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30들의 연애 고민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친구의 청첩장을 받았다. 또 다른 비혼 주의 친구는 올해만 다섯 번째 결혼식에 갔다고 했다. 이미 유명한 예식장은 다 한 번쯤 방문했던 터라, 어디에 뷔페가 맛있다더라는 정보까지 빠삭한 터였다. 정말이지 나만 빼고 다 하는 결혼식인가 보다. 오랜만에 식장에서 본 친구는 결혼식 직전 열심히 다이어트를 한 모양인지 갸름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비즈가 박힌 웨딩드레스가 조명 아래 반짝였고 긴 베일이 하늘하늘 날리는 모습이 마치 동화 속 공주님처럼 아름다웠다.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예쁜 순간이 있다면 단연코 웨딩드레스를 입고 버진로드를 걸어가는 순간일 것이다.
주례사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객들의 집중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사라진다. 참석한 모든 결혼식의 공통점이었다. 웅성웅성. 다들 옆자리에 앉은 친척들과 안부를 묻거나,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근황을 묻는다. 나도 옆자리에 앉은 친구 H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H는 비혼 주의자임에도 결혼하는 친구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H는 만난 지 두 달째인 남자 친구가 있었다. 다음은 네가 갈 차례냐며 너스레를 떠는 나에게 "우리 곧 헤어질지도 몰라."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H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처음 만난 소개팅 자리에서 H는 본인이 비혼 주의자라는 것을 밝혔고, 남자 친구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고 했다. 그저 자신이 잘해주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안일한 판단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필요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관계가 시작되었다. 감정이 깊어지고 남자 친구가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자 H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귄 지 두 달째 처음으로 서로의 결혼관에 대해 대화를 했다.
H는 결혼을 통해 기존의 가족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결혼이 가족의 확장이 아닌 새로운 가족관계의 형성이었다. 반면 H의 남자 친구는 결혼을 통해 기존의 가족을 확장하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의 부모님도 자신의 부모님처럼 잘 대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H는 그 말에 진저리를 치며 '내 부모에게 잘할 생각도 하지 말고, 내가 네 부모에게 잘해달라고 기대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마음이 상한 남자 친구와 냉전 중이라고 했다.
H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최근에 들은 다른 친구의 고민이 떠올랐다. 연애 1년째인 D는 3살 연하인 남자 친구와 결혼 때문에 갈등 중이다. 갈등이라는 단어보다 실망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이다. D가 남자 친구를 만났을 때는 결혼 생각이 없었다. 남자 친구가 어리기도 했고 D도 35살쯤 결혼하겠다는 나름의 인생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려 깊게 배려해주는 남자 친구와의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행복을 느끼면 그 순간을 지속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 것이다.
문제는 남자 친구의 인생 계획에는 결혼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 친구의 유일한 목표는 40살 이전에 돈을 모아 은퇴한 후 여유로운 삶을 사는 '파이어족'이 되는 것이다. 결혼을 한다면 경제적인 자유를 얻고 40살 이후에나 할 생각이다. D는 그 말을 듣고 43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남자 친구와 결혼하고 싶어서 그의 인생계획을 따른다면 자신은 43살까지 남자 친구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D의 어머니는 D가 세 살 연하의 남자 친구를 만난다는 말을 듣자마자 당장 헤어지라는 말을 했다.
남자는 나이가 많아도 직업이 괜찮거나 재산이 많으면 결혼하는데 아무 문제없다. 그렇지만 여자는 아니다. 연하 남자 친구 기다리면 네가 가장 젊고 예쁠 때를 낭비하는 거다. 그동안 20대 후반인 네 남자 친구는 커리어를 쌓으며 승승장구할 거고 나중에 헤어지기라도 하면 너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되는 거다.
아프도록 냉정하고 현실적이지만, 딸의 입장을 생각하는 조언이었다. 어머니의 말을 무시할 수 없던 D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점점 마음을 덜어내고 있다. 덜 사랑하고 덜 표현해서 점차 멀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남자 친구는 해외 파견 기회를 얻었고 둘은 정말로 헤어질 위기에 처했다.
첫 번째 사연은 서로의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관계를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두 번째 사연은 서로의 삶의 방향이 다른 것이 문제였다. 사귀기 전에 서로의 필요를 미리 밝혔거나,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면 생기지 않을 문제다. 문제는 많은 연애가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 필요와 방향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시작된다는 것이다. 일단 감정이 들뜨면 건설적인 미래보다 눈앞의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연애를 결혼 상대자를 찾기 위한 과정의 일부로 인식하는 점에 있다. 연애가 현재의 관계를 잘 만들어나가기보다 결혼할 상대를 찾기 위한 시험처럼 생각하여 조건이 맞지 않으면 쉽게 멀어지고 만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장기간의 친밀한 관계 만들기'라는 과업이라는 것을 잊었다. 연애에서 서로 이해하고 절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결혼생활에서도 이해보다 비난을, 합의보다 요구를 할 것이다.
인간은 유연한 존재라 어떤 파트너를 만나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 비혼 주의였던 사람이 결혼을 하기도 하고, 결혼을 통해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이 비혼 주의를 선택했을 때는 그 나름의 이유와 지난 삶의 과정을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
비혼 주의라고 한 H는 왜 비혼 주의가 되었을까? 아버지의 외도와 그 때문에 이혼한 부모님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원하는 남자 친구는 본인이 '잘해준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잘해주는 것'에 대해 잘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다정한 남자 친구가 되어주고 즐거운 데이트를 하는 것이 '잘해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고 앞으로 함께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신뢰를 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로 '잘해주는 것'이다.
D의 남자 친구는 경제적인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다. 많은 남자들이 결혼을 하기 전 현실적인 문제, 더 정확히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집을 구하고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경제적인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의 고민 속에서 경제적인 부담감을 읽었다면 그 짐을 덜어갈 수 있는 방향으로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누구나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을 얻고 싶지만, 그 바탕에는 경제적인 안정과 서로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와 함께 책임을 나눠지겠다는 말이 필요했을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서로 단단한 파트너십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다른 삶은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났는데, 상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상호 간의 신뢰를 쌓는 것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연애를 통해 작은 부분에서부터 서로 합의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긴 시간을 함께 하는 결혼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