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카페 여행기(1) 앤트러사이트 한남
새로운 환경과 낯선 분위기는 저에게 큰 영감을 준답니다. 특히 다양한 콘셉트의 카페를 가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 가는 과정도 즐겁고요. ‘어, 나 이런 거 좋아했네?’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이번에는 혼자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에 사는 동생과 사촌동생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서 오래간만에 전시회나 연극을 보고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제가 본 것들, 느낀 것들, 맛있었던 음식과 음료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매 순간이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즐거운 것도, 힘든 것도, 실망스러운 것도 모두 다 뒤섞인 것이 여행이니까요. 일단 서울 여행의 시작은 이태원에서 시작됩니다. 왜 이태원이냐고요? 그냥 아무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는데 이태원이었지 말입니다?
이런 게 힙인가, 앤트러사이트 한남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40
*앤트러사이트는 연희/서교/한남/제주/합정 지점이 있고 제가 방문한 곳은 한남점입니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anthracite_coffee_hannam/
홈페이지 :https://anthracitecoffee.com/
입장하면 가로로 긴 바가 보입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개수대, 그라인더, 에스프레소 머신, 브루잉 스테이션, 주문대, 디저트, 판매용 원두 진열대가 있습니다. 그라인더를 3가지 이용하는데 다른 원두가 담겨 있을 겁니다. 이렇게 원두마다 그라인더를 다르게 써야 향과 맛이 섞이지 않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라마르조꼬 리니아 PB 제품으로 추정되는데 가격대가 2천만 원대입니다. 이번에 서울 카페들 다녀보면서 가장 많이 본 에스프레소 머신인 것 같아요.
앤트러사이트의 유명한 원두 블렌드에는 유명 작가의 이름을 따온 것이 있습니다.
파블로 네루다 : 베리, 헤이즐넛, 브라운슈가, 와인 같은 여운
나쓰메 소세키 : 과일, 견과류, 밀크 초콜릿
윌리엄 블레이크 : 절인 대추야자, 블랙커런트, 카카오닙스
이 외에도 꽃, 과일, 누가 캔디 풍미의 ‘공기와 꿈’ 블렌드, 묵직하고 다크한 ‘버터 팻 트리오’ 블렌드가 있습니다. 저는 나쓰메 소세키 원두를 선택해서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어요. 갑자기 날씨가 더워진 데다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었더니 도저히 뜨거운 드립커피는 마시지 못하겠어요.
주문대 옆에는 티라미수, 마들렌, 초콜릿 같은 디저트를 함께 진열해 놓았습니다. 초콜릿이나 무스 케이크는 냉장 보관이 필수일 테니 앞에 놓은 제품들은 장식품이겠죠. 커피에 집중하는 카페들은 상대적으로 디저트 메뉴 선택지가 적고, 디저트에 집중하는 카페는 커피 맛이 살짝 부족한 경향이 있어요. 음료와 푸드 모두 완벽하고 독창적인 수준으로 제공하는 카페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죠. 앤트러사이트는 디저트 보단 원두 판매와 납품으로 마진을 남기는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을 거라 추측해 봅니다.
아이스 라떼는 무난하게 맛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블렌드를 선택했는데 고소한 우유와 잘 어울리는 단맛에 과일 같은 산뜻함이 느껴집니다. 마신 후에도 텁텁함이나 불쾌한 맛이 남지 않습니다. 원두가 신선하고 에스프레소 샷을 진하게 잘 내린 것 같아요. 요즘은 커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입맛도 수준이 높아졌어요. 자연스레 로스팅을 직접 하는 카페들이 많아졌는데 직접 로스팅을 하면 이런 장점들이 있습니다.
1. 고객에게 신선한 원두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원두는 로스팅 직후부터 산화하기 시작해 정해진 기간 안에 소비하는 것이 최고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크로스팅 원두는 2주만 지나도 특유의 쩐내, 묵은내가 나서 소비자들에게 불쾌한 인상을 남깁니다. 생두 상태라면 모를까, 한번 로스팅한 원두는 1~2주 안에 재빨리 소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납품받는 원두를 쓰는 카페보다는 직접 로스팅 시설을 갖춘 카페가 훨씬 신선한 원두를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2. 카페의 고유한, 개성 있는 커피 맛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카페 메뉴의 근본은 에스프레소입니다. 아무리 시럽과 우유를 다르게 쓴다 해도 에스프레소의 맛이 밋밋하거나 평범하면 개성 있는 맛을 내기 힘들죠. 카페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좋은데, 에스프레소의 맛에서부터 브랜드의 철학이 드러난다면 제일 좋은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직접 로스팅하면 원가 절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생두를 수입하는 것과 원두를 수입하는 것에는 관세가 다르답니다. 최근 기후변화로 생두 수입가격이 크게 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직접 로스팅을 하는 것이 20~40% 정도 원가 절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로스팅 기술을 배우거나, 로스팅 기계를 구입하는 등 초기 투자가 필요하겠죠.
인테리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콘크리트가 드러난, 인더스트리얼 감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공간이 차갑고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데다 소리가 울려서 대화소리까지 섞이면 소음이 너무 심하거든요. 카페 중에 통유리나 철근이 드러나 있거나, 금속재 테이블을 사용하는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를 흡수하는 천이나 나무 같은 소재가 없으면 소리가 너무 심하게 울려서 괴로울 정도예요. 카페 사장님들도 가장 손님이 많을 때 소음 데시벨 체크 한번 해보시면 좋겠어요. 어떤 카페는 너무 시끄러워서 시장 한복판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앤트러사이트 2층에는 한가운데 나무를 빼곡히 심어 놓아서 장식 효과와 소음차단, 시선차단 효과를 줍니다. 콘크리트의 회색과 어두운 녹색 식물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3층으로 가면 군데군데 화분을 두고 전선줄 같은 장식물이 있습니다. 매장 조명은 밝고 환하다기 보단 어두운 느낌에 가깝습니다. 앤트러사이트는 공간의 분위기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고유한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저의 취향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앤트러사이트는 지점이 여러 곳에 있어서 각 지점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공장 느낌과 식물 장식은 동일합니다. 로스팅한 원두에 작가의 이름이 붙었는데 어떻게 이런 이름을 떠올렸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로스터는 어떤 이유에서 고소한 원두에서는 나쓰메 소세키를, 절인 대추야자와 블랙커런트에서 윌리엄 블레이크를 떠올린 걸까요? 앤트러사이트의 로스터와 문학과 커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