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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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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다시인 Oct 10. 2023

태어나자마자 옹알이했던 아기가 24개월이 됐는데

[육아일기] 분만실의 추억


아이가 세상의 빛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얼어 있었다.


산부인과 분만실에 아내와 함께 들어갔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에게 내가 건넬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머리채를 잡히지 않을까?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분만. 

엄마와 아기의 힘겨운 사투. 

아이가 나오지 않은 탓에 흡입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아내가 출산했다. 

핏덩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핏덩이 같은 아기. 


눈물이 났다. 

하지만, 눈물 흘리기보다는 기뻐해야 할 것 같아서 

눈물을 참았는데.

아내는 그걸 두고, 늘 이렇게 말한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옆에 있었어.”


분만 영상에도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담겨 있다.

젠장.


여하튼 아이가 태어나고, 간호사가 아기를 씻겨 데려왔다.

그리고 문뜩 드는 생각. 


‘이 아기가 우리 아기가 맞을까? 전혀 닮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아기는 외계 생물체 같다는 표현이 맞다.

조카들도 그랬지만, 막 태어난 아기들은 보통 신기하게 생겼다.


나는 아기의 손가락과 발가락 그리고 얼굴을 차례대로 확인했다.

두 눈을 살짝 뜨는 아기.

옹알옹알, 말도 했다.


“여보. 아기가 눈도 뜨고, 말도 하네. 원래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태어나자마자 말하네. 조금 늦게 나와서 그런가?”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아이 바보가 됐다.


“애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으니, 말도 잘하겠지.”


그런데.

아이는 옹알옹알, 옹알이는 많이 하는데.

진짜 말을 하는 게 느렸다. 


다들 우리 아이보고 ‘말하면, 참 잘하겠어요.’라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렇게 한 지 10개월이 넘었어요.”


당황했던 사람들. 


24개월이 되어도 옹알이 같은 말만을 많이 하는 아이.

같이 그 말을 따라 해 주면 좋다는 치료사의 조언에 아빠도 따라 해 줬더니,

10분 넘게 옹알옹알 떠든다.


그래, 우리 아이는 아빠 닮아서 말하면 수다스러울 것 같아.

아빠, 엄마 귀에 피나도 괜찮아. 

지금도 피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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