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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pr 12. 2022

우리 이제 피임에 대해 말합시다(6)

더 많이 요구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의문은 '왜 나는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였다.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준 사람은 '내가 사랑한 남자'였다. 불쾌함이나 모욕적인 기분을 느끼면서도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단순히 '내가 모질지 못해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세월 받았던 성교육들을 떠올려 봤다.  


    여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하루는 영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남자들은 다 늑대라서 너희랑 어떻게든 해보려고 할 테지만 결혼하지 전엔 절대 안 된다."

 생각해보면 이제껏 받았던 성교육은 다 이런 협박들이었다. 중학교 때도 혼전성관계는 안된다고 으름장 놓고 설교하는 내용들 뿐이었다. 남자들은 늑대고 여자의 순결을 탐하고 한번 자고 나면 여자를 우습게 보는 존재. 그렇게 막연히 남자들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심어주면서도 '좋은 남자를 찾아 결혼하라'는 당부는 잊지 않는 모순적인 메시지.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양보하면 안 되는지는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성욕이 있다는 사실과 성관계에서 안전함과 즐거움을 모두 찾을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들은 가르치지 않았다. 무조건 아끼고 숨기고 있다가 '결혼'으로 자유를 얻을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 중에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여자들은 많다. 주변에서 들은 비밀스러운 고민들은 너무 괴롭기만 했다. 결혼 후 섹스리스에 고통스러워하는 여자, 남편이 원하지 않아 뱃속의 아이를 지운 여자, 폭력적인 남편과의 성생활 때문에 우울증이 온 여자. 결혼 후에도 여자의 몸은 여자의 것이 아니고 남편의 것이 되었다. 이러니 결혼이 어떻게 여성의 해방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남자 친구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과 섹스에서 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상대가 콘돔을 쓴다고 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자 친구와 결혼하고 싶어서 콘돔에 구멍을 뚫은 남자의 실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 친구를 너무 사랑하여 결혼으로 잡아두려고 했다. 날개옷을 숨겨 선녀와 결혼한 나무꾼처럼 여자 친구의 몸에 아기를 심어 묶어둔 것이다.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속임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다니, 그건 사랑에 대한 모욕이었다. 


    남자에게만 피임을 의존하는 것이 더욱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건 마치 내 몸에 핵폭탄을 발사하는 장치가 있는데, 남자가 안전장치를 가진 것과 같다. 그의 태도나 심리 변화에 따라서 내 몸에 달린 기폭장치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내 몸에도 안전장치를 걸고 싶어서 피임법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각종 부작용이 걱정스러워 주저하는 사이에 2년이 지났다.


    '음'에서 진행했던 대화방에서 '피임'을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참여한 남자들에게 콘돔을 끼는 것과 끼지 않는 것이 느끼기에 차이가 나냐고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라고 입을 모았다. 친구네 커플은 몇 년째 콘돔 없이 해도 임신을 안 하더라, 가끔 콘돔 없이 하고 싶다고 하면 여자 친구가 알아서 준비해 오더라... 어딘지 익숙한 이야기들이어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 같다.


    문득 내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면 다르게 생각했을까 궁금해졌다. 남자의 몸으로 여자 친구의 안전한 날을 기다리고, 어떻게든 콘돔 없이 섹스해보려 눈치를 봤을까. 여자 친구가 불안해하면 나를 믿으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책임지겠다며 백지수표 같은 말을 뱉었을까. 남자라서 다음 생리까지 날짜를 새며 초조해하거나 주변 친구들의 임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니 남자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후로는 남자들에게 이해와 배려를 구걸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떻게 존중을 획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가만히 알아서 해주길 바라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사랑에 호소하는 것은, 제발 나를 이해해달라고 구걸하는 것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더 냉정해지고 현명해져야 했다. 요구사항을 밝히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냉정하게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섹스의 안전과 만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다정한 사랑이 아니라 '냉정한 합의'를 해야 한다. 자신의 성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남자들과 상대할 때는 포장지를 벗기고 핵심을 이야기해야 했다. 


네가 날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섹스에 대한 안전을 합의해야 되겠어.


나의 존엄성을 요구하고

주체성을 요구하고

안전을 요구하고

자유를 요구해야 한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랑은 섹스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 남자가 폭력적인 남자인지를 확인해야 하고,

이 남자가 피임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해야 하고,

이 남자가 성병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에 '사랑'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랑은 사랑이고, 섹스는 섹스다.

 

섹스의 안전을 요구하는 일에 그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필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이해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고 나의 안전과 만족을 요구하기로 했다. 나를 지켜주는 것은 요구와 합의, 그리고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단호한 이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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