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_연재] 백수의 철학
잃어버린 것만큼 가장 큰 공허함이 있을까. 늘 아침마다 연극의 시작처럼 창문은 빛을 머금었지만, 공허한 심장을 가진 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매일 눈을 뜨면, 그 공허함에 약간의 빛이 스며들었다. 더 많은 빛을 담기 위해 아침을 토스트나 시리얼로 대충 때우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일상이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동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점점 내 몸으로 사라지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바라보았다. 커피숍 여주인은 늘 똑같은 메뉴를 시키고 꼬박꼬박 쿠폰 카드에 도장을 찍는 나에게 “뭐 드시겠어요?”라는 질문 이외에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카페 주인은 계산도 하기 전에 아이스 카페라테를 내 자리에 가져다주었다. 9월쯤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날은 유독 하늘이 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두근거리는 날씨였다.
어느 날은 카페 주인은 계산도 하기 전에 아이스 카페라테를 내 자리에 가져다주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백수’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백수’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참 적절한 단어다. 한심스러운 인생을 연상케 하는 단어다. 모든 백수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포털에서 백수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기본 의미로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손’을 뜻했다. 그리고 내 직업의 백수는 ‘한 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기본 의미가 사회적인 의미가 됐을 것 같다. 백수건달(白手乾達)에서 백수라는 말이 나왔을 수도 있다. 백수가 처음인지, 백수건달이 처음인지는 모르겠다. 마치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 일까?라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나는 백수이다. 좋은 말로는 ‘프리랜서’라고 해두자. 가끔 소일거리를 하며 아주 적은 돈을 받기도 한다. 한 달 커피 값 정도는 될 것이다.
“왜 백수가 됐냐고?”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왜 백수가 안 됐냐고?”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 일을 그만둘 때, 나는 단지 내 일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우선, 나는 아침마다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았으며, 매번 똑같은 소리를 하는 상사의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컴퓨터 앞에서 서류를 작성해 출력하는 똑같은 일도 지겨웠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삶의 의미, 그런 단어가 내 인생에 없었다. 7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내 통장에 적지도 많지도 않은 돈이 쌓였다. 해변의 모래와 같은 돈이었다. 모으는 것은 어려웠지만 없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최영미 시인의 시 ‘선운사에서’의 시구처럼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었다.
“왜 백수가 안 됐냐고?”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
돈은 아직 1/3이 남았다. 여전히 나는 매일 아침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밖을 바라보거나, 소설책을 읽거나, 포털에서 뉴스를 읽을 수 있다. 동네 카페의 최고의 단골로, 아침마다 소소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점심이 되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다. 김치볶음밥, 카레덮밥을 해 먹거나 가끔은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 그리고 2시간의 휴식을 취한다. 누울 수 없지만 2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예능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하거나 포털 뉴스에서 세상 소식을 듣는다. 나 혼자만 있는 공허한 집을 채우기 위해 라디오를 틀거나 클래식으로 고상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가끔, 글을 써 주고받은 돈으로 외식을 한다. 맥주도 마시며,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신다. 이때만은 혼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 즐겁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