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성 전분으로 만든 미나리 해물전
디인플루언서(De-influencer)라고 들어보셨나요?
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다수의 팔로워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인플루언서(influencer)라고 합니다. 자신의 취향, 라이프스타일, 지식과 정보 등을 공유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플루언서도 있습니다. 반면 허위 과장광고나 거짓 정보로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편향된 의견으로 팔로워들을 여론몰이하는 인플루언서들도 있죠. 대표적으로는 유튜브 뒷광고 논란과 협찬광고로 점철된 네이버 블로그 등이 있겠네요.
이에 대항하여 특정 인플루언서에 대한 비판과 과장되거나 허위로 만들어진 상품 광고의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들을 디인플루언서라고 합니다. 인플루언서의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죠. 가짜 광고나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를 지적하고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여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은 제가 디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건강한 다이어트와 무설탕 저탄수 식단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깨달았거든요. 이 다이어트 업계에는 허위 과장 광고가 너무 많습니다. 미미한 효과를 크게 부풀리고 블로거들에게 협찬을 주면서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를 하도록 유도하죠. 인플루언서들이야 늘 하는 말이 "제품은 받았을지언정 솔직하게 리뷰한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솔직히 인플루언서들의 입장에서는 회사와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서 지속적인 광고 협찬 제의를 받는 것이 훨씬 이익일 테니 제품의 단점을 정확하게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좋은 것은 강조하고 나쁜 것은 에둘러 표현하겠죠. 그럼 팔로워들은 객관적인 정보보다 인플루언서에 대한 호감으로 바탕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 겁니다.
제가 구매한 그린바나나 파우더가 그렇습니다. 미용목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당뇨 환자처럼 혈당관리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그린 바나나와 저항성 전분에 대한 효능이 너무 과장되어 있어요. 저항성 전분이라는 것은 소화 흡수가 느려 혈당을 빠르게 올리지 않는 전분을 말합니다. 이 저항성 전분에는 5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저항성 전분(Resistant Starch)의 종류
(1) 물리적인 이유로 저항성 전분이 되는 경우
통곡물이나 콩처럼 단단한 세포벽 때문에 소화 흡수가 느린 경우를 의미합니다.
(2) 익히지 않았을 때 분자구조 때문에 저항성 전분이 되는 경우
감자 전분이나 그린 바나나 파우더를 익히지 않고 먹었을 때 소화가 지연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3) 전분을 익혔다가 식혔을 때 저항성 전분이 되는 경우
한때 밥을 냉동해서 먹으면 살이 덜 찐다는 말이 있었죠. 밥, 파스타 등을 익힌 후 차갑게 먹으면 전분이 굳으면서 소화흡수가 지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혈당 실험 등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4) 화학적으로 제조된 저항성 전분
난소화성 말토덱스트린이라는 성분을 첨가해 소화를 지연시키는 특정 식품이 있습니다.
(5) 특정 지질로 전분을 가열하고 냉각해 만드는 저항성 전분
특수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저항성 전분의 유형입니다.
그린바나나 파우더는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먹으면 높은 저항성 전분을 섭취할 수 있지만 익히게 되면 이 저항성 전분이 줄어듭니다. 애초에 밀가루를 대체에서 여러 요리에 사용할 목적이라면 저항성 전분 섭취를 위해 그린 바나나 파우더를 사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이죠. 밀가루 보다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서 건강해 좋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맛과 냄새가 도저히 용서가 안 될 정도예요.
처음 봉투를 열었을 때 훅 올라오는 풋내는 물을 부어서 반죽을 하면 더 심해집니다. 어쩐지 오래 묵은 밀가루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 같기도 하고 잔디와 바나나랑 섞어 놓은 것 같은 냄새가 나요. 그렇지만 제가 읽은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에서는 익히면 이 풋내가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베이킹을 하거나 기름에 튀기는 등 고온에 조리하면 밀가루와 비슷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요리를 해보기로 했어요.
물과 1:1로 섞은 그린바나나 파우더 반죽에 해물과 미나리, 양파 등을 썰어서 전을 부쳤습니다. 오징어, 홍합, 새우를 다지고 향긋한 미나리와 달달한 양파까지 넣었는데 맛이 없을 리 없죠. 그런데 완성된 반죽의 생김새가 영 입맛 떨어지는 비주얼입니다. 밀가루에 회색 아스팔트를 섞어 놓은 것 같은 괴상한 회색에 섞여있으니 절로 식욕 감퇴가 되네요. 이런 의미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면 나름 성공이라 말할 수 있나요?
노릇노릇 기름에 부쳐도 괴상한 풋내는 사라지지 않고 해물 향과 섞여서 더 거북했어요. 향긋한 달래장에 찍어먹어도 텁텁한 뒷맛이 남아서 후회 막급입니다. 그냥 부침가루에 해물이랑 미나리, 양파 넣고 전 부쳐서 달래장에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겠어요? 다시 블로그와 영상을 뒤져보니 그린 바나나 파우더가 밀가루와 비슷하다고 리뷰를 남긴 글은 '협찬'이었네요. 무료로 제품 받았지만 솔직하게 리뷰 남긴다고요? 그럼 저는 제 돈 3만원 태워서 그린 바나나 파우더 솔직하게 리뷰 쓰겠습니다.
괜히 호기심으로 그린바나나 파우더 사서 후회하지 마시라고 한 줄 평 남깁니다.
욕먹을까 봐 당근마켓 무료 나눔도 못 하겄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