끝낸 후 '다시는 이렇게 나를 다 내어주는 사랑은 하지 않겠다'라고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고 부른 감정들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무력한 지를 체감하고는 그 후 4년을 연애나 데이트도 일절 하지 않았다. 지독한 사랑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창 예쁘고 기회가 많았을 20대 초반을 그렇게 흘려보낸 것이 아쉽지만, 상처가 아물지 않은 마음으로 새로운 관계를 시각했다면 더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마 <알고 있지만>은 매력적인 남자에게 상처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결국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마는 유나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자친구의 나체를 조각으로 만들어 전시하던 정신나간 남자친구와 헤어진 '유나비'(한소희)에게도 매력적이고 불안정한 '박재언'(송강)이 다가온다. 둘은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 속에서 아슬아슬한 나날을 보낸다.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도 강하게 끌리는 마력. 가끔 사랑이란 건 자석의 N극과 S극이 끌리듯이 내 이성과는 아무 관계없는 끌림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머리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감정은 만유인력의 법칙같은 물리적 법칙에 의해 끌려가고 마는 것이지.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 원작 웹툰에서 웹소설, 드라마까지 좋은 이야기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어 여러번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조소과에서 그림을 그리고 낡은 앞치마를 입고 작업을 하던 '유나비'를 보고 '나쁜 남자론'을 설파하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 애도 미대에 다녔고 종종 작업실에 놀러가서 그 애의 작업물을 보곤 했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친구의 연애사를 다시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똑같이 사랑에 상처 받았지만 그 친구는 '더 사랑하기'를 선택했고, 나는 '사랑하지 않기'를 선택했었지. 극 중의 '유나비'와 '박재언'이 서로의 마음을 알고 안정적인 연애를 하게 된 것을 보며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친구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사랑하지 않기로 하고 마음을 굳게 닫아 걸었던 나도 결국 다시 사랑에 대해 글을 쓰기에, 지금 그 친구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갔을지 궁금해진다.  


<알고 있지만>-나이트 오프

늘 두근거리는 마음이 나에겐
아직 어색하고 낯설어 잘 모르겠어요
그대 나를 안고 싶다면 그렇게 말해요
이런 복잡한 놀이로 날 흔들지 말아요


나는 매일 밤마다 네가 싫은 이유를
생각해보다 잠이 들지만
넌 꿈속에서도 웃으며 나를 안고 어지럽게 해

너는 나쁜 사람이야 또 나쁜 사랑이야


내 맘을 다 가져가고
네 맘을 주진 않니
나쁜 사람이야 또 나쁜 사랑이야
내 맘 가지려면 그대의 마음도 줘요


네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는 게
난 좋은지 또 싫은지 잘 모르겠어요
그대 내가 아니면 안 된 다고 말해봐요
이런 알 수 없는 말들로 피하지 말아요


나는 매일 밤마다 네가 싫은 이유를
생각해보다 잠이 들지만
넌 꿈속에서도 웃으며 나를 안고 어지럽게 해

너는 나쁜 사람이야 또 나쁜 사랑이야


내 맘을 다 가져가고
네 맘을 주진 않니
나쁜 사람이야 또 나쁜 사랑이야
내 맘 가지려면
그대의 마음도 줘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요일 아침, 음악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