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삶, 즐기는 삶

[연재] 백수의 철학

by 하늘바다시인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투쟁했던 나날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_ 프로이트


‘백수’를 선택한 삶이라고 할지라도 삶에 대한 투쟁을 버린 것은 아니다. 자기 합리화라고 비판을 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투쟁하기 위해 백수가 됐다.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산다는 것은 삶을 잊어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내 생각이다. 다른 누군가가 이 말을 듣고 욕을 해도 좋다. 삶은 그 자체로도 행복한 것도 맞다. 그러나 일, 돈, 성공 등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것을 위해 달릴 바에야 차라리 나는 멈추고 앞으로 뛰어가는 이들을 바라보겠다.


일, 돈, 성공 등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것을 위해 달릴 바에야 차라리 나는 멈추고 앞으로 뛰어가는 이들을 바라보겠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이들은 책, 강연, TV쇼에서 말한다. (정확하게 그들의 이름을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삶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가치 없는 삶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그만큼 사람이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돈과 명예, 권력 물질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힌 것에 가치를 두는 것과 행복, 사랑 그리고 사소하지만 소소한 일에 가치를 두는 것 중 어떤 것이 소중할까? 물론 답은 후자이다. 마치 교과서 같은 정답이지만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설명을 두고 싶지 않다.)


백수가 되면서 소소한 행복 중 하나가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거나 하는 일이다. 집 주변 거의 모든 카페에 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자주 가는 카페 한 곳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카페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단골(?)이라고 불릴 만큼이나 자주 간다. 이 카페는 낮 1시쯤에 문을 연다. 주변 카페는 적어도 오전 10시 30분이면 문을 열고 영업을 한다. 문을 닫는 시간은 밤 12시쯤이다. 그래서 이름도 ‘슬로커피’다 오전에 문을 여는 다른 카페들은 10시 전에 문을 닫는다. 이렇게 이 카페는 다른 카페들과 영업시간이 다르고, 타깃 고객도 약간 다르다. 이 동네에 사는 퇴근한 직장인이 주요 고객이다.


이 카페는 낮 1시에 문을 열지만, 카페 여 사장님은 점심을 2시에서 3시 사이에 먹는다. 손님이 없으면, 문을 닫고 점심을 먹으러 가고, 손님이 있으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점심을 먹고 온다. 내가 카페에 있을 때도 자주 이런 경우가 많았다. 난 가끔 카페의 대리 사장이 돼야 했다. 물론, 여 사장이 점심을 먹는 동안 아무도 안 오는 적도 많았다. 손님이 들어와 카운터에서 서성거리면 나는 “식사하러 가셔서 1시간 후에 오실 거예요”라고 친절한 척 알려주기도 한다. 그 사장님이 아침잠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늦은 밤까지 영업하는 게 매출이 더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돈에 대한 집착보다는 삶에 대한 즐거움에 인생의 가치를 두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온 다음에 카페 문을 여는 게 더 나으니까 말이다.


새벽에 첫차를 탈 때가 있었다. 아직 해는 수평선이나 건물 뒤에서 숨어서 나올 생각이 없을 때, 어스름이 깔리는 새벽쯤, 첫 차에는 출근을 하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차창 밖에는 리어카(손수레)를 끌고 박스를 줍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첫차를 타는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주로,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의 눈빛에서 나는 삶의 투쟁을 느꼈다. 이 시간에 출근을 해야지만 그들은 가족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으며, 주말에 외식을 하러 밖에 나갈 수 있다. 친구의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가서 오랜만에 인사도 건네고. 그래서 나는 첫차를 탈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 사람이라고.


‘백수’의 삶이 내게는 삶의 의미를 찾는 투쟁이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시간이라고 위로하지만, 삶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백수가 되고 나서 첫차를 탈 일이 거의 없었다. 투쟁하는 삶도 아니다. 걱정을 잊기 위해 노력하는 투쟁만 할 뿐이다. 내일은 또 어디 카페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고, 어떤 책을 볼 것이고, 점심이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생각한다. 이러다가 가끔씩은 죄책감을 느낀다. 바쁘게 움직이는 회사원을 만날 때, 택배를 전달하는 택배기사와 마주칠 때, 배달음식을 배달하는 배달원에게 카드를 건넬 때, 박스를 줍는 할아버지를 지나칠 때, 셔터 문을 닫는 상가 주인의 뒷모습을 볼 때. ‘백수’의 삶이 내게는 삶의 의미를 찾는 투쟁이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시간이라고 위로하지만, 삶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어쩌면, 삶의 가치는 우리들의 삶 자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먼저 논밭에 가서 씨를 뿌리지 않고서는 철학에 대해 논하지 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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