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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girl Sep 30. 2016

D60. 배고픔을 버리고 싶다

Part1.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라틴 아메리카_쿠바


멕시코 깐꾼에서 쿠바 아바나까지 2시간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항공권을 구한다고 머나먼 남쪽 파나마까지 경유해 11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시간보다 돈, 체력보다 돈. 길 위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돈을 아낄 수만 있다면 중간을 모르고 시간과 체력을 길에 버리고 다니는 초보 여행자들이었다.


“왜 안 나가? 여긴 멕시코와 달라! 밤에도 안전하다고!” 


녹초가 되어 밤늦게 숙소에 도착해 쉬려는데 까사의 주인아저씨가 등을 떠민다. 배도 고프고 해서 엉겁결에 밖으로 나서지만 갈 곳이 없다. 주변에 흔한 상점이나 음식점 하나 보이지 않는다. 불이 켜진 곳도 없고 사람도 없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쉽게 길을 찾아주던 인터넷 따위 당분간 꿈도 꿀 수 없다. 여기는 쿠바니까. 먹는 것은 포기하고 말레꼰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있으나 마나 한 가로등 불빛. 옆사람을 잡은 손에 왠지 힘이 꽉 들어간다. 


올드타운의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밤하늘의 별들은 유난히도 반짝인다. 인터넷은 없지만 밤하늘의 별이 있는 도시 한복판. 


우리, 또다시 참 다른 곳에 날아와 있구나. 






이글거리는 도로 위는 듣던 대로 올드카 전시장이 따로 없다. 아바나의 아침은 생각보다 더 뜨겁. 냄새는 좀 퀴퀴했지만 시원했던 어제의 밤바람이 그리워지는 걸 보면 아바나 사람들이 말레꼰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같은 낡은 자동차들이 저리 잘도 달리는 걸 보면서얼마나 불필요하게 많은 것들을 버리고  것으로 바꾸며 살아왔나 생각한다


집을 떠나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의 음식, 체온을 유지해줄 옷 몇 벌, 몸을 누일 수 있는 따뜻한 방 (괜히 ‘의식주’가 아니었어!). 


출발 전, 수도 없이 싸고 풀었던 짐이지만 막상 장기여행을 앞두고 짐을 꾸리려니 막막하다고 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어디에든 있을 거고, 그곳에 없다면 꼭 필요한 게 아닐 거라고. 


정말 그랬다. 지금껏 없어서 불편한 것은 있을지 몰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찾지 못해 곤란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괜한 걱정과 욕심 때문에 짊어지고 온 것들을 버려야 할 때가 더 많았다. 출발 전 가장 쌩쌩한 상태가 아니라 긴 이동에 녹초가 되고 몸이 힘든 상태에서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해야 했던 것이다. 


가진 것이 없을수록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음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비움의 미학.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이내 마음의 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또한 깨닫는다.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의 음식'을 매 끼니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감사한 일인지.


"자, 이거 봐봐. 4 쿡이지만 햄도 있고 치즈도 있잖아?"


쿠바에는 두 가지 화폐가 존재한다.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모네다와 외국인이 사용하는 쿡 (당시 환율로 1 쿡은 24 모네다, 미화로는 1달러 정도). 화폐가치도 크게 다르고 가게마다 취급하는 화폐의 종류가 다른데, 관광객 거리에서 파는 샌드위치가 10 모네다 정도 하니 4 쿡이면 현지 물가로 볼 때 많이 비싼 편이다. 까사에서 주는 아침이 4 쿡, 저녁은 8-10 쿡이라는 말에 망설이는 우리를 보고 주인아저씨는 햄과 치즈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어디선가 다른 여행자들은 3-4 쿡에 랍스터를 배 터지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정확히 어디인지 알아뒀어야 했는데, 어줍지 않은 정보는 괜한 오기만 불러일으킨다. 저렴하고 깨끗한 먹거리가 쿠바의 자랑이라던데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모네다 맛집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랍스터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는 집이 어디인지 우리는 도통 찾을 수가 없다. 배에 거지라도 들어앉았는지 관광객 거리에서 파는 모네다 음식은 간에 기별도 안 가서 끼니를 해결하기엔 택도 없는 양이다. 쿡 식당은 비싸기만 하고 어렵사리 찾은 동네 가게는 텅텅 비어 살 것이 없다. 인터넷이 안 되니 검색도 안 되고 까사 주인에게 물어보면 자기 집에서 사 먹으라고만 한다. 


돈도, 정보도, 애교도, 체력도 없는 우리에겐 좋은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자본주의의 패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 이런 기분을 쿠바에서 느끼게 되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푸드덕푸드덕 살아있는 비둘기를 통째로 잡아먹는 고양이의 섬찟한 눈빛 앞에서 쿠바의 의료, 거리의 음악은 환상이 되어버릴 뿐이다. 어디에서든 저렴한 길거리 음식으로 맛있게 배를 채우던 엄마 집 같은 멕시코가, 하다못해 마트에서 라면이라도 사다가 끓여먹을 수 있었던 과테말라가 이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 배가 고프다.


장기여행은 매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기대와 긴장과 기쁨과 좌절과 같은 감정들을 극적으로 누리는 대가로 내 몸뚱이를 먹이고 재울 곳을 찾아 헤매는 생활의 반복이다. 배가 고프고 잠을 못 자면 이 몸뚱이는 마음을 따라와 주지 않고 자꾸만 칭얼거린다. 어디 그뿐인가. 먹으면 먹은 대로 내보내겠다고 신호를 보내와서 귀찮게 하고 한참 동안 기척이 없으면 그것대로 찜찜하고, 참 가지가지한다.


배고픔도 마음대로 버리고 비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사람은 늘 먹고 싸고 또다시 배가 고파지는 존재일까. 


우습게 들릴지 모를 이 질문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아직 쿠바구나. 오늘은 또 뭘로 배를 채우냐."며 한숨을 내쉬고,  숨 막히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저녁이 되면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냈다!”며 해가 지는 것을 기뻐한다. 미련하다. 배가 고프면 비싸도 먹던가, 가만히 에너지라도 아껴두어야 할 것을. 이 미련 곰탱이 고집불통 여행자들은 신기루 같은 싼 식당을 찾겠다며 이 더위에도 소금땀을 뚝뚝 흘리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멕시코에서 사 온 초콜릿 한 봉지를 하루에 하나씩 아끼고 또 아껴 먹는다. 다 녹아서 포장지에 눌어붙은 한 점도 남기지 않고 아주 싹싹 깨끗이 핥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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