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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girl Oct 01. 2016

D91. 갈라파고스,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

Part1.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라틴 아메리카_에콰도르

상상 그 이상의 즉흥 너머 


과테말라 파나하첼에서 만난 여행자의 “갈라파고스 다이빙이 끝내준대!”라는 말 한마디에 멕시코 카리브의 섬 코수멜에서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고 갈라파고스행을 결정한 것도 그랬다. 하지만 그곳에 발을 내딛기까지의 여정은 가자고 지르는 일처럼 화끈하지만은 않다. 끝없이 나타나는 선택의 갈림길, 몇 번이고 망설이고 고민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다른 이들의 여행기처럼 “가자!”하고 바로 그 꿈의 장소에 도착해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정확히 갈라파고스 ‘제도’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트 투어를 통해 여러 섬을 돌아보는 방법과 개인적으로 주요 섬에 머물면서 근처 가까운 곳에 다이빙, 스노클링, 일일투어를 나가는 방법이 있다. 일단 가기로 해놓고 뒤늦게 찾아보니 배낭족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인 데다, 그마저 연말이라고 항공권 값이 마구 올라있어 심란했다. 날짜와 기간, 투어를 할지 말지, 한다면 보트 투어는 어느 것으로 할지 고민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발품을 팔아 여행사의 가격을 다 비교해 힘들게 결정을 하고 났더니 그제서야 그 비싼 투어비를 모두 현금으로만 받는다는 말을 했다. 에콰도르는 아직 신용카드가 보편화되어있지 않은 나라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현금이 없으니 atm에서 인출을 해야 하는데 기계 하나에서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은 터무니없이 적어서, 키토에 있는 내내 은행과 atm을 찾아다니며 현금을 인출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야 했다.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자꾸만 난관에 봉착하게 되니 내 마음이 귀찮아지는 것인지, 우주의 기운이 내가 그곳에 가기를 원치 않는 것인지 괜히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휴, 여기 와서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갈라파고스에 갈 수 있기는 한 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거겠지?”

“그럼! 아까 호스텔에서 막 갈라파고스에서 돌아온 여행자를 만났는데 스노클링을 하면서 자꾸 몰려드는 거북이가 귀찮아서 도망 다닐 정도였대. 상상이 돼? 가면 엄청 신날 거야.”




상상 그 이상의 갈라파고스


섬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몇 번의 까다로운 짐 검사를 거치자 비로소 갈라파고스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말로 듣던 동물들이 눈 앞에 가득할 줄 알았는데 첫인상은 그저 건조하고 황량한 화산섬일 뿐이다. 동물들이 많다고 푸르고 비옥한 땅이 펼쳐질 거라는 나의 예상은 부족한 상상력의 결과였다.


그렇다. 이 섬은 나의 상상력을 벗어나는, 비슷한 것조차 본 적 없는 장소다. 밤새 항해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도착해 있는 새로운 섬들. 화산으로 형성된 각각의 섬은 색깔도, 질감도 모두 다르다. 긴 시간 서로 다른 섬에서 적응하고 살아남은 생명체들도 또한 같은 것이 없다. 새들이 사는 섬, 이구아나가 모여 사는 섬, 나무가 많은 섬, 검은 화산의 흔적만이 남은 섬.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다 마을에 이르자 말로만 듣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마을 곳곳 아무 데나 바다사자들이 널브러져 자고 있는 바로 그 모습. 오랜 시간에 걸쳐 보호되어 온 이곳의 동물들은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에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가, 심지어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비치체어에서도 마음 편히 쿨쿨 잠을 자고 있다. 자고 있는 얼굴 표정이 영락없는 사람 얼굴이다!







푸른 바다, 특이한 화산 지형, 아름다운 일몰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섬인데, 다양한 생명체들에 둘러싸여 함께 숨을 쉬고 있다 생각하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토록 편히 쉴 수 있는 건 바닷가의 작은 생물들조차 함부로 만지거나 채취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칙으로 관리해온 덕분이다. 바닷가의 바위틈은 그야말로 ‘게’ 판, 하늘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새들이 날아다닌다. 육지에 내려와 있는 새들은 사람이 바로 옆에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알을 품은 둥지 옆을 지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상상 그 이상의 바다


바닷속 친구들도 만나봐야 하기에 갈라파고스에서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새로운 섬에 내려 걷거나 스노클링을 하는 것만으로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꽉 채워 보내고 있다. 힘들 법도 하지만 동물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너무 신나서 지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보트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훨씬 좋다. 가장 저렴한 보트를 마지막 최저가로 예약한 탓에 안 그래도 흔들리는 보트에서 제일 공기 안 통하고 냄새 나는 방을 배정받은 탓이다...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그토록 신기했던 바다사자랑 거북이랑 상어랑 함께 헤엄쳐도, 다른 행성에 온 것 같던 형광 파란색 발을 가진 부비를 보아도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 내가 더 신기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그래도 역시 쉽게 만날 수 없는 녀석들이 나타나는 날에는 또다시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거대한 장막 같은 만타레이 가눈 앞에서 한 없이 우아하게 펄럭이며 등장했던 순간, 스노클 장비를 입에 문 채 물 속에서 말은 못 하고 괴성을 지르며 만타레이와 함께 헤엄을 쳤다. 검은 장막이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이빙, 이건 정말 다른 세상이다. 다이빙 경험이 많지 않은 나는 조류가 세서 초보자가 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지 않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오래 전 홍해에서, 그리고 이번에 카리브에서 다이빙을 배울 때 들어갔던 맑고 투명하기만 한 바다를 상상하면서 조류가 세서 헤엄치기 어려운가보다 짐작할 뿐이었다. 아, 나는 정말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어!


비교적 쉽다는 포인트에 배를 대고 별 생각 없이 물 속에 첨벙! 들어가는 순간 정말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눈 앞이 캄캄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캄캄한 바다. 겁을 먹고 다시 올라가겠다 버둥거리고 있는데 함께 들어간 강사가 진정하라며 나를 안정시켰다. 몇 번의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카만 벽은 모두 물고기였다. 물고기가 겹겹이 너무나 많아서 마치 까만 벽처럼 보였던 것이다. 한없이 투명하고 화려한 카리브와 달리 바다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아득한 느낌. 반짝이는 물고기 떼 사이로 어슬렁 지나가는 가오리, 바위 밑에 숨어 꿈뻑꿈뻑 졸고 있는 상어, 옆에 와서 애교 부리던 바다사자까지, 이번에는 놀라움에 숨이 멎어 버릴 것 같았다.




상상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공존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구아나, 입 안에 무얼 담고 있는지 풍선처럼 부풀려 날아다니는 펠리컨, 미사일처럼 빠르게 헤엄쳐 지나가는 펭귄, 형형색색의 부비들. 원래 함께 살아가던 친구들처럼 익숙해진 녀석들도 이 섬을 떠나고 나면 볼 수 없겠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내가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 공존이 가능한 세상이 그리울 것이다.


“함께 투어 한 사람들도 정말 좋았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던 동물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이 섬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동물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 같아. 정말 특별한 기분이었어.”


“이곳 사람들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욕심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온 덕분에 지금의 모습이 보존될 수 있었던 거잖아. 그렇게 지켜진 곳에 와서,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동물 바로 옆에 가서 귀찮게 하고 사진 찍는 관광객들은 꼭 있더라.”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을 해치고 그렇게 점점 멀어져 왔지만,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발달된 기술이 우리가 자연과 동물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없을까?


함께 살아간다는 건 이토록 아름다운 일인데. 함께 누리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날이 있기를. 오기 참 힘들었지만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에 있어서 아직은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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