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_연재] 백수의 철학
백수의 삶이라고 해서 이발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헤어숍에 가서 머리카락을 자른다. 내가 가는 미용실의 남자 커트 가격은 3만 원이다. 백수에게 사치스러운 가격대다. 좀 더 저렴한 미용실도 많지만 한 번 인연을 맺은 미용실을 갈 수밖에 없다. 헤어 디자이너가 내 헤어스타일을 잘 만지지 못하더라도 습관처럼 내가 사는 동네에서 처음 선택한 미용실을 끝까지 간다. (내 헤어스타일이 아주 이상해지지 않는 한 말이다.) 이번 동네에서도 어김없이 나는 한 미용실만 이용했다. 그래서인지, 미용실 원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발을 하러 가는지, 대화를 하러 가는지 모를 정도다. 처음에는 거의 한두 마디만 주고받았지만 일 년이 넘었을 때는 서로 이야기하려고 다양한 주제를 꺼내놓았다. 그런데 말동무이자 내 전담 헤어디자이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아마도 그럴 것 같다. 헤어숍이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헤어 디자이너가 내 헤어스타일을 잘 만지지 못하더라도 습관처럼 내가 사는 동네에서 처음 선택한 미용실을 끝까지 간다.
단골 헤어숍이 이사한 이유는 두 가지다. 헤어디자이너(원장) 거주지랑 헤어숍의 거리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그가 말하길 이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최근 기사를 보고 깨달았다. 다른 이유 한 가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갑자기 몇 년 사이에 우리 동네에는 작은 가게들이 아기자기 생겼다. 그리고 ‘핫’한 지역이 됐다. 평소에도 동네에는 서울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발길로 끊어지지 않았다. 상가의 가격과 권리금은 2배 상승은 우스울 정도로 올랐다. 집값도 상승했다. 하나둘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 단독주택은 멋스러운 카페로 변했고, 공터에는 세련된 미니 빌딩들이 세워졌다. 하지만 헤어숍은 임대료 때문에 이사를 간 것은 아닐 것이다. 동네 원주민들이 이사를 가면서 고객도 잃은 것이다. 보통 미용실을 찾는 고객은 멀리서 오기보다는 동네 주민이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청담 등 강남 지역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연예인, 웨딩 같은 고객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명한 디자이너를 보고 멀리서 찾아오는 고객도 있을 것이다.
하나둘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 단독주택은 멋스러운 카페로 변했고, 공터에는 세련된 미니 빌딩들이 세워졌다.
어쨌든 나는 말동무이자, 내 전담 헤어디자이너를 잃었다. 백수의 즐거운 인생의 목록에 ‘미용실 가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빼야 할 듯하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미용실을 찾았다. 포털에서 검색을 통해 알아낸 곳이다. 마케팅을 잘한 미용실이었다. 블로그뿐만 아니라 매장 리뷰, 언론에 기사까지 등 완벽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최고의 마케팅을 한 미용실이었다. 미용실 콘셉트도 분명했다. 헤어디자이너도 7명 정도가 있었다. 마케팅을 잘한 곳이 좋은 미용실은 아니지만, 이 정도 노력하는 곳이라면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예약 전화를 걸었다. 이미 훌쩍 내 머리카락은 한 달이 넘은 상태로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 상으로 헤어 디자이너를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이미 훌쩍 내 머리카락은 한 달이 넘은 상태로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 상으로 헤어 디자이너를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내 헤어 디자이너는 단발머리였다. 팔뚝에는 나비와 장미꽃 문신이 거칠게 뻗어 있었다. 그는 남자다. “머리 자른지는 얼마가 됐나요?”라고 물었을 때, 처음 만난 그에게 나는 나지막하게 “한 달이 좀 지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두 달이 넘었으면 부끄러웠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오랫동안 내 머리카락을 방치했다고 하면 창피함이 먼저 밀려온다. 어릴 적에 돈이 없어서 오랫동안 머리를 자르지 못한 적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멋을 못 내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답은 모르겠지만, 남자의 커트 기간이 2달이 넘는 것은 살짝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내 생각이지만.)
왠지 모르게 오랫동안 내 머리카락을 방치했다고 하면 창피함이 먼저 밀려온다.
그가 내 머리카락을 자른다. 인상은 부드럽다. 단발의 예술가처럼 보인다. 헤어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화가 혹은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손길은 의사가 더 어울린다. 작은 가위부터 바리캉, 솎는 가위까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내 머리를 손질한다.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손놀림이 신중하다. 약간 어색해 보인다. 어색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가 왼손 잡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다른 헤어 디자이너가 한 남자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그 헤어 디자이너의 머리와 발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자라고 하지만 머리가 아주 작다. 일명 ‘소두’다. 유명 여자 연예인만큼. 신발은 굽이 10 센티미터가 높은 단화(?)를 신었다. 마치 그 모습이 벼랑 끝에서 가위질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다시, 내 헤어 디자이너는 내게 질문한다. “이 정도 길이 괜찮으신가요?” 거울로 봐서는 나는 모르겠다. 그냥 나는 “괜찮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샴푸를 하고 간단히 왁스로 헤어 스타일링을 해주었다. 이게 바로 또 다른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