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언과 최우람, 차가운 기계와 다정한 감성의 세계관
기계 꽃을 피우는 조각가는 메마른 기계음으로 '영원히 시들어 가고 싶다'라고 노래하는 가수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조각 와 음악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의 두 아티스트는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을까?
기계공학을 결합한 설치 미술작품으로 유명한 최우람 작가는 최근 나이트오프의 '예쁘게 시들어가고 싶어 너와'로부터 영감을 받아 거대한 기계 꽃에서 마른 꽃잎이 떨어지는 작품을 제작했다. 작품은 삿포로 국제 아트 페스티벌의 의뢰를 받아 2024년 1월 20일부터 2월 25일까지 삿포로 미래극장에서 전시됐다.
최우람 작가의 유튜브에는 거대한 꽃 형태의 구조물을 천장에 설치하고 줄을 연결해 꽃잎을 모방한 천 조각들이 천천히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는 영상이 업로드됐다. 시든 꽃잎과 같은 천 조각들은 기계꽃의 중심부에서 번지는 희미한 빛을 받아 거친 질감이 도드라져 보였다. 느리게 떨어지는 형상은 '죽음'처럼 보이다가도 늘어진 줄이 되감겨 오를 때는 '재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2006년 대구 미술관에서 최우람 작가의 기계 생명체 작품 ‘Urbanus Female’을 감상 한 적 있다. 거대한 기계꽃이 느리게 움직이며 개화했다가 닫혔다.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 재질의 꽃잎은 기계의 팔처럼 보였지만 조명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고 느릿한 움직임이 더해지자 어쩐지 성스러운 움직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이제껏 본적 없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난 듯 경이로웠다.
그는 인터뷰에서 기계를 매체 삼아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인간과 생명을 주제로 삼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재료는 금속과 유리 등을 사용한다. 전기를 연결해 생명을 불어넣는다. 조명과 움직임을 더한 구조물은 마치 생명체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차갑고 딱딱한 물성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생명을 표현할 때 최우람 작가만의 독특한 미학이 전개되는 것이다.
'예쁘게 시들어가고 싶어 너와'를 작곡한 이이언도 기계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다는 점에서는 최우람 작가와의 공통점이 있다. 주제와 그것을 표현하는 소재의 성질이 상반되면서 주제를 강조하는 접근법이다. 이이언은 '언니네 이발관'의 베이시스트 이능룡과의 듀오 활동 외에도 밴드 못(Mot)과 솔로 앨범을 여럿 발매했다.
특히 2012년 발매한 솔로 앨범 'Guilt-Free'는 컴퓨터로 만들어낸 사운드를 이용해 소리를 쪼개거나 현실에는 없는 연주법으로 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가사는 공허, 외로움, 사랑, 그리움과 같은 연약한 감정뿐만 아니라 공포와 같은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앨범의 일부 곡을 실제 악기로 재현하는 'Realize'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부드러운 재즈 사운드로 편곡해 좀 더 섬세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이언은 함께 하는 음악적 파트너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작품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솔로 활동일 때 기계음에서 전해지는 특유의 건조한 멜랑꼴리가 두드러지지만, 밴드 멤버들이나 이능룡과 함께 할 때는 좀 더 대중적이면서 감성적인 곡들을 발매하기도 한다. 타인과의 마찰을 통해 이이언의 독특한 감정과 스타일이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해로운 희망을 다 끊고서 예쁘게 시들어가고 싶어 너와
'예쁘게 시들어 가고 싶어 너와'에서 전하는 이이언의 사랑고백 또한 건조하고 담담하며 어딘가 슬픔을 품고 있다. 영원히 함께 하자는 달콤한 거짓도 없이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테지만 함께 시들어가자는 고백. 더 이상 영원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만큼 진실한 사랑고백도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TMuaKNq6FfM
예쁘게 시들어 가고 싶어 너와- 나이트오프(Nightoff)
네모난 하루
비좁은 마음에
매일 새롭게
잘못된 날들에
다 미운 세상에
너만이 좋았어
이 미운 세상에
너만이 좋았어
해로운 희망을 다 끊고서
예쁘게 시들어가고 싶어
너와
희미한 하루
무뎌진 마음에
매일 새롭게
버려진 날들에
차가운 새벽에
너를 떠올렸어
두 눈을 감아도
너만 떠올랐어
해로운 희망을 다 끊고서
예쁘게 시들어가고 싶어
너와
해로운 희망을 다 끊고서
예쁘게 시들어가고 싶어
너와
출처
인터뷰 : 기계의 풍경, 인간의 꿈 최우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