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닉네임의 상관관계
스타벅스 진상열전을 썼지만 늘 그렇게 유별난 고객들만 만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평범했고 친절했다. 원래 인간은 좋은 경험보다 나쁜 경험을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나쁜 경험에 대한 데이터를 남겨서 예측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따지고 보면 뇌라는 놈이 제멋대로 좋은 사람들 100명 중에 이상하고 뒤틀린 인간 한 두 명을 보고 "인간은 위험한 동물이야."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는 것이다.
일종의 밸런스를 맞추자는 취지에서 스타벅스에서 만난 상냥하고 귀여운 고객들도 글로 남겨 놔야겠다. 아직 세상이 그렇게까지 엉망진창은 아니다. 적어도 내 경험상 그렇다.
닉네임과 찰떡!
스타벅스에서는 고객들의 닉네임을 불러주는 경우가 많다. 웃기고 기상천외한 닉네임을 부르다가 웃음이 터지는 파트너들도 많다. 자주 보는 닉네임을 외우게 되면, 어쩐지 내적 친밀감이 더해져 음료에도 더 신경 쓰게 된다. 만약 차이티가 품절이라는 소식이 들리면 '매일 차이티만 드시는 ㅇㅇ고객님은 어쩌나...'하고 안타까워한다. 특이한 커스텀을 주문하는 고객의 닉네임을 외우고 있다가 특별히 더 챙겨주기도 한다.
"늘 캐러멜 드리즐 추가하시던데 오늘은 특별히 더 많이 올렸어요."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소근소근거리며 듬뿍 올린 드리즐과 휘핑크림을 보면서 고객과 함께 웃기도 했다. 바리스타로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인 것이다.
어느 날은 닉네임이 '뽀'인 고객님이 오셨다.
"뽀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네~"
뽀랑 똑같이 생긴 고객님 얼굴을 보자마자 의문의 웃참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앟...마씻게..드세욬"
"?"
'어쩜 이렇게 찰떡같은 닉네임을 지으신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기분 나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겨우 참았다.
다른 매장에서 일할 땐 '보라돌이' 고객님도 있었고, '뚜비'고객님도 있었고, '나나'고객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뽀'만 없어서 아쉬웠다. 근데 여기서 뽀랑 똑같이 생긴 '뽀'고객님을 보니 웃음이 터진 것이다.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가 동시에 불려서 텔레토비 어셈블을 외치는 날이 올까?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날 저녁에는 닉네임이 빙봉인 고객님이 사이렌 오더로 주문했다.
"빙봉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드릴게요."
"제거 맞죠? 가져갈게요."
인사이드 아웃에 빙봉을 똑 닮은 빙봉 고객님을 보자마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백 룸으로 도망쳤다. '뽀'에 이어 '빙봉'이라니...... 두 고객님은 모르겠지만 그날 마감 청소가 끝날 때까지 혼자 웃으면서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밖에도 정말 문자 그대로 '말랑콩떡'처럼 귀여운 '말랑콩떡'고객님. 제가 마음속으로 많이 애정했어요.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여러분 닉네임 덕에 제가 많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