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당신이라는 킨츠키

너는 부서지지 않았어

by Contexter 혀

″그러게

그렇게 누누이 말했잖아.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
나를 좋아하는 네 마음.
작은 떨림에도 금이 가지 않게 소중히 지켜야 한다고


어째서
어째서 지키지 못한 거야.

원망 어린 울음 속에서도 꼭꼭 담아 뱉은 말.

이젠 어쩔 수 없어.

깨져 버렸어.
깨져 버린 건 다시 붙일 수 없어.

너무 슬프지만
말도 못 하게 슬프지만



안녕."



그땐 그랬다. 스무 살 무렵의 나의 믿음
그쯤의 나는 깨져 버린 건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한 번 금이 간 그릇은 결국 다시 깨지고 말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야 '킨츠키'를 배우다.


킨츠키는 깨진 도자기를 옻나무 진액으로 붙이고 그 선을 따라 금가루를 입히는 기법이다. 완벽하고 매끄러운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흉터와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이 과정은 지금 마음의 지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첫째, 깨진 도자기 조각들은 원래 나의 부드러운 살결이었고 따뜻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충격은 그것들을 날카로운 흉기로 바꾸어 나를 찌른다. "내가 부족해서",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스스로를 찌르는 그 날카로운 자책의 단면을 부드럽게 갈아내야 한다. 그것이 킨츠키의 시작인 '연마'이자, 나를 용서하고, 그 상처를 다시 만질 수 있게 다듬는 시간이다.


둘째, 상처를 잇는 건 여전히 뜨거운 열정이다. 조각들을 다시 붙이는 붉은 옻은, 상처에서 흐른 피이자 동시에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열정의 색이다. 다시 일어서려는 생의 의지, 아이를 지켜내려는 강인한 마음 같은... 그 붉은 에너지가 없다면 다시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아픔과 사랑은 결국 같은 붉은색이다.

그 붉은색 옻은 증발을 통해 마르는 일반 페인트와 달리,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여 산화 효소 반응을 통해 경화된다. 즉, 옻이 굳기 위해서는 습도 70~80%, 온도 25도라는 특정 환경이 필수적이다. 바로 킨츠키 상자인 무로(Muro)가 필요하다.


심리적 회복 역시 '건조한 고립' 상태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용자가 말한 '붉은 옻'이 단단하게 굳어 상처를 잇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심리적 습도'가 필요하다.

정서적 수용(Emotional Acceptance): 고통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습한 환경이 필요하다.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 나를 비난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지지 그룹은 회복의 효소 역할을 한다.

자기 연민(Self-Compassion): 스스로에게 "그럴 수 있었어"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온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환경이 너무 건조하면(지나친 이성적 통제나 타인의 비난) 옻칠은 갈라지고 조각은 다시 떨어진다. 반대로 습도가 너무 높으면(지나친 감정 매몰) 옻이 주름지거나 색이 탁해질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환경 통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무로가 온도와 습도를 지켜주듯, 회복기에는 주변의 부정적인 사람이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해야 한다.


킨츠키 과정에서 옻이 한 번에 굳지 않고 여러 번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듯, 치유 역시 나선형으로 일어난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왜 다시 아픈가"라고 자책하는 그 과정이 정상적인 '경화 과정'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그 붉은 선 위로 금가루를 뿌릴 때, 상처는 비로소 '장식'이 된다. 하지만 금가루는 단순한 장식은 아니다. 고통을 통과하며 재구축된 삶의 지혜다. 리처드 테데스키(Richard Tedeschi)의 외상 후 성장 이론은 킨츠키의 결과물과 완벽하게 조응한다.

새로운 가능성 (New Possibilities): 이별로 인해 닫힌 문 대신,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진로와 취미, 인간관계의 문을 발견하게 된다.

대인관계의 깊이 (Relating to Others): 고난을 통해 누가 진정한 내 사람인지 식별하게 되며,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개인적 강점 (Personal Strength): "내가 이 정도의 고통도 견뎌냈구나"라는 자각은 미래의 어떤 시련도 이길 수 있다는 강력한 자기 효능감이 된다.

삶에 대한 감사 (Appreciation of Life):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되며, 현재 이 순간에 머무는 능력이 향상된다.

영적/실존적 변화 (Spiritual Change): 삶과 죽음,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더 성숙한 세계관을 갖게 된다.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얻은 성찰과 성장이 금가루가 되어 내려앉으면, 마음엔 흉터 대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금빛 지도가 그려진다. 깨지기 전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로 재 탄생하는 순간이다.


예전의 나는 깨어지면 다시 붙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착각하고 있었다. 결혼과 사랑, 연애가 '우리'라는 단 하나의 도자기였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 그릇이 깨지면 나의 세계도 함께 산산조각 나서 다시는 붙일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처음부터 도자기는 각자의 손에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는 것을.

'너의 도자기'와 '나의 도자기'.


두 도자기가 나란히 놓여있다가 이별이라는 충격으로 인해 나란히 놓인 그 풍경은 어그러지고, 도자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파편이 되었지만, 중요한 건 그 조각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는 떠나갔어도 나의 조각까지 가져가지는 못한다. 내 삶을 이루던 부드러운 살결과 따뜻한 마음의 파편들은 비록 날카로워졌을지언정 여전히 내 것이다.


킨츠키는 바로 남겨진 '나의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갈라진 틈 사이를 나만의 금가루(성장과 성찰)로 채운다면, 이전보다 훨씬 더 귀하고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별을 경험했지만, 결코 그 이별이 내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게 두는 것.
상실을 극복한 장인이 더 견고한 도자기를 빚듯, 정서적 위기를 통과한 나는 더 깊은 통찰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오늘 킨츠키를 하며 배운 마음이다.




킨츠키 질문이미지.jpg



「 」

"당신의 마음속, 가장 먼저 금가루로 채워주고 싶은 아픈 틈은 어디인가요?"



~내가 당신의 무로(Muro)가 되어줄게

나의 킨츠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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