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에세이] 퇴사를 하는 이유
“형, 나 기자 그만뒀어.”
7년간 스포츠 분야 기자로 활동했던 후배가 갑자기 사직서를 냈다고 해 깜짝 놀랐습니다. 10년 전, 언론사에서 퇴사한 나는 그를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축구를 유독 좋아했던 그 후배가 언론사에 입사해, 축구 담당 기자가 됐을 때가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그의 심장은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뛰었고, 눈빛은 축구선수보다 더 빛이 났었습니다. 그는 축구 관련 기사 쓰는 것을 즐겼고, 더 나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자를 그만두고 사업이라는 험난하지만 꿀이 떨어질 것 같은 세상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요즘 언론사를 나오는 기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블로그 등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언론의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다루는 이들이 극소수였으며, 이를 알리기 위한 매체도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인플루언서와 유튜버는 언론사와 기자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자는 ‘기레기’라는 욕을 먹는 세상이 됐죠. 이에 기자들은 수 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언론사를 뛰쳐나와 새로운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입사하고, 직접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고기사 : 앞다퉈 언론사 떠나는 젊은 기자들, 스타트업 문 두드린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127&aid=0000030932
후배는 단순히 기자라는 직업이 싫어서 퇴사를 결정한 게 아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그는 N잡러가 됐습니다. 그리고 월급보다 더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입니다. 기자라는 직위는 그에게 생계를 영위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 아닌, 단순한 직함으로 남게 됐죠. 재테크도 열심히 하면서 돈도 벌었다고 했습니다. 기자라는 본분에만 집중했을 때보다 돈을 더 많이 모으게 되면서 그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노동자로서 삶은 계속 노동자로 남게 된다는 것이죠. 그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기자로 남을 것이고, 언론사 사장 직위라는 바늘귀 같은 구멍을 뚫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듯합니다.
후배가 퇴사 소식을 알리면서 했던 말이 제 가슴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결혼을 한 친구들이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 가격이 2~3억 원씩 상승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세에 사는 그가 직장 생활로 1억 원을 모으는 것도 힘이 드는데, 아파트 한 채로 돈을 버는 그들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역시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인이 아파트 분양을 받아서 수억 원의 차익을 받았다고 할 때, 제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휴지조각으로 보였습니다. 이때마다 저는 제 인생의 길을 가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기자를 그만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조금 더 어렸을 때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스타트업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안일하게 살고 있는 저를 봤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업이든 도전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또 하나는 돈이었습니다. 월급만을 받아서 집과 차를 사고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10년간 평균 월급이 5,000만 원이라면 월급은 350만 원입니다. 서울에 집이 없으면 월세와 공과금으로 월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해야 합니다. 여기에 보험료와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계산하면 100만 원이 듭니다. 또 해마다 비상 지출금(경조사비, 병원비 등)을 300~500만 원을 사용해야 합니다. 해마다 1000~1500만 원 정도를 저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년간 모을 수 있는 돈은 최대 1억 5000만 원이라는 결론이 납니다. (서울에 사는 이들은 1억 원은 더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1년도에 1억 5000만 원이면, 서울 변두리에 15평 남짓한 낡은 빌라를 살 수 있는 자금입니다. 서울이 아닌 수도권에 위치한 18평 이내 낡은 아파트 전세금 정도입니다. 최대한 대출을 받는다면 서울 도심권 빌라를 매매할 수 있으며, 경기도 아파트를 살 수 있습니다. 혹자는 재테크를 통해 돈을 불리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돈을 벌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가 재테크입니다. 특히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통해 돈을 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1억 원이라는 자금을 안정적으로 분산 투자해 매년 10% 수익을 거둔다고 가정하면, 10년 후에는 2억 원이 됩니다. 수익금을 재투자하면 금액이 더 상승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도 늘어날 것입니다.
후배는 제가 사업을 막 시작할 때보다 훨씬 더 나은 상황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회 경험과, N잡러를 통한 안정적인 고정소득, 그리고 곧바로 수익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업 초기에 맨땅에 헤딩했죠. 돈, 경험 등 모든 것이 부족했고 열정만 넘쳤습니다. 단, 저는 제 꿈과 관련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 무척 힘들었고 매번 돈에 쪼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 경험이 적은 탓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죠. 후배는 축구 기자가 꿈이었는데, 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가 한 선택은 옳습니다. 월급을 많이 주는 대기업,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공무원, 부동산으로 돈을 번 이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돈에 집착하는 저를 봤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들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제가 이 일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히려 주식, 부동산 등 투자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여겼습니다. 제 꿈은 더 많은 세상을 보는 것이었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축소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늘렸습니다. 기회가 되면 해외여행을 갔고,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써서 책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마음도 안정이 됐고 여유도 생겼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돈을 좇기보다 꿈을 좇을 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현실주의자들에게 어이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꿈을 좇는 이들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계적인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후배가 새로운 꿈을 위해 도전했길 바랍니다.
※참고 용어
- 상대적 박탈감 : 사회 다른 대상과 비교하여 권리나 자격 등 당연히 자신에게 있어야 할 어떤 것을 빼앗긴 듯한 느낌.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이 없지만, 다른 대상이 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 N잡러 :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이라는 뜻의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4차 산업혁명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 근로환경이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생긴 개념이다. 이들은 생계유지를 위한 본업 외에도 개인이 지닌 재능을 발휘하여 경제적 소득뿐만 아니라 자아실현으로까지 연결한다. 특히,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MZ세대는 취업을 했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부업이나 취미활동을 즐기면서 퇴근 후 시간이나 주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