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30대 초반이었을 때 일입니다.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 A로부터 연락이 왔었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 갑자기 친구한테 연락이 오면 다음의 3가지 이유 중 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험, 돈 빌리기, 다단계입니다. 그 친구는 졸업 후 보험사에 입사했고, 전화를 건 용건은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단계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기가 꺼려졌습니다.
그 친구가 내게 돈을 빌려달라는 이유는 급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급전’은 누구나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단순히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만 했지, 진짜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만의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저도 사업을 하면서 자금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개인 통장에 100만 원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100만 원은 빌려주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제 신조 중 하나가 '친구와 돈 거래는 하지 말자'입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50만 원으로 액수를 줄였습니다. 그러다가 30만 원으로 액수를 더 줄였습니다. ‘얼마나 돈이 필요했으면 계속 돈을 줄이면서 빌려달라고 했을까?’라는 생각 하면서 회사와 가까운 ATM에 가서 그 친구에게 30만 원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친구의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에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당시 일주일 후에 돈을 갚는다고 했던 그 친구에게 한 달 후에 연락했지만,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후에도, 그다음 달에도 그리고 1년, 3년, 5년이 지나도 그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 기억 속에 그 친구 이름 석 자가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30만 원을 빌려주고 친구를 잃었습니다. 솔직히 30만 원을 그때 ‘빌려주기보다는 줬다면 더 나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되뇌어 봅니다. 저도 힘든 상황에서 10만 원도 큰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 초년생에 성과에 따라 월급이 달라지는 보험업이 ‘그 친구의 목을 얼마나 옥죄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심지어 그 친구는 보험 영업에 어울리는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저는 그가 어떤 상황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보험 영업을 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어려운 상황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보통 초보 보험 설계사들은 보험 영업이 안 되면, 주변 친구나 가족 이름으로 보험을 가입하게 하고 보험료를 대신 납입해 실적을 쌓는 꼼수(?)를 사용합니다. 그 친구도 그런 영업을 빈번하게 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래도 힘들 때 소주라도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 중 한 명이었는데, 30만 원에 연락 두절이 됐습니다. 그땐 그 친구가 제게 미안해서 연락을 못 했다면, 지금은 제가 그 친구에게 미안해서 연락을 못 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친구와 돈거래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