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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ug 12. 2022

우리가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

사랑이라는 게임을 그만둘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Go!? Stop!?

    비단 고스톱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순간들에 우리는 시작과 끝을 결정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할 것인가?' 혹은 '좋아하는 술을 끊을 것인가?'와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서부터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를 그만둘 것인가?'라는 고민이나, '지금 사귀는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와 같은 일생일대의 고민들도 있다. 

    '결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 decide는 descidere라는 라틴어에서 왔다. 이 단어는 '잘라내다'라는 뜻인데 하나를 결정한다는 것은 다른 대안이나 가능성을 잘라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결정은 후회와 미련을 남긴다. 퇴근 후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넷플릭스를 보는 대안을 포기하는 것이다. 술을 끊는다는 것은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과의 관계를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쥐꼬리만 해도)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는 것이고 결혼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이성을 만날 가능성을 잘라내는 것과 같다. 그나마 결혼은 '갔다 오는' 선택지라도 있지, 한번 아이를 낳으면 다시 뱃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금전적 여유, 여가시간, 건강, 개인적인 삶의 목표, 사회적 성취 등의 많은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오늘의 주제인 '이별'도 하나의 결정이라는 것을 고려해보자. 연애 중에 이별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정서적, 사회적, 투자적 관점에서 현상 유지와 변화 추구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정서적 측면 : '대단히 사랑하지도 않지만, 대단히 싫지도 않은...'

    오래된 커플이나 결혼생활 중인 부부들은 공통적으로 '권태기'라는 것을 겪는다. 함께 있어도 더 이상 감정적인 설렘이나 짜릿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로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없다. 자주 지루함을 느끼고 가끔은 둘이 있어도 외롭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왜 헤어지지 않는지 물어보면 '편하다'라고 답한다. 설레고 짜릿한 흥분은 없어서 감정이 평온하다. 늘 상대가 예측되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고 편안하다. 대단히 만족스럽지도 않지만 대단히 불만족스럽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또 다른 사랑의 형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완전한 사랑을 이루는 데에는 열정, 친밀함, 헌신이라는 세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열정이 조금 식더라도 친밀함과 서로에 대한 헌신과 책임감이 강하면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관계가 열정은 식었으나 서로에게 중요한 관계인지, 아니면 권태롭고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관계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행동 과학자이자 데이트 코칭을 하고 있는 로건 유리는 자신의 저서 「사랑은 과학이다」에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그의 고객 중 하나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고 연애기간이 오래된 만큼 서로의 가족, 친구들과도 친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절반을 도려내는 것과 같았다. 데이트 코치는 고객에게 옷장 테스트를 제안했다. 남자 친구를 옷장 속에 가지고 있는 옷에 비유하는 것이다. 고객은 오랫동안 입어서 편안하지만 보풀이 잔뜩 일어난 스웨터를 떠올렸다. 자주 입긴 하지만 밖에 나가거나 중요한 자리를 위한 옷은 아니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 또한 오래 만나서 편안하지만 함께 근사한 미래를 그릴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옷장 테스트 후 고객은 오랜 남자 친구와 이별을 결심했다고 한다.


    옷장 테스트의 핵심은 사랑하는 사람을 물건에 비유하면서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에 있다. 감정이나 추억 때문에 이별을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냉정하게 현재의 관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싼 돈을 주고 샀지만 불편해서 입지 않는 정장에 비유할 수도 있고, 유행이라서 샀지만 나에게는 너무 작은 청바지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렇게 연상한 옷들을 통해 현재 파트너에게 느끼는 감정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진단해보는 것이다. 열렬히 구애해서 만났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편하지 않은 연인이나 대학시절에 만났지만 사회인이 되고 난 후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연인과의 관계를 청산할 기회다. 


사회적 측면 : "우리 헤어졌어"라고 말하기엔 너무 힘들어서...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함께 아는 지인들이 많아진다. 서로의 가족과 안면을 트기도 하고 결혼하기도 전에 가족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사내 연애나 캠퍼스 커플, 교회 커플, 동호회 커플이라면 더더욱 사회적 관계가 연애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헤어지고 한 사람이 퇴사나 자퇴를 선택할 수도 없는 노릇. 겹친 지인들이 많을수록 이별을 선택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이별을 선택함으로써 한 순간에 사회적 고립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혼의 문제라면 더욱 복잡해진다. 한국의 문화에서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의 가족들까지 얼기설기 얽히고 아이들까지 이해 당사자로 나서며 이혼 결심은 더욱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이혼으로 인한 사회적 평판이 훼손될까 염려하기도 한다. 아무리 요즘 세상에 이혼은 흠이 아니라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수군거림이나 시선이 신경 쓰인다. 이혼은 심리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상처도 남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슬픔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사회적 고립을 염려하는 마음에 가깝다. 불만족스럽지만 안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을 용기가 없는 것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별을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앞서 말했듯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선택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당신은 2번 문제에 대한 답으로 3번과 4번을 동시에 마킹할 수 없다. 선택은 한 가지뿐이다. 그러니 이별을 주저하는 동안 매 순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선택지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회비용은 커진다. 그리고 이런 기회비용에 대한 심리는 우리를 또 다른 선택의 오류에 빠지게 한다.   


 투자적 측면 : 매몰 비용의 오류와 손실 회피의 심리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오랜 기간 연애를 했던 커플들은 도박 중독자와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미 많은 돈을 잃고도 도박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이미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허비했지만 그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져 있다. 그동안 쏟아부었던 매몰 비용이 아까워 본전을 찾을 때까지 계속 베팅을 멈추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미 천만 원을 도박으로 잃었다면 그 돈은 돌아올 수 없는 돈이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손실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잃었던 천만 원이 아까워 베팅을 계속한다. 잃은 돈은 순식간에 이천만 원, 삼천만 원, 일억, 이억이 된다. 매몰비용이 커질수록 도박판을 떠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똑같은 패턴이 관계에서도 일어난다.  시간, 감정, 돈은 모두 관계에 있어 중요한 투자자산과 같다. 계속 거짓말하는 연인, 바람피우는 연인과 싸우고 용서하면서 쏟아부었던 감정이 아까워 헤어지지 못한다. 사귄 기간이 길어질수록, 혹은 상대에게 쏟아부은 돈이 많을 수도 있다. 취업준비를 하는 여자 친구를 기다려주거나 고시 공부하는 남자 친구 뒷바라지라도 했다면 그 매몰비용이 아까워서라도 미적지근한 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이 얼만데...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어.

 

    또 다른 잔인한 현실은 '만족스럽지 않은 파트너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심리다. 이는 손실회피의 심리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의 괴로움을 더 크게 평가한다. 그러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미래의 가능성보다는 지금의 불만족스러운 파트너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선택을 한다. 


    이런 경우 스스로도 자신의 선택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서 더욱 교묘하게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인간의 사고능력은 너무나 뛰어나서 때로 자기 자신도 속이고 마는 것이다. 이혼한 친구를 보면서 무관심한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고 위안한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남편의 장점을 애써 쥐어 짜낸다. 육아에는 무관심하지만 도박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한 부부들은 다들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불행이 보편적인 일이 되면 견딜만한 고통이 된다. 연애에서는 어떨까? 매번 거짓말을 하는 여자 친구라도 헤어질 생각을 하니 슬프고 아쉬움이 몰려온다. 자동적으로 좋았던 때를 극대화해서 생각한다. 이미 망가진 관계라도 과거의 좋았던 때만 생각하며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이다. 


    파트너와 헤어질까 말까에 대한 문제를 다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대한 조언이 있다.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너무나도 짧고 기회는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모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당신이 80세에 죽을 거라고 가정할 때, 태어나서 20년 동안은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다. 65세에 은퇴해서 제2의 인생을 살려고 해도 그때쯤엔 체력이 받쳐주지 않을 것이다. 의욕적으로 나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시간은 불과 40년 정도밖에 없다. 그중의 절반은 또 먹고 자는 등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채우는데 보낸다. 30살에 운 좋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대출금을 갚느라 정신없는 세월을 보내고 나면 젊은 날은 다 지나갔다. 파트너와 좋은 관계를 만드는 일에 쏟아부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그리 많지 않다.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인생이 복잡해질 때마다 문제를 단순하게 봐야 한다. 헤어질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면 선택지를 두 가지로 축소하자.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 그 후에 따라올 여러 가지 부차적인 문제들은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떠나기로 했다면 미련 없이, 머물기로 했다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민 끝에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를 지속하기로 했다면 더 이상 불평은 하지 말고 지금 함께 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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