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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y 22. 2023

커피 덕후들의 성지, 오버나잇 커피로스터스

서울 카페 여행기(2) 오버나잇 커피 로스터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저는 이 말을 굳게 믿습니다. 남들은 괴짜라고 하지만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고 ‘숨어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놀라운 발전을 가져옵니다. 예를 들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물들을 관찰하다가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이나, 빛의 삼원색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점을 하나하나 찍는 점묘법을 완성한 화가 조르주 쇠라가 있겠네요. 

 조르주 쇠라는 커다란 캔버스에 점을 하나하나 찍어서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유명한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그림은 가로가 3m, 세로가 2m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입니다. 그가 31살에 병사한 것은 노동에 가까운 창작 활동 때문이었을 겁니다.


 무언가에 깊이 파고들거나 빠져있는 사람을 덕후라고 합니다. 더 좋은 말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지만 색다른 단어가 떠오르질 않네요. 지금으로선 ‘장인’이란 단어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고도로 숙련된 덕후는 장인과 구분할 수 없다. 동의하시나요? 오늘 소개할 오버나잇 커피로스터스의 커피 덕후를 만나시면 동의하실 겁니다.

커피 덕후들의 성지, 오버나잇 커피 로스터스

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410 1호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ovrnghtcoffee/

*인스타그램으로 DM 보내시면 원두 구입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들어가자마자 커피 잡지와 원두 포장들이 보입니다. 하얀색 그라인더는 말코닉 EK43입니다. 300~400만 원 대에 소음이 적고 균일하게 분쇄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입구 쪽 바에 브루잉 스테이션이 있어서 커피를 내리를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에 앉으면 직원들이 커피를 내리면서 친절하게 설명도 해줍니다.

 말코닉 그라인더 옆에 그라인더 2대가 더 있습니다. 에스프레소 용으로 사용하는 나이트오버 블렌드와 디카페인으로 추측해 봅니다. 독특한 점이 오버나잇 로스터스에서 취급하는 원두만 20종에 달합니다. 그중에서 향이 독특한 가향 커피나 발효 커피를 갈고 나면 그라인더에 향이 남아요. 원두마다 그라인더를 따로 쓸 수는 없으니 말코닉으로 브루잉용 원두를 갈고, 에스프레소 용은 따로 그라인더를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사장님께서 로스팅 공부하실 때 봤던 책일까요? 나중에 저도 읽어보려고 찍어 뒀습니다. 요즘 커피 학원에서 브루잉&센서리 수업과 로스팅 수업을 듣고 있거든요. 학원에서 배운 것은 아주 기초적인 부분이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유능한 로스터로 성장할 수 있겠죠. 카페 투어는 선배님들 업장을 방문하는 현장 견학과 같습니다.

 일단 메뉴판을 받고 당황하지 마시고요. (저는 당황했습니다…) 원두 이름이 너무 기니까 번호로 주문하시면 됩니다. (라떼 +0.5)는 500원 추가하면 라떼로 드실 수 있는 원두라는 뜻이고요. 일반적인 에스프레소 메뉴는 아래쪽에 있습니다. 라떼, 바닐라 라떼, 우유가 적은 플랫화이트, 에스프레소가 있네요.


 커피의 품종이나 가공방식, 생산된 지역의 고도와 농부 이름까지 상세하게 적혀있습니다. 이런 정보까지 궁금하지 않다면 컵노트와 그 위에 적힌 설명을 보시면 됩니다. 컵노트는 향수의 향을 설명하는 것처럼 커피의 향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향미를 보고 원하시는 향과 맛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향이 풍부한 커피들은 따뜻한 브루잉 커피로 마시는 게 제일 좋아요. 우유의 맛에 묻히거나 아이스로 마셔서 향이 죽지 않게 말이죠.


  메뉴판에서 다양한 발효커피가 눈에 띄네요. 3번부터 7번까지는 동일한 콜롬비아 파라이소 지역에서 생산되었지만 생두에 효모, 유산균, 허브 등을 넣고 발효해 다양한 향미를 만들어낸 발효커피입니다.

3번 로즈부케는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와 환경 제어

4번 라임 모히또는 라거 효모를 넣고 환경제어

5번 라거 효모를 넣은 이중 무산소 발효

6번 파파야펀치는 에일 효모를 넣은 무산소 발효

7번 맨하탄은 유산균과 라거효모를 넣고 1440시간(60일)을 발효

 

 이런 발효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3번 로즈부케와 7번 맨하탄을 선택했습니다. 직원분이 원두를 갈아서 향을 맡을 수 있게 자리에 가져와서 컵노트 설명을 해주셨어요. 분쇄한 로즈부케 원두는 매우 달콤한 딸기 초콜릿 같은 향이 나고 맨하탄은 알코올 냄새나 젖은 나무처럼 느껴지는 독특한 향이 났습니다.  

 조금 기다린 후에 커피와 초콜릿을 가져다주셨어요. 빨간 잔에는 로즈부케, 파란 잔은 맨하탄입니다.


 로즈부케는 화사한 장미향과 꽃 향기가 강합니다.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느낌이에요. 커피가 식을 때까지 향이 지속되고 은은한 단맛이 오래 남습니다. 산미가 도드라지기보다는 가벼운 단맛이 나서 장미차를 마시는 듯한 기분입니다.


 맨하탄은 위스키의 묵직한 오크향이 느껴지고 알코올이나 매니큐어 폴리쉬 같은 향도 조금 느껴졌어요. 근데 친구는 알코올이나 매니큐어 냄새는 안 난다고 하는 걸 보니, 제 코가 더 예민했거나 다른 향과 섞였던 모양입니다. 달달한 메로나 아니고, 멜론 과즙의 은은한 단맛이 느껴집니다.


 공통적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커피의 맛이 아니고 굉장히 색다르다고 느꼈어요. 커피에서 장미차나 위스키 같은 다른 음료의 맛과 향이 난다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다양한 원두의 맛에 도전해 보고 새로운 취향을 알아가기 위해서라면 아주 좋은 카페인 것 같습니다. 바에 앉으면 직원분들과 사장님이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세요. 그런 서비스에 비해 한잔에 6~7천 원대의 가격도 저렴하게 느껴집니다. 스페셜티 커피 매장에서는 한잔에 만원이 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아직 스마트 스토어나 홈페이지로 원두를 판매하고 계시진 않더라고요. 인스타그램 DM을 보내면 택배로 원두를 구매할 수는 있다고 해요. 디저트 메뉴도 따로 없고 커피와 함께 제공하는 초콜릿이 전부입니다. 대체 사장님은 어디서 마진을 남기시는 걸까 의문이 들 정도예요. 커피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면 이렇게 다양한 원두 종류를 구비해 놓고 커피에만 집중하는 메뉴로 가게를 꾸려나가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뛰어난 품질의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수준 높은 서비스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만족스럽지만요.


 오버나잇 커피로스터스 추천합니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있거나 지금 입문하시는 분들은 꼭 가보셔야 할 카페입니다. 커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커피를 맛볼 수 있고, 듬직한 사장님의 커피 덕후력을 알아볼 수 있는 곳이에요. 커피 좀 좋아한다 하시는 분들은 성지순례처럼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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