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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y 02. 2022

우리 이제 피임에 대해 말합시다(7)

나는 여자들에게 말합니다.

    피임법에 대해 조사하면서 여자의 몸에 피임을 하는 방법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훨씬 복잡하고 많은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여자들의 피임을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것이 여자에게 더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절박하다'라는 단어는 '어떤 일이나 때가 가까이 닥쳐서 몹시 급하다'라는 뜻과 '인정이 없고 냉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젊고 건강한 여성에게는 모든 섹스가 임신의 가능성을 안고 있고 우리 사회는 준비되지 않은 임신에 가혹하다. 그러니 인정이 없고 냉정하다고 비난받을 만큼 여자들은 더욱 절박하게 피임과 자신의 안전을 찾아야 했다.


    '우리 이제 피임에 대해 말합시다' 시리즈는 철저하게 여자들을 위해서 쓴 글이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개인사를 다시 낱낱이 꺼내가면서 글을 준비한 이유는 최근에 본 유튜브 영상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_4b9UyQYt9M


    올해 갓 스물이 된 대학교 1학년 생인 여자가 콘돔을 안 쓰는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을 사연으로 보냈다. 이 영상을 보다가 꺼버린 건, 이 사연이 내 과거의 트라우마를 정확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영상을 봤고 사연과 함께 곽정은의 메시지에도 깊이 공감했다.


이런 이야기는 나의 세대에서 끝나길 바란다.


    만약  사연자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이런 조언을  줬을 것이다. "그냥 옷을 입고  자리에서 나와라." 그와 당신 모두 옷을 벗고 침대에 누운 상황이라도 그가 콘돔 없이 섹스를 시도한다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옷을 입고 나오면 된다.  마디 말보다 효과적인 것이  번의 행동이다. 그에게 임신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의 사랑의 증표로 콘돔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 나누는 대화가 길어질수록 당신이 설득될 것이다. 사랑한다는 그의 말을 믿고 싶을 것이다.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고 싶을 것이다. 당신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길게 말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옷을 입고  자리에서 나와라."


    남자들은  여자들이 섹스에 적극적이지 않은지 궁금해한다.   숨기고 '성욕이 없는 ' 하냐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여자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성욕이 있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스킨십을 한다. 그렇지만 계획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 성병, 폭력에 대한 공포가 여성들을 위축되게 만든다. 그런 공포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여자들은 섹스에 적극적일  없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두르고 자유롭게 춤을 추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남자는 임신하지 않고 여자는 임신을   있다. 섹스에 관한 문제에서 만큼은 여성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어떤 남성들은 그런 불평등을 이해하여 여자를 배려하기 위해 콘돔을 쓴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해준다'는 시혜적인 태도가 아니라 '섹스할 때 콘돔을 사용한다'가 너무나도 당연해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일이 되길 바란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임신 계획이 없을 때는 피임을 하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서 합의하고, 원하지 않는 성관계나 행위를 거부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일상이어서 가끔 '콘돔을 쓰지 않는 남자 친구'라는 문장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길 바란다.


    콘돔의 피임 성공률은 80%에 불과하다. 콘돔 하나만 착용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콘돔은 상징적인 존재다. 남녀 사이의 최소한의 경계이자 불평등한 섹스를 조금이라도 평등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 여성이 주체적으로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다른 피임도구를 사용하는 것과는 별개로 남녀의 거대한 성적 불평등을 메꿔주는 존재로서 콘돔이 중요하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에 문제제기를 하는 세대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점은 살과 살이 맞닿는 섹스일 것이다. 그리고 섹스에서의 불평등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연애에서의 평등한 관계도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평등할 수 없다면 사회에서도 평등함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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