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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girl Sep 30. 2016

D73. 쿠바를 여행해야 하는 이유

Part1. 무엇을 상상하는 그 이상_쿠바

뼛속까지 스민 리듬, Afro-Cuban Music


파티를 즐기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쿠바에 왔으니 클럽에서 살사 공연은 한번 봐야겠다며 늦은 밤 까사를 나섰다. 클럽 앞에는 현지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있었다. 따로 티켓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따라 줄을 섰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지자 진행요원들이 와서 문을 열고는 줄을 서지 않았던 일부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도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새치기로 들어가는 사람만 늘고 있었다. 가만 보니 정해진 입장료 외에 웃돈을 얹어주면 먼저 들여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우리에게도 다가와 “돈 더 내면 지금 들여보내 줄게. 아니면 못 들어갈 수도 있어.”라고 당당하게 웃돈을 요구했다.


그놈의 돈! 이런 쿠바!


“걱정 마. 기다리면 들어갈 수 있어.”


왜 늘 이런 식이냐고 열을 내고 있는 사이 폴란드에서 왔다는 클라우디아가 우리에게 말은 건넸다. 쿠바의 살사에 빠져 아바나에만 두 번째 방문이라는 클라우디아는 자주 겪어본 일이라는 듯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한참 후에야 클럽으로 들어가 클라우디아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몰랐는데 아주 유명한 밴드가 나오는 날이라고 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금세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쿠바에서 라이브로 만나는 레알 살사! 수준급 연주는 물론이고 리듬과 흥이 대단해서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허리가 꿈틀거렸다. 그렇다, 꿈틀. 현지인과 관광객 할 것 없이 모두들 일어나 신나게 살사를 추고 있는데, 춤을 못 추는 우리 두 사람만 가만히 앉아 꿈틀거리며 리듬만 탔다. 클라우디아는 이미 저 멀리 무대 앞에 나가 춤을 추고 있은 지 오래.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살사 좀 배워 오는 건데. 앉아있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둘 쿠바노들이 아니었다.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아끌어 함께 춤을 추다가 옆에 있던 그까지 일으켜 세워 스텝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춤이라면 몸서리치면서 일단 피하고 보는 평소의 그. 보통 때였다면 끝까지 손사래를 치며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놀랍게도 쿠바의 흥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리듬을 타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귀여웠지만 이번에는 일어선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열정적인 쿠바노들도 그의 범상치 않은 리듬감을 알아봤는지 먼저 포기를 선언하고 가버렸다. 너무 웃긴데 위로할 수밖에 없는 뻘쭘한 상황.


... 괜찮아, 우리에겐 단지 저들 몸속에 흐르는 살사 유전자가 없을 뿐이야.


그들만의 그루브는 정말 타고나는 것이구나 감탄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내 귀에는 다르지 않은 음악들 속에 실은 엄청나게 다양한 의미와 역사가 담겨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몸으로 표현해냈다. 어느 도시에 가든, 시간과 장소,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면 이건 그야말로 뼛속까지 스며있는 감각이며 문화였다.


쿠바의 역사, 아바나의 시간을 품은 건물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아프로-쿠반(afro-cuban)의 춤과 음악. 이것만으로도 한 번쯤은 쿠바를 가봐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된다.


사기꾼 택시기사가 엉뚱한 곳에 우릴 내려놓는 바람에 주린 배를 부여잡고 걷다가도, 아침부터 돈 한 푼 더 받으려는 까사 주인 때문에 마음 상한 날에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음악이 나타나 마음을 다독여주는 곳.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되는 편리한 기억력을 장착한다면 더욱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니!




그들이 꿈꾸는 세상, 우리가 말하는 행복


사람들은 곧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테니 서둘러 쿠바에 가봐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뜨거웠던 2012년 12월의 쿠바는 곧 해가 바뀌면 개인이 집과 차를 소유할 수 있고 사업도 할 수 있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미 경제는 무너진 지 오래. 보이지 않는 곳에선 블랙마켓이 성행했고 사람들은 쿠바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몰래 안테나를 설치해 미국 방송을 보며 바다 건너 땅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을 동경하고 있었다.


별다른 벌이가 없는 까사 주인들은 매일 버스정류장으로 출근해 버스가 한 대 들어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호객행위를 해봐야 손님 한 명을 데려오기 어렵다고 했다. 그마저 정부에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서 어떻게든 음식을 팔기 위해 흥정을 하려 들었다.


그런가 하면 외국에 친척과 친구가 있다는 사람들은 그 비싸다는 인터넷을 집에 설치해서 웹페이지를 통해 까사를 홍보하고 이메일로 예약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손님이 늘어 건물 옥상까지 방을 증축할 정도였다. 이미 여행자인 내가 실감할 수 있는 격차가 엄청났던 그때. 더욱더 흘러 넘칠 정보와 자본 속에서 사람들은 바라는 대로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될까? 나는 궁금했다.


한낮에 할 일 없는 어른들이 거리에 그렇게 많아도 할 일 없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매일 아침이면 깨끗하게 교복 차려입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꼭 볼 수 있었고, 주말이면 프라도며 박물관에 아이들이 모여 그림과 음악을 배우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는 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분명 아니었다. 잘은 모르지만 Y는 라틴 그 어느 곳보다 여성들의 힘이 느껴지는 나라라고 했다.


쿠바의 혁명을 이뤄낸 사람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지금 여기에 없지만, 희미하게 남은 무언가가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과거에 그들이 꿈꾼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 쿠바의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우리가 살던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은? 집과 차를 소유할 수 있고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이들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하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서툰 우리가 그러워지는 날


사람은 가끔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설사 두 사람이 함께여도 두 사람이 함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도 허다하다.


쿠바가 꿈꾸는 세상은 궁금했지만 그 세상을 직접 만날 수 없었던 우린 점점 지쳐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안 그래도 배고픈 우리에게 뜯어갈 돈이 더 없나 궁리만 하는 것 같고 그럴 때마다 상처 아닌 상처가 더해졌다. 처음으로 떠나는 비행기 날짜가 정해진 여행지라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으니 이 섬나라를 나가는 날이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음악이 유일한 위로였다.


비싸서 안 먹고 버티겠다던 우리의 의지는 단 하루를 남겨놓고 꺾여버렸다. 더 이상 숙소와 먹을 것을 찾아 헤매기 싫다는 생각에 꽂혀 바라데로의 호텔로 향한 것이다. 마지막 밤은 어차피 공항 노숙을 하기로 했으니 하루는 편하게 자자는 핑계를 댔다.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합리화하지 않고는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돈 많은 까사 주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다녀왔다고 그토록 자랑하던 그 바라데로. 택시기사 아저씨가 짐을 내려주며 호텔을 올려다보는 눈빛에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멕시코의 깐꾼이 멕시코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곳 바라데로도 쿠바가 아니라고 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아니면 다른 유럽 자본이 세운 그들만의 세상. 다른 나라도 아닌 쿠바에 쿠바가 아닌 곳이 있다는 것도, 그곳에 와 있는 나도 슬펐다.


단돈 80달러에 밥 세 끼를 다 주는 올인클루시브 호텔에 묵었던 깐꾼과 같은 행운을 다시 한번 기대하고 몇몇 호텔을 돌아봤지만, 그런 행운 따위 우리에게 다시 올 리 없었다. 그동안 그렇게 안 먹고 아껴왔는데 말도 안 되는 곳에 돈을 쓰고 있자니 허망함이 몰려왔다. 비싼 돈을 주고 왔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맛있지도 않은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탈이 나버렸다. 갑작스레 씽씽 불어대는 에어컨 바람 덕분에 감기까지 걸렸다.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덥고 배고팠던 쿠바의 거리에서보다 나는 결코 더 행복하지 않았다.


참 다르고 신기한 나라에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를 수없이 되뇌었는데, 쿠바를 나오며 오랜만에 접한 지구 반대편 소식에 우리야말로 정말 신기한 곳에서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쿠바노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정말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쿠바노들의 눈빛이 우리에겐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강렬했다. 처음 보는 부랑자가 갑자기 뒤에서 팔을 덥석 잡고, 또 다른 사람이 수백 미터를 좇아오며 돈을 달라 요구하고, 까사 주인이 몇 번이나 방문을 두드리며 까사에서 밥을 먹으라고 강요할 때면 그것을 위협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정해두고 그걸 넘어서는 이들에게 매번 의심과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아끼고 있었던 걸까? 서툴게 예민해지고 서툴게 화를 내느라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놓쳐버리진 않았을까?


처음 가보는 세상,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서툰 것은 당연하다. 더 나은 내일이 기대된다면 그것은 서투른 어제의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회를 남기지는 않기로 했다. 다만 언젠가 서툴렀던 나와 네가 그리운 날이 오면 그때는 다시 쿠바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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