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_ 다이 마이 when I was young
하루아침에 변한 카프카의 변신만큼 나의 변신도 못지않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배경으로 출근하는 남편과 아침을 거르고 등교하겠다는 아이들이 지나간 시간. 나는 다시금 슬며시 동굴 입구처럼 남아있는 이불속으로 몸을 넣는다. 출근 시간 여유가 있는 아침이다. 그리고 그녀를 보게 되었다.
홀로 살며,
글을 쓰고,
담배를 피우며,
혼자 만의 시간을 향유하듯 ,
온전한 시간과 감각을 오롯이 뿜어 내고 있는 매끄러운 살결을 지닌 글.
화려한 호피 무늬와 같은 문체, 매력적 취향이 살아 있는 글자들 사이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도 이랬을까 하며 when I was younger의 내가 비죽 나왔다.
용산에 사는 Y는 오랜 친구다. 그녀는 홀로 살지는 않지만 그녀 역시 싱글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녀의 집에서 만난 친구는 내게 먹으면 곰도 사람으로 변신하게 만들 것 같은 양의 마늘이 왕창 들어간 마늘 파스타와 식빵을 먹이면서 말했다.
"넌 그때 결혼 안 했으면 못했을 걸"
'음, 맞다 그랬을 것 같다.' 며 마늘 향 가득한 인간이 된 웅녀처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만난 그날도 when I was younger의 내가 비죽 나왔었다.
그리고 다시금 돌아본다.
비율로 따지면 2:3이다.
2에 속했던 삶으로 살았던 20대까지의 내 삶은 푸르다 못해 시퍼런 날이 서있어 언제든 내 삶을 부서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머지 3의 삶은 이와는 반대로 내 삶이 부서질까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나를 단단히 묶었다.
내 기억에 없지만 그때의 기록에는 남은 내 말
우리 집에는 없는
오랜 된 지하철 역사나 오래된 초등학교 본관 건물 입구에
있을 법한 큰 거울 앞을 지나갈 때
흠칫 놀라 바라봤던 낯선 나
완벽한 타인의 시선의 거울 속에는
빛을 잃은 눈과 잘려 나간 입술, 까맣게 죽어버린 혀를 가진
낯선 이가 마주 서 있다.
when I was younger의 내가 비죽 나오는 날들은 이렇듯 혼란의 날이었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에서 주인공 그레이스는 아이를 낳고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잉크와 자신의 가슴에서 짠 모유를 섞는다. 그리고 검은 잉크와 하얀 모유 방울이 섞이는 모습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그녀는 글을 쓰지 않는다.
잉크와 모유가 만나 서서히 번져가는 회색.
회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색의 변색일까, 창조일까.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남편 잭슨이 별을 보라고 하자 그레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난 별 보기 싫어"
"왜?"
"내가 하찮게 느껴져서"
문득, 문득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들은
내 머리 위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빛을 잃어버린 지금의 나는 삶의 5분의 3을 자기 계발서와 자격시험서로 살아와서일까
이런 글 밖에 쓰지 못한다고
그러다가도 이내 나는 이 나마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한다. 라며
언제나 이렇듯 긍정의 마무리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글의 특징은 열린 결말 따위는 없다. 꽉 닫힌 긍정의 마무리.
왠지 모를 답답함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살기 위해 그러했을지 모르기 때문에 굳어진 것일 수도 있다.
살아야 하기에
이런 나를 벗겨내야 할까 나를 덧 입혀야 할까?
어떤 날은 누워서
어떤 모습이 나일까 생각해 보았던 적도 있다.
너무 나도 극명한 이질감에 혼란스러워 하지만 끝내 버텨온 나도 나 일거라고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내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간혹 날 하찮게 느껴지게 하더라도 나 역시 저 별의 조각으로 태어난 존재 아니냐며 나의 매끄럽지 않은 살결 위를 토닥인다.
이런 나를 과학의 문장으로 읽어내면 나의 이 혼란에도 '모성 전환기(Matrescence)'라는 이름이 있었다. 1973년 의료 인류학자 데이나 라파엘(Dana Raphael)이 처음 주창하고, 컬럼비아 대학의 오렐리 아탄(Aurélie Athan) 박사가 발전시킨 이 개념은 여성이 어머니가 되는 과정을 사춘기(Adolescence)에 버금가는 급격한 발달 단계로 규정한다. 사춘기 청소년이 호르몬 폭풍 속에서 자신의 신체와 정체성의 변화에 낯설어하듯, 출산을 경험한 여성 역시 생물학적, 감정적, 사회적, 영적 차원에서 완전한 재구축(Overhaul)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여성의 뇌구조는 뇌 스캔 사진만으로 여성이 임신을 경험했는지 여부를 100%의 정확도로 판별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하며, 특히 회백질(Gray Matter) 부피에 극적이고 일관된 감소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최소 2년에서 최대 6년 이상 그 구조적 변형이 유지된다고 한다. 회백질이 감소하고 불필요한 시냅스가 소거되는 이 과정은 뇌세포의 사멸이나 기능 저하는 아니다. 다만 한정된 에너지를 아기의 생존과 비언어적 소통에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다.
뇌과학을 통해 본 나는 지금 재 조립 중인 배라고 볼 수 있다. 혼자만 탈 수 있는 배에서 다른 이를 태우고 갈 수 있는 배로 말이다. 업그레이드 중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인정해야 한다.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의 이기심과 혼란이 아니라 , 다만 달라진 나의 뇌의 도파민 지형도가 이중으로 작용하며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사실 말이다.
회색은, 결코 이도 저도 아닌 혼란의 색이 아니라 양 극단의 이질적 가치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철학적 색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은 잉크와 하얀 모유가 섞여 탁하고 우울한 회색이 되어버린 줄만 알았던 그 색은 가만히 그 번짐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캄캄한 우주에 작고 반짝이는 별들을 무수히 흩뿌리고 있는 별의 색인 것이다. 내 머리 위의 별은 너무 멀어 나를 하찮게 만들었지만, 잉크와 모유가 섞여 내 손끝에서 피어난 이 작은 별들은 비로소 나를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다.
그날 나는 그렇게 회색의 아침을 맞이했다.
변신을 한 카프카의 벌레는 고독 속에 죽어갔지만, 나는 잉크와 모유가 섞인 회색 바다 위에서 새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 」
"여러분의 하얀 모유(현실의 헌신과 책임)와 검은 잉크(과거의 열망과 온전한 자아)가 만나 번져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은 어떤 색인가요? 그 혼란스럽고도 탁한 회색의 바다 한가운데서, 여러분의 손끝은 지금 어떤 작고 반짝이는 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