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셰프가 소개하는 토마토 냉수프
토마토 가스파초는 스페인에서 먹는 냉수프입니다. 우리나라의 냉면처럼 무더운 여름에 입맛이 없을 때 생각나는 음식이죠. 예전에 즐겨보던 올리브 TV쿠킹쇼에서 김소희 셰프가 만들던 것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정겨운 부산 사투리에 독특한 헤어스타일, 야무진 손끝으로 음식을 만들던 김소희 셰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김소희 셰프가 자신을 위한 요리로 만든 토마토 가스파초의 맛이 궁금했어요.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레시피만 보고 만든다는 것은요, 소문으로만 듣던 보물을 지도만 보고 찾아 나서는 것과 같아요. 미지의 세계로 보물을 찾아 항해하는 해적 같은 거죠. 먹어 본 음식은 그 맛을 떠올리면서 조금씩 맛을 조절하면 되는데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그 기준을 몰라요. 그래서 정작 레시피대로 만들어 놓고도 ‘원래 이 맛인가?’하고 갸우뚱한 거죠. 제가 만든 가스파초도 갸우뚱한 맛이었습니다.
맛은 있는데... 이게 맞아?
재료는 잘 익은 토마토 3개, 양파 반개, 오이 반개, 파프리카 빨간색으로 1개 정도 준비하면 됩니다. 양파 대신 샐러리를 넣는 레시피도 있더라고요. 샐러리를 넣으면 신선하고 풋풋한 향이 더 강해집니다. 채소의 가벼운 맛을 꽉 잡아주는 것은 마늘입니다. 반 스푼에서 한 스푼, 입맛에 따라 넣어주면 돼요. 올리브 오일은 3 숟갈 정도 수프를 만들 때 넣어줄 겁니다. 먹기 직전에 수프 위에 조금 더 뿌릴 거예요. 식초는 발사믹 식초를 사용하는데 없으면 사과식초도 괜찮아요. 식초 대신 레몬즙을 듬뿍 뿌려도 좋습니다. 저는 발사믹 식초가 부족해서 레몬즙을 3 숟갈 정도 듬뿍 넣었어요. 신선한 맛이 살아납니다. 소금을 두 꼬집 정도 넣고 블랜더에 샥 갈아주면 돼요. 물론 소금은 여러분의 입맛에 따라 더 넣어도 좋습니다.
토마토 껍질을 끓는 물에 데쳐 벗기고, 양파, 오이, 파프리카 등을 손질하는 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재료만 준비하면 다 넣고 블랜더에 갈아주면 끝입니다. 통에 옮겨서 하루 정도 냉장고에 두었다가 먹어야 더 맛있어요. 특히 양파의 아린 맛은 하룻밤 숙성하면 사라집니다. 청양고추를 하나 넣어서 매콤한 맛을 주거나 키위 하나를 같이 갈아주어도 맛이 좋습니다. 키위를 넣으면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더해져서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여러분의 냉장고 사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따라 자유롭게 재료를 조합해보세요.
토마토와 양파를 잘게 다지고 삶은 완두콩에 레몬즙, 소금, 후추를 가볍게 섞어 고명을 만들어서 올려줍니다. 올리브 오일까지 뿌려주면 제법 레스토랑에서 파는 듯한 비주얼이 되죠. 김소희 셰프는 식사로 먹을 수 있게 빵 한 조각과 청양고추를 같이 갈아 주었습니다. 저는 빵 없이 채소만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더 가볍게 먹을 수 있어요. 짭짤한 토마토 주스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갸우뚱하다가도 시원하고 산뜻한 맛에 중독되는 매력이 있어요.
김소희 셰프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으로 유명해졌죠.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식 퓨전 요리로 성공한 셰프인 동시에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반전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홀로 이국땅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도 '유명해지지 않으면 그저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해 일식 레스토랑을 차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용한 요리사가 영 신통치 않았던지 독학으로 요리를 배워 식당을 운영했다고 하죠. 그 후에 레스토랑 컨설팅 사업을 차렸다 망하고 다시 재료와 요리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혼자서 유명한 셰프들의 요리를 맛보고 메모를 하고 주방을 엿보면서 연구를 한 거죠. 그 후에 성공한 레스토랑은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 줬습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죠.
그러다 한동안 김소희 셰프의 소식이 뜸했습니다. 궁금해서 근황을 찾아보니 남편과 이혼 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듯했어요. 김소희 셰프가 바쁘게 활동하는 동안 남편이 바람을 폈고 그렇게 결혼 생활이 끝났다고 합니다. 그때 읽었던 김소희 셰프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습니다.
―왜 헤어지게 됐습니까.
“내가 바쁘니까 남편이 바람이 났십니다. 그 사람은 용서해달라고 지나가는 바람이었다고 했지만 그렇게 없던 일로 넘어갈 순 없었습니다. 호기심이다? 술을 먹었다? 나도 유럽에서 방송할 때 유혹하는 사람 많았고, 술도 먹었어예. 하지만 난 결혼서약을 굳게 지켰단 말이죠. 그건 약속이니까예. 결국 합의이혼을 그렇게 작년에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죠. 난 평생 일을 하면서 여자로서의 김소희를 낮추고 살았거든예. 발가락 보이는 구두도 안 신고, 살 안 보이도록 단추 다 잠그고 일했어요. 여자들이 날 보고 혹시라도 경쟁심을 느끼면 남자들이 ‘김씨네 가서 밥 먹자’고 하겠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터지니 괜히 그동안 잘못 산 것 같은 겁니다. ‘너 일만 하더니 꼬라지 좋다.’ ‘너가 너무 잘나가니 남편이 그러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때부터 괜히 화장도 하고 못하던 술도 마시고 하이힐도 신고 다녔어예. 근데, 그러고 나니 말이라예, 음식이 영 맛이 없는 깁니더…. 요리를 도통 할 수가 없더라고예.”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먼저 가게를 싹 정리했지요. 일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예. 5개 중 4개를 팔고 남은 하나는 레노베이션을 시작했어요. 근데 그 무렵 내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어요. 팔이 크게 다쳐 피가 콸콸 났고예. 일단 지압을 하는데 춥고 몸이 덜덜 떨리더라꼬. 그때 정말로 맨 먼저 드는 생각이 놀랍게도 이랬어요. ‘아, 내가 혼자구나. 남편이 없으니 이렇구나….’ 근데 바로 다음 순간 정신이 듭디다. ‘뭐야, 아니야. 남편이 있었어도 출장을 갔을 수도 있고, 내가 혼자 호텔에 있었을 수도 있어. 이것과는 아무 상관없어! 김소희, 정신 차려. 너는 강한 사람이야.’ 마음의 병이 그 이후로 나았습니다.”
혼자 오스트리아에서 유학생활 후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곧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 열었던 식당은 실패했고 가까스로 재기해서 유명한 셰프가 되었지만 결혼 생활이 실패했죠. 그러고도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이 참 강인해 보였습니다. 강한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여러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죠. 김소희 셰프의 인생은 철전 팔기(七顚八起)라는 단어에 딱 어울립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경험들이 그녀를 단단하고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이겠죠. 그런 사람이 자신을 위한 음식이라고 소개한 음식이 토마토 가스파초였죠.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몸에 좋은 음식. 김소희 자신의 인품이 음식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저도 김소희 셰프 같은 강한 여자가 되고 싶어요.
김소희 셰프 인터뷰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8/20160318016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