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에세이 소설] 백수의 철학_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처럼
“팔자 좋네.”
팔자는 어느 사람이 출생한 연, 월, 일, 시에 해당되는 간지 여덟 글자를 사용한 말이었다. 사람은 이 팔자의 좋고 나쁨에 따라 인생이 좌우된다는 관념에서, 일생의 운수를 가리키는 뜻으로 말한다. 일명, 사주팔자를 줄여 ‘팔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 나는 단골 카페에 앉아 팔자 좋게(?) 책을 읽었다. 내가 흥미롭게 읽고 있었던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였다. 손님은 달랑 나 혼자였다. 휴대폰이 독서를 방해하며 진동했다. ‘아는 형님’이었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잘 지내니?” 그 형님은 나를 감시하는 듯한 말투로 휴대폰 너머에서 멀고도 가깝게 물었다.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뭐해?”라고 형님을 물었다.
“그냥 카페에서 책 읽고 있습니다.”
“팔자 좋네!”
나는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팔자 좋네’라는 말에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백수가 팔자가 좋은 것인지? 좋은 회사에서 높은 직급에 두둑한 월급봉투를 받는 것이 좋은 것인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그 형님의 팔자보다 내 팔자가 좋아 보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든지 백수가 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며,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백수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형님은 백수를 선택하면서 그동안 회사에서 쌓아 올린 직급과 연봉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만큼 행복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만큼 행복하다.”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힌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책에서 이 말을 봤을 때부터, 무척 공감이 갔다. 지금의 모든 것들은 내가 선택한 일이며, 앞으로도 내가 선택해 인생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팔자’라는 것이 곧,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것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누구는 밤 12시까지 일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선택하고, 누구는 정시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을 택한 것이다. ‘팔자’ 때문에 현재의 인생이 이런 게 아니다.
백수로서 통장의 돈이 줄어듦에 안타까워하는 내 팔자를 생각했다.
또 다른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그 형님이 투자한 주식이 대박이 나서 수억 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축하한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자는 말을 남기며 그 형님은 전화를 끊었다. 그 형님의 목소리는 아득한 어둠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주식으로 대박이 나 돈방석에 앉은 그 형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형님은 ‘내게 전화해서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빠져, 백수로서 통장의 돈이 줄어듦에 안타까워하는 내 팔자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