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수업
#21
엄마의 여고 선배인 경미이모는
씩씩하고 강한 가장이었다.
넉넉한 인심만큼 푸짐한 손맛으로
피자가게에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며
아픈 남편의 병간호를 하고 아들 둘을 키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후
경미 이모에게 새 가족이 생겼다.
칼국수 가게 천장 슬레이트 틈에서
꿍 떨어진 아기고양이 꿍이.
뱃속에 새끼를 품고
생살을 찢어 낳고
젖을 물려본 어미들은 으레
새끼 짐승도 쉬이 품으려고 한다.
황갈색 눈, 노란 줄무늬
고양이 꿍이는 경미이모의
막내아들이 되어 아주 예쁨을 받았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고 어느 밤,
꿍이는 갑자기 먹은 것을 왈칵 게워내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이틀 만에 죽었다.
한동안 경미 이모는 꿍이가 죽은 집에 쉬이 들어가질 못 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밥장사로 아들 둘을 키운 이모가
고양이의 죽음 앞에 그렇게 연약해질 줄은 몰랐다.
모진 세월을 견딘 이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고양이만큼
위로가 된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22
동물병원에서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퉁퉁 부은 눈커풀 사이로 눈물이 비집고 새어나왔다
옆에 앉아 있던 엄마가
경미 이모네 고양이 꿍이 이야기를 해줬다.
"꿍이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서
이모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몰라.
진숙이는 떠나기 전에
우리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거야."
콧물을 훌쩍 들이키며 엄마를 흘겨봤다.
"엄마는 위로를 참 못해.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슬픔이 줄어들지는 않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잖아.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근데 갑자기 죽는 것보다
천천히 받아들이면 덜 아프지"
가끔 부모님이 큰 어른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는
‘어쩔 수 없지’로 담백하게 받아들일 때.
그렇게 내려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실을 견뎠을까.
어쩔 수 없는건
천천히 받아들이면 덜 아픈가.
여러번 경험하면 덜 아픈가.
미리 알아두면 덜 아픈가.
진숙이를 보내는 경험을 하면
엄마를 보낼 때 덜 울게 될까.
아빠를 보낼 때 덜 울게 될까.
그렇게 여러번 헤어지면
울지 않게 되는 날도 올까.
나도 ‘어쩔 수 없지’라며
담백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