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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girl Oct 06. 2016

D118. 걸어서 가봤니? 마추픽추!

Part1.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라틴 아메리카_페루


Camino Inca


"마추픽추에 걸어서 갈 수 있다고?"


갈라파고스에서 만난 파트리샤는 3박 4일 동안 마추픽추까지 걸어갔던 날들의 감동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직접 고대 잉카인들이 걷던 그 길을 걸어서 갈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또다시 해봐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가자, 이번에는 카미노 잉카다.










카미노 잉카는 트레일 보존을 위해 하루 입장인원을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예약을 미리 하는 것이 좋다. 평소에는 예약도 쉽지 않을 만큼 인기가 많다고 하지만 이미 와라스부터 그랬듯 비가 내리는 우기에는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별로 어렵지 않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다만 비가 더 많이 내리는 2월 한 달간은 트레일을 모두 닫아버려서 그전에 쿠스코에 도착하는 것이 관건. 덕분에 와라스에서 트렉킹이 끝나자마자 쉴 틈도 없이 쿠스코로 이동을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페루에 대한 기억은 산과 돌만 남게 생겼다.




4000m 언저리는 이제 기본!








마지막 목적지는 마추픽추지만 마추픽추만으로 보고 가는 것은 아니다. 마추픽추보다 작지만 더 깊은 산속에 숨겨진 곳곳의 유적들이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처음에 지도만 봤을 때는 알지 못했다. 카미노 잉카의 오르막 내리막이 얼마나 다이나믹하게 펼쳐질지를.



















트레일의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돌과 계단이 유난히 많아서 걷기에 만만치가 않다. 아무리 우기라고는 하지만 비 내리는 하늘은 왜 이렇게 야속하게만 느껴지는지. 가뜩이나 변변한 옷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걸으려니 몸은 무겁고 빗물에 젖은 돌은 미끄럽기까지 하다. 걷는 걸 좋아하는 그가 이따금씩 욕을 내뱉을 정도. 나의 엄지발톱에는 어느새 보랏빛 피멍이 짙어지고 있다. 이런 길도 슬리퍼 신고 무거운 짐 한껏 지고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주민들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수퍼마리오가 나타난 것만 같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카미노 잉카에는 우리 짐을 대신 들어주는 당나귀들이 없다. 가이드와 크루들이 텐트와 요리에 필요한 도구는 옮겨주지만 침낭과 매트리스처럼 밤을 보내는 데에 필요한 짐들은 각자 메고 걸어야 한다. 산타크루즈에서 너무 추웠던 기억 때문에 가장 두꺼운 침낭을 대여해왔는데 카미노 잉카는 별로 춥지가 않아 억울하다.


이번 그룹은 7명. 네덜란드에서 온 피터를 제외하고는 커플이 3쌍이었는데 아무래도 남자들이 큰 짐을 들다 보니 서로 누가 더 무거운가 은근히 경쟁을 하면서도 위로를 해주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진다. 칠레에서 온 마르코스는 그에게 다가와 한숨을 푹 내쉬며 “너도 참 고생이 많다.” 고 했다나.
















계단 하나가 어찌나 높은지!




역시 산타크루즈처럼 하루의 마무리는 따뜻한 코카 차와 비스킷. 모처럼 또래의 친구들과 그룹이 되어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이 누군가 소감을 묻는다.


“잉카인들이 걷던 길을 걸으며 과거를 상상해 보는 건 신나고 정말 해볼 만한 경험이지만, 바로 전 산타크루즈에 비해 여기 자연은 큰 감동이 없어.”


나의 대답에 네덜란드에서 온 피터가 깜짝 놀란다.


“이게 특별하지 않다고? 모든 게 평평한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이런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엄청 특별한 경험이야!”


피터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걷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는다. 산타크루즈에서 어마어마한 산봉우리들을 보고 난 직후라 아름다운 것에 무뎌져 있었구나. 훗날 시간이 지나고 사진을 들춰보면 우리가 언제 이런 곳에 있었나 싶을 만큼 아름답고 경이로운 곳에 서 있으면서 정작 그 순간에는 알지 못하고 음미하지 못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발톱의 멍이 뭐 대수라고. 마음을 고쳐먹자 발걸음이 왠지 가볍다. 뿌연 구름 속을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왔다, 폰쵸를 입었다 벗었다 반복해야 하지만, 이 구름 속 돌길이야말로 정말 고대 잉카인들을 걸었을 그 장면에 더 가까울 것만 같다.




마추픽추를 만나는 날


카미노 잉카의 3박 4일 모든 여정이 소중하지만 역시 모두에게 마추픽추를 만나러 가는 기대감이 가장 큰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마지막 날 마추픽추로 향하는 트레일의 게이트는 새벽 5시 반이 되어야 열린다는데, 모든 그룹들이 조금이라도 먼저 가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줄을 선다. 우리도 새벽 3시 기상. 깨우는 대로 일어나 아침인지 야식인지 알 수 없는 팬케이크를 욱여넣고는 시키는 대로 줄을 선다.


드디어 5시 반. 문이 열리니 모두들 박수와 환호성으로 트레일에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들 걷지 않고 뛰고 있어! 그 무시무시하다는 그링고 킬러 계단을 오를 때에도 (라틴에서는 백인의 외국인, 특히 미국인을 가리켜 gringo라 부른다) 속도가 느려지기는커녕, 손을 아끼지 않고 암벽을 타고 있다. 무서운 사람들 이라면서도 헉헉거리며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는 우리는 또 뭐람.


잠시도 쉴 틈 없이 걷는 건지 뛰는 건지 알 수 없는 속도로 2시간쯤 왔을까, 서서히 마추픽추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직은 저 멀리 한참을 더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드디어 두 눈으로 마추픽추를 마주하게 된 순간의 감동이란!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면 알 수 없었을 이 감동. 발톱에 멍든 보람이 있네, 있어! 같은 그룹은 아니었지만 3박 4일 동안 걸으며 마주친 많은 얼굴들에 서로 수고했다는 눈인사를 건네고, 코카잎 위에 돌을 올려 걸어온 길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줘서, 건강하게 걸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다시 얼마나 걸었을까. 마추픽추가 점점 더 거대하게 다가오고, 드디어 부푼 기대를 안고 입구에 이른다. 하지만 으잉, 아무것도 안 보여! 새벽부터 죽어라 달려왔는데 정작 도착하니 갑자기 몰려온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상황이라니!


"우하하하하!"


배꼽을 잡고 웃는다. 며칠째 이런다. 우리가 숨을 몰아쉬며 높은 봉우리나 언덕에 올라서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이제 변덕스러운 이 높은 산동네 날씨에 적응이 되어서 몇 초만에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구름에 쉽게 슬퍼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 장난으로 우릴 환영하는 마추픽추가, 고생 끝에 만난 아무것도 없는 하얀 풍경이 재미있을 뿐이다.


이곳에서는 건기에 태어난 사람이 구름을 향해 입으로 후- 불면 비구름이 멀리 도망간다고 믿는다. 잉카 트레일을 걷는 내내 구름이 짙어지면 사람들은 5월에 태어난 나를 찾았다.


“수! 구름을 불어줘!”

“어디 한번 불어볼까? 후우-.”


정말 나의 입김 덕분일까. 마추픽추는 금세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겹겹이 산과 골짜기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공중도시의 고고한 자태를. ‘관광객이 너무 많다,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막상 가보면 실망스럽다’ 하는 말에 마음이 흔들릴 필요는 없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법. 웅장한 산들을 배경으로 깎아지를 듯한 절벽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이 엄청난 규모의 공중도시는 역사와 유적에 관심이 없는 내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대단하니까.










“와, 우리가 진짜 오기는 왔네, 마추픽추에.”

“그러게 말이야. 4일을 꼬박 걸어서 마추픽추를 마주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잖아.”


여행 전부터 그토록 기대했던 마추픽추에 4일 동안 씻지도 못하고 걸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걸어왔기에 더욱 특별했지만 비를 맞으며 걸은 카미노 잉카 내내 씻지를 못했더니 꾀죄죄한 몰골이 말이 아니다. 멋지게 사진을 남겨보려 했지만 떡진 머리 때문에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새벽부터 걸은 탓에 졸음이 몰려온다. 에라 모르겠다. 풍경은 마음에 가득 담아왔으니 사진은 애쓰지 말자.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 좋은 자리를 찾아 눕는다. 땀냄새가 폴폴 풍겼지만 마추픽추의 드넓은 풀밭이 왠지 우리에게만큼은 나른하고 달콤한 낮잠을 허락해주는 기분. 걸어오느라 수고했다고 토닥여주는 것만 같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걸어 이곳에 왔을 과거 누군가의 발걸음과 먼 옛날의 하루를. 이제는 또다른 유적지가 된 그 길 위의 작은 마을들, 산책 나온 라마 가족, 아기신발을 닮은 노란꽃, 그리고 걷고 있는 우리를.


마추픽추에서 내려와 아구아스 칼리엔떼 마을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또한 카미노 잉카의 용사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보너스. 다들 근질근질했는지 온천에는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이 가득하다.


“남미에 좋은 트레일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 쉴 새 없이 걷게 될 줄은 몰랐어. 에콰도르부터 페루까지 트레킹만 하고 있거든. 당분간 트레킹은 좀 그만하고 싶어.”


나의 말에 다른 여행자가 마구 웃으면서 말한다.


“너네 앞으로 남쪽으로 내려간다며? 근데 트레킹을 피하고 싶다고? 그렇게 되나 한번 보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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