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2기 크리에이터 happycat님의 사랑이야기
당신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나에게 그는 마치 경고라도 하듯, "엄마는 나를 버렸고, 사랑했던 두 명의 여자 중에 한 명은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한 명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으니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뜻일까?
인터뷰를 시작하고서도 이런 이야기가 콘텐츠가 될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물었다. 인터뷰를 요청한 나도 그의 이야기가 듣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의 이야기에 끌리고 있었고 찬찬히 들어보고 싶었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 사랑 이야기라 해도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 그리고 이야기가 가지는 힘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다 얼마나 진실한지로 결정된다. 머뭇거리는 그에게 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이야기 수집가'라고 말했고 진실하기만 하다면 당신의 사랑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나를 통해 그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느끼는 가치가 전달될 거라고 믿는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그는 자신에 대해 귀띔이라도 해주듯 시를 한편 알려줬다. 허연 시인의 '나쁜 소년이 서 있다.'라는 시였다. 그는 자신이 나쁜 소년이라고 했다. 시를 읽고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나는 그를 푸른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푸르게 멍든 소년, 푸르게 슬픈 소년, 푸르게 사랑했던 날들에서 서성거리는 소년. 나쁜 소년이 아니라 단지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푸른 소년'이라고....
그의 어머니는 새아버지 밑에서 자라 심한 차별과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그것이 아들을 학대했던 어머니에 대한 면죄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해자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결혼 후에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싸웠고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며 푸른 소년이 자랐다. 어머니는 화가 날 때마다 아들을 심하게 때린 뒤에 그의 멍든 팔에 연고를 발라주곤 했다. 그것이 그에게 어딘가 비틀린 듯한 사랑의 방식을 학습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에 집에서 도망쳤다. 푸른 소년은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자신을 마구 때렸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엄마가 안 떠날 줄 알았지만 더 이상 엄마가 아닌, 여자로 살고 싶었던 그녀는 모질게도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났다. 중학교 2학년 때 떠났던 엄마는 위자료를 받으러 잠시 찾아왔다가 아들에게 정 한번 주지 않고 사라졌다. 그래서 푸른 소년은 자신이 두 번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20살에 군대에 가기 전에 다시 만난 엄마는 원망을 쏟아내는 아들을 외면하고 또 도망치듯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로는 엄마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에게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드리곤 했는데 "네가 머리를 빗겨줘서 잠이 잘 온다"라고 했던 어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 뒤로 만나는 여자 친구들에게 늘 머리를 빗겨 주었다고 했다. 사랑에 갈급했던 그의 어머니는 더 많이 사랑해줄 남자를 찾아서 일생을 방황했고 지금도 방황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정작 목마른 그녀의 인생에서 그녀를 가장 사랑해줬던 남자는 자신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잠들 때까지 머리를 빗겨 주었던 아들을 외면했던 그녀가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
사랑이 고파서 쉽게 마음을 줘버리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다가 친구의 여자 친구를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채팅으로 만난 친구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군대에 가기 전에 잠시 만나기도 했지만 곧 다른 남자와 바람을 폈다고 했다. 늘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을 하곤 했다.
이후 만났던 여자 친구는 우울증이 심했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남들은 흉터를 보면서 그만두라고 왜 이렇게 자해를 하느냐고 다그쳤지만 푸른 소년은 다르게 반응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지면 해!" 그렇게 상처를 내서라도 '너의 슬픔이, 고통이 사라지면 그렇게 하라'는 말이 특별하게 들렸다고 한다. 마음의 고통의 몸의 고통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일까? 애써 밝은 척했던 소년의 마음에 숨겨 놓은 슬픔과 같은 주파수를 가진 여자 친구였다.
슬픔을 품은 사람들은 세상을 다르게 본다. 여자 친구는 함께 카페에서 데이트를 하다가도 조각 케이크를 보면서 슬퍼했다. 원래는 하나였을 텐데 이렇게 조각난 것을 보니 슬프다는 특유의 표현들을 좋아했다. 푸른 소년은 여자 친구를 도울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다고 한다. 서로 위로하듯 사랑에 빠졌지만 그 누구도 서로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한강을 보면서 죽고 싶다던 여자 친구에게 "같이 죽을까?"라는 말을 한 뒤에 점차 멀어졌다고 했다. 애써 밝은 척하던 남자 친구에게 자신의 슬픔이 전염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던 남자 친구도 사실은 슬픔을 숨기고 있던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로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자해 흉터를 가리기 위해 긴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고 한다. 그녀와 헤어진 후로 푸른 소년은 애써 밝은 척하지 않고 자신의 슬픔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있다. 사슴같이 착하고 눈이 예쁜 여자 친구였다고 했다. 둘은 작은 원룸에서 3~4년 동안 함께 신혼부부처럼 살았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좋아서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고 했다. 비 오는 날에 엄마가 데리러 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는 말을 하자 비 오는 날에 항상 통근버스에 마중을 와 주었다. 어느 날은 그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양갈래 머리를 하고 마중을 와 주었다고 했다. 엄마에게도 받지 못한 사랑을 듬뿍 받았다. 푸른 소년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따뜻한 날들이었다.
인생은 쉽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에게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6개월간 의식불명의 상태였다. 의식을 되찾은 후에는 몸도 성치 않았고 병원비 때문에 모아 놓은 돈도 없었다고 한다. 그도 여자 친구도 불과 27살이던 때였다. 여자 친구를 놓아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못살게 굴고 막말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여자 친구는 1년 동안 곁을 지켜줬다. 그는 너무 사랑했던 여자 친구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헤어졌던 것뿐이다. 그 후에 여자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될 줄을 알았다면 끝까지 사랑하고 품에서 놓지 않았을 거다. 지갑 속에 여자 친구의 사진을 넣어 놓고 해마다 함께 갔던 겨울바다를 찾아갔다. 최근에서야 그 친구의 사진을 태웠다고 했다. 사진을 보지 않으면 얼굴을 떠올려도 흐릿해지는 게 싫어서 사진을 태우고 마음에 깊이 새겨 놓았다.
행복했던 날의 파편 같은 기억이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에 여자 친구와 함께 데이트하다가 푸른 소년은 물었다.
"너는 나를 왜 사랑해?"
"나한테 벚꽃을 귀에 꽂아주고 '너 예쁘다'라고 말해준 사람은 너밖에 없어."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했던 날들은 그렇게 과거로 남았다. 27살의 사랑 이후 올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했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날 밤에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날에도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아침 해도 뜨기 전에 호수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절반 정도 돌았을 때 어슴푸레하게 동이 트기 시작했다. 가장자리의 살얼음이 낀 호수에 백조 몇 마리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체증처럼 목구멍 안쪽 깊숙이 걸려 있던 슬픔이 울컥 올라왔다. 계절은 저절로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시간은 저절로 밤에서 새벽이 되는데 그의 인생에도 다시 봄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주를 봐주는 사람은 그가 활활 타오르는 나무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물이어서 타올라야 할 나무가 늘 슬픔에 젖어 있었을 뿐이라고, 그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단다. 어머니의 슬픔은 불타는 나무 같은 아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젖어 있게 만들었다. 젖은 나무에 불을 붙여봤자 매캐한 연기만 날 뿐이겠지. 그저 깊은 슬픔이 다 증발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내가 가진 말 중에는 그를 위로할 말이 없어서 고르고 고르다 ‘살아있자’는 말을 골랐다. 견디기 힘든 삶을 꿋꿋하게 버텨내듯 '살아내자'도 아니고 어딘가 먼 곳을 향해 나아가듯 '살아가자'는 것도 아니라 그저 이 자리에서 숨을 쉬고 '우리 살아있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생존기로 기록했다. 이 지독한 슬픔과 불행에도 견뎌낸 '푸른 소년의 생존기'인 그의 이야기는 전혀 보잘것 없지 않았다.
살아있다 보면 언젠가는 이 모든 슬픔이 마를 날도 오겠지.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러니 우리 살아있자. 겨울이 지날 때까지, 어둠이 걷힐 때까지, 슬픔이 마를 때까지...
저와 함께 음의 2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시는 happycat님의 이야기를 각색한 글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닉네임이 unhappycat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happycat이 되었더라구요. 가끔 사랑에 대한 소통방을 열고 DJ로 활동합니다. happycat님의 방송이 궁금한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음mm의 프로필을 팔로우해주시고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