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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girl Oct 01. 2016

D79. 구름 위의 크리스마스

Part1.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라틴 아메리카_에콰도르


세상의 중심 키토


뜨겁고 눅눅하던 쿠바에서 묵은 피로와 감기 기운을 잔뜩 안고 나온 곳이 고산지대라 며칠째 머리가 무겁고 띵하지만 마음만은 가볍고 든든하다. 


드디어 고대하던 남미에 와 있으니까!

호스텔 바로 앞에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가 있고 원하면 언제든 달려가 먹을 수 있으니까!


시장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렇게 안도감을 주는 것인 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모처럼 배고픔은 잊고 제대로 비타민을 보충하는 중이다. 안데스의 땅이 다르긴 다른가보다. 채소와 과일들이 엄청나게 싱싱하고 무지막지하게 크고 달기까지 하다. 옥수수와 감자 맛이 강원도는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적도의 땅이라고 하면 왠지 이글이글 불타는 열기가 느껴질 것 같지만, 실제 적도선이 지나는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해발 2,800m라 선선하기만 하다. 여기서 텔레페리코라는 곤돌라를 타고 산 위에 오르면 4,000m. 해발 2,000m 정도 되는 멕시코 산크리에서 구름이 손에 잡힐 것 같다며 폴짝폴짝 뛰었는데, 이제는 가만히 서 있어도 하늘이 머리에 닿을 것만 같다. 


"조금만 더 가보자. 조금만 더."


산 위에 오르자 숨이 헉헉 차오르는데도 눈 앞에 펼쳐진 하늘에 이끌리 듯 걷고 있던 우리. 에콰도르가 이렇게 산과 하늘이 아름다운 나라였단 말인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의 키토. 옛날 사람들은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란 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위도 0도, 그 위에 발도장을 꾹 찍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힘이 한껏 더 들어갔다.
















구름 위의 크리스마스


키토에서 다시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 도착한 작은 마을 축칠란. 마을 뒷동산에 몇 걸음만 걸어 올라가면 구름이 순식간에 우릴 감싸고 사람에게 친근한 라마(llama)들이 커다란 눈망울을 꿈뻑이며 다가온다. 


"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는 이 아름다운 숲과 자연을 해치지 않기 위한 관심이 세심하게 묻어난다. 태양빛을 충분히 담아내는 창, 물 대신 톱밥을 사용하는 화장실, 그리고 종이  장 허투루 버리지 않고 모아 소중한 땔깜으로 활용하는 난로. 마을 사람들을 배려하는 점 또한 마음에 든다. 보통의 호스텔들이 투어를 운영하며 수익을 올리는 것과 달리, 투어에 참가할 사람만 모아 가이드를 담당하는 마을 주민과 직접 연결해주는 것이다. 산을 너머 에메랄드빛 킬로토아 호수까지 다녀오던 날, 하루 종일 외국인 여행자 아홉 명과 함께 걸으며 주변의 자연과 식물에 대해 설명해준 미겔 아저씨는 투어비로 건 당 25달러를 받는다고 했다. 누군가 온종일 즐긴 것에 비해 너무 저렴한 액수가 아니냐고 말을 꺼내자 모두 동의하며 각자 5달러씩 모아 아저씨에게 전해주기로 했다. 평소보다 20달러를 더 많이 건네받은 아저씨의 무척이나 곤란해 보였지만 우리가 아저씨에게 느끼는 고마움을 생각하면 전혀 넘치는 액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건너 마을에 축제가 열렸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오르는 이 길을, 동네 꼬마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볍게도 뛰어다닌다. 처음 만난 낯선 이방인들 한 명 한 명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도, 꼭 눈을 마주치고 한없이 맑은 미소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파란 하늘, 맑은 공기, 푸른 산, 투명한 호수 그리고 따뜻한 미소. 여기서 만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덕분에 무슨 날,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는 두 사람에게도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고 따뜻하고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정말이지 잊지 못할 거야, 구름 위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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